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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Feb 22. 2020

아름다운 착각

나는 반중도 친중도 아니다

1985년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라는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져서 우리나라에도 상영이 되었다. 당시 최고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메릴 스트립, 그리고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았고 시드니 폴락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는 등 대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의 영화평을 보아도 매우 서정적인 영화로 묘사되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4wTQVjUe9I

그리고 이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해 놓은 것을 구글에서 찾아서 보면 아래와 같다.

구글의 검색 결과 영화 소개

필자는 이 영화를 보러 가서 너무나 무서웠다. 필자 혼자 대부분의 관객들과는 유리된 채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이 영화는 너무나 형편없는 영화였고 시드니 폴락은 기본적인 수준에 미달하는 시중 잡배처럼 생각되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필자는 어린 여학생들이 영화에 감탄해하며 로버트 레드포드는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얽힌 메릴 스티립의 머리를 주전자의 물을 부어가며 풀어주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다정함은 얼마나 따사로운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는 메릴 스트립에게 박정한 남편, 클라우스 브랜다우어에게는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다. 나무 위키에 나온 영화 소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백인이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을 그려낸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관객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 영화는 원래 덴마크 여성 소설가 카렌 블릭센 (Karen Blixen/1885~1962) 작가가 집필한 자서전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소설이 나온 시간대를 보라. 카렌 블릭센은 귀족 계급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득세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19세기 말을 겪어가며 전 세계가 1차 대전에 휩싸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오직 자기 자신 만을 추구하며 살아간 여자이다. 말하자면 극도의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카렌 블릭센의 시기에는 여권 운동이라는 것이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자서전이 나온 시기에는 맞아떨어져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우선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결혼을 하게 되는 장면을 보자. 우리 관객들이 완전히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출발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먼저 영화는 신흥 자본가의 딸인 여주인공은 한 형제를 알고 있다고 말하며 형과 육체관계를 가지는 사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형이 여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저 쾌락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린다. 그러자 여주인공은 화가 나서 동생에게 결혼하자고 말한다. 동생이 농담으로 받아들이자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내 돈을 보고 결혼하라고요"라고...

 여기서 우리나라 관객들은 여주인공이 농담을 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거나 형에게 화가 나서 홧김에 결혼하는 것처럼 이해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시 유럽은 신흥 부르주아들이 득세를 하며 심한 말로 '돈지랄'을 하던 때이다. 반면에 귀족들은 프랑스혁명 등으로 기반을 잃고 특히 경제적 기반을 잃으면서 어려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이 시기의 귀족 중에도 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큰 부를 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돈이 필요한 몰락한 귀족과 사회적 신분이 필요한 신흥 부자들 사이에는 정략결혼이 많았다. 그리고 치열한 조건 협상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유럽의 신문에는 "나는 XX 국의 남작이다. 돈 많은 부인을 신붓감으로 구함. XXX원 이상의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경우 첫 결혼이 아닌 부인이어도 상관없음." 등의 광고들이 많았다고 한다.


덴마크는 당시 촌이었다. 그래서 유럽 귀족들 눈에 보인 여주인공은 깡촌에서 올라온 졸부의 세상모르는 딸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여주인공의 이러한 "내 돈을 보고 결혼해요"는 당시로서는 아주 정상적인 거래였던 것이다. 하지만 매우 양심적인(?) 남자는 "난 백작이 아니고 남작인데 괜찮겠소? 당신이라면 백작 부인도 될 수 있을 텐데"라고 한다. 이 장면을 대부분의 관객들은 남작이 형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이군 하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남자가 공정한 거래를 원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백작에 해당되는 대가를 지불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남작은 여주인공을 남겨두고 혼자 아프리카로 건너간다. 여기서 우리 여성 관객들은 분노한다. 어떻게 새색시를 버리고 혼자 외국으로 갈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남작의 이 행동은 정말 사나이다운 것이었다. 당시 이런 계약 결혼은 정말로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귀족의 명예는 두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어서 보호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형식적인 결혼이라고는 해도 자기 부인과 놀아나는 남자가 곁에 있으면 결투를 통해 사생결단을 내는 것이 당시의 도덕관이었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각자 애인들을 두지만 이 애인들이 배우자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래서 이 블릭센 남작처럼 아예 외국으로 가 주는 경우가 여자로서는 최선이었지만 돈을 보고 결혼한 남자들은 대부분 호화로운 살롱과 창녀들이 많은 파리 같은 곳을 선호했지 이 영화의 남작처럼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아프리카 같은 오지로 떠나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남작은 아프리카로 떠났고 거기서 여자에게 얻은 돈으로 농장을 사고 정착하려 했던 것이다. 남작이 비난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 여주인공은 남작을 찾아 결혼식을 하겠다며 아프리카로 온다!  여주인공 카렌은 남작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블릭센 남작 부인'이라고 말하며 결혼식을 하러 왔다고 퍼뜨린다. 이는 당시 유럽에서 매우 자주 보는 광경이다. 촌에서 온 졸부 여자가 귀족과 결혼하게 돼서 기쁜 나머지 흥분해서 사방에 자기가 '남작 부인'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 말이다. 

그리고는 남작을 만나는데 조촐한 결혼식을 한다. 남작은 반지도 준비를 안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당신이 돈을 절약하려 할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 한국의 여성 관객들은 분개했다. 결혼을 하면서 반지도 준비를 안 하다니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결혼식 비용이며 모든 비용을 여자가 부담해야 하는데 남자가 자기 맘대로 반지를 사도 되는가? 필자는 당시의 관념으로든 지금의 관념으로든 돈을 지불할 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에서 주례는 여자의 이름도 기억을 못 한다. 그 사람이 바보라서? 아니다. 어차피 형식적인 것이고 사실은 아프리카까지 올 필요도 없이 정부 기관에 등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남작이  자기 돈만 받아 가지고 아프리카에 온 것을 보면 매우 양심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받은 돈을 금방 다 써 버리고 다시 여자를 찾아가 몇 번이고 돈을 요구하는 그런 놈팡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카렌은 결혼식 후 '자기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남작도 '당신 집'을 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 집은 '여자의 돈'