중국의 백 년 수자원 전략
90년대의 일이다. 당시 필자는 어느 국내 대기업에서 베이징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 중국의 원로 학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분이 학자들이 수년간 협의하고 수립한 중국의 장기 국가 수자원 전략이 드디어 받아들여진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생경해하던 필자 자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학자 분은 당시 필자에게 중국의 횃불 계획이라는 것을 아느냐고 물으셨는데 필자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분은 웃으면서 설명해 주었는데 신중국 초기 (중국 노인 분들은 신중국 시절 이야기를 할 때는 누구나 눈을 반짝인다. 말하자면 그분들에게는 황금 시대였었던 것 같다.) 중국의 여러 학자들은 중국 과학 기술의 미래에 대하여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소련과 미국의 경쟁을 보면서 중국이 과학 기술 개발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가는 영영 후진국으로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 등으로 마오쩌둥 시절에는 학자들의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어려웠고 정부가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덩샤오핑이 들어서면서 개혁개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이때가 아니면 언제 기회가 올 지 알 수 없었던 중국의 학자들은 백 명 이상의 학자들이 모여 국가에 "아무리 배고프고 돈이 없어도 과학 기술 개발을 하지 않으면 중국은 언제까지나 후진국으로 있게 될 것이다"라는 결의와 함께 과학 기술 개발을 위한 계획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이들 학자들이 박봉에 모은 돈들을 모아 국가에 돈이 없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 돈을 나라의 과학 기술 발전에 써달라고 출연하였다. 당시 대학 교수들의 봉급이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도 되지 않았던 시절인데 모인 돈은 상당한 금액이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국가 공무원들은 여러 가지 국가 현안이 많은데 백 년 뒤에나 효과 볼 것 같은 이들 학자들의 건의를 덩샤오핑에게 전달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연히 이 건의문을 본 덩샤오핑은 감동했고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가의 백년지계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국가를 책임지는 사람은 이 일을 할 사람이 자신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이다.
덩샤오핑은 학자들의 이 계획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행동을 취했다. 바로 "火炬计划", 즉 횃불 계획이라는 프로젝트를 당장 만들어서 가동했다. 1988년 8월의 일이다. 그리고는 학자들이 이 횃불 프로젝트에 자신이 생각하는 과학 기술 개발 계획서를 만들어 보내면 시간을 끌지 않고 당장 결정하여 예산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초기에는 덩샤오핑 자신이 직접 계획서들을 읽으며 결정해 주었다고 한다. 이 결정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오늘날도 중국의 과학기술부에서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요구하는 예산 규모에 따라 3 단계로 나누어서 프로세스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필자는 과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위원회 프로젝트를 두 차례 참여한 일이 있다. 당사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옆에서 보는 문외한인 필자 같은 사람의 눈에는 우리나라 학자들의 행동들은 순수하게 나라의 과학 기술의 앞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소득을 확보하기 위하여 국민의 돈에 몰려드는 파리떼처럼 보였다. 지나친 표현이라면 사과드린다. 그렇지만 월 우리 돈 몇 천 원 봉급을 받는 중국의 학자들이 자기들 호주머니를 털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 것에 비하면 우리 학자들의 모습을 볼 때 무척이나 속상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이 분의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중국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수자원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항하가 한 해에 7 차례나 멈추었다고 한다. 이 황하가 멈추었다는 표현 - 황하 단류(黄河断流) - 은 황하의 물을 끌어다 쓰는 양이 많아지고 강수량 및 황하에 유입되는 수량이 줄어들면 황하가 황해로 흘러가던 물줄기가 중간에 말라서 끊어지는 현상이 일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중국의 경제 발전에 따라 용수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또 물동량도 급증하고 있어서 종합적으로 수자원을 관리하지 않으면 조만간 큰일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자원을 걱정하는 학자들이 과거 횃불 계획의 사례에 따라 공동으로 국가에 건의서를 제출했고 성금도 출연했다는 것이다. 본인도 평생 모은 돈을 전부 출연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 이 건의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들이 제시하는 수자원 전략 구상은 어떤 것이었는가? 우선 중국의 수자원에 대한 기초적 사항들을 점검해 보자. 그 학자에 따르면 중국의 수자원은 기본적으로 황하와 장강이 두 강이다. 이 두 강의 발원지는 각각 다르지만 모두 티베트에서 시작한 수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통해 있다. 그리고 티베트와 칭하이는 중국의 수자원의 저장고이다. 아래 그림은 구글 맵에서 보는 중국의 모습인데 이 정도 스케일에서도 서쪽의 티베트와 중북부 칭하이에 산재되어 있는 대형 호수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바로 이 호수들을 중국의 물 저장 탱크라고 부르는 것이다.
티베트는 물이 마르지 않고 청정한 수자원의 이상적인 장소이다. 그리고 수자원 관점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지역이다. 여기서 물줄기가 세 갈래로 나오며 한 줄기는 화북 지역을 통해 황하로 흘러 중국 대륙의 북방을 적시고 장강으로 흘러 티베트 고원 북부 바옌카라산맥를 흐르는 진사(金沙) 강은 장강, 즉 양쯔(揚子) 강에 합쳐져 중국의 남방을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다른 한 줄기 야루장푸강은 티베트 고원을 가로질러 인도로 흘러든다. 티베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탕구라 산맥을 따라 누(怒) 강과 란촹(瀾滄) 강이 흐르는데 누강은 태국의 셀윈강, 란촹강은 메콩강으로 변한다. 즉 아시아의 젖줄은 바로 이 티베트인 것이다.
수자원을 연구하는 중국 학자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먼저 티베트에서 이렇게 인도 등 중국 외부로 나가는 물줄기에 댐을 설치하여 통제 가능하게 만들고 인구가 희박하고 호수가 많은 티베트 지역에 보다 많은 양의 물을 담아 놓는다. 지하 수면이 상승하면서 티베트의 호수들은 엄청나게 커지게 되고 많은 면적이 수몰될 것인데 다행히 티베트는 인구도 적고 농사를 별로 하지 않는다. 이 조치를 통하여 중국은 자국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수자원을 전천후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언제든 필요한 만큼의 물을 황하와 양쯔강, 즉 장강을 통하여 흘려보낸다는 생각이다. 티베트의 강들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연간 3600억 t. 우리나라의 5배가 넘는다.
그런데 절대적인 총량을 충족한다고 해도 지역적으로 황하와 장강에서의 거리가 각각 다르고 황화와 장강의 수요 공급 상황이 다르다. 일반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장강은 수자원 수요 대비 수량이 넉넉한데 비해서 황하는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가끔 발생하는 홍수나 가뭄에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90년대에 발생하였던 장강 대홍수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당시 필자는 '물마루'라는 말도 처음 들었고 어느 도시를 통과한 물마루가 1, 2주 후에 다음 도시에 도달한다는 보도를 보며 중국이 정말 크기는 크구나 하고 감탄하기도 하였다. 수자원 관리에 있어 물 부족뿐만 아니라 이런 홍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필요시 강물들을 여기저기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의 계획에 의하면 티베트와 칭하이의 수자원들을 연결하여 호상 호통하게 만든 후 이 물들이 황하와 장강을 주류로 해서 흘러가되 동쪽, 서쪽 그리고 중간에 장강과 황하를 남북으로 연결하여 크게 날일자 모양으로 중국 대륙을 골고루 적시게 한다는 것이다. 이 서쪽 수로는 ‘대서선(大西線)’으로 불리며 티베트에서의 증가한 수량을 무사히 중원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6개 강줄기를 가로막고 19개의 댐을 만들어야 하는데 대수로 길이만 1800㎞이다.
이렇게 어렵게 보낸 물이 그냥 황해까지 흘러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댐들을 건설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장강의 물을 가두는 삼협댐이다. 삼협댐을 건설해서 장강 서부의 수위를 높여야 여기에서부터 장강의 물들이 중국의 서북부와 중북부에 쉽게 물을 댈 수 있고 홍수를 막는 역할도 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장강이 거대한 저수지로 변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삼협댐 프로젝트가 태동한 배경이다.
이렇게 티베트-칭하이-장강의 물탱크 화가 완성되면 이제 이 물들을 물 부족 현상에 힘들어하는 북방으로 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남수북조, 즉 남쪽의 물을 북쪽에 대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학자들이 제안한 가장 첫 프로젝트는 수양제가 건설하여 국력을 쇄진,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동쪽의 대운하를 이용하여 동쪽 대수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미 한번 만들어져서 인프라 구축이 용이하고 가장 수요가 급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구상에 따라 가장 먼저 진행된 메가 프로젝트가 삼협댐 프로젝트이고 그다음이 남수북조 프로젝트이다. 한국과는 달리 프로젝트 규모가 크면 권력층에서 장악하여 추진하고자 하는 인물이 있어 어떤 의미로는 더 쉽게 진행이 된다. 이분은 씩 웃으며 우주에서 보면 유일하게 만리장성이 보인다고 하던데 이 대 운하는 틀림없이 우주에서 볼 수 있을 것이며 아마도 인간이 건설한 가장 큰 규모의 시설물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중국은 이 수자원 전략에 따라 성큼성큼 국가 개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작용도 하고 있다. 일례를 들면 운수 경쟁력이다. 중국의 운수 인프라를 보면 항공 운수가 가장 비싼 수단이고 그다음 많이 이용되는 것이 트럭 등을 이용한 도로 운수이다. 그다음이 철도이며 가장 저렴한 것이 수운이다. 이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가장 경쟁력 있는 운송 수단인 수운이 양적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간접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중국 정부 보고서를 보면 여객 운수량(돈을 지불하고 상업적 교통수단을 이용한 사람 수)은 연인원 176억 명으로 동기 대비 1.9% 감소하였다. 수단별로 보면 도로 교통이 130.1억 명으로 4.7% 감소, 수운이 2.7억 명으로 2.6% 감소하였고 철도와 항공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승용차 등은 8.8% 증가하였다. 여기서 수운의 비중이 2.7억 / 130.1억 명 = 2.07% 정도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xxgk.mot.gov.cn/jigou/zhghs/202001/t20200121_3327332.html
화물의 경우를 살펴보자. 534억 톤으로 동기 대비 5.5% 증가하였다. 이중 도로 운수가 416.1억 톤으로 5.1% 성장하여 평균 성장률에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반면 수운은 74.7억 톤으로 6.3%가 증가하였고 고속도로 운수량은 6.8% 증가하였다.
중국의 화물 운송 비용은 당연히 항공편이 가장 비싸고 도로 운송이 그다음이다. 철도 운송의 경우 도로 운송에 비해 수 배 정도 저렴하다고 한다. 그리고 수운은 50배 정도 저렴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능만 하다면 수운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화물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잇는 수류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중국은 철도부가 매우 폐쇄적으로 화물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위 '꽌시"가 좋지 않으면 철도 화물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어렵다. 상대적으로 수운은 화물을 잘 실어준다. 이렇게 수운과 철도가 막히면 할 수 없이 도로 운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위 도표에서 도로 운수가 줄어들고 수운이 신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중국의 수로가 연장될수록 수운은 따라서 증가할 것이다. 50분의 1, 물류비용이 98%가 줄어드는데 누군들 선택하지 않겠는가?
거꾸로 이 수운 물류를 인프라로 하여 산업이 발달하는 측면도 있다. 물류 방식과 관계없이 장강의 흐름 방향을 타는 물동량은 중국 전체의 30% 정도라고 하며 그 중심은 상하이이다. 그리고 홍콩으로 나가고 들어 오는 주강 유역의 물동량이 10%에 못 미친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내륙 운수에 대규모로 수운을 도입할 수 있으면 전체 국가 인프라가 주는 경쟁력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소위 대운하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을 때 필자는 중국의 상황을 생각하고는 드디어 우리나라의 물류 인프라 경쟁력이 대폭 올라갈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여러분들 모두가 다 잘 아시는 바와 같다. 중국의 이러한 대담하고 스케일 큰 장기 전략 구상들을 우리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분야가 무엇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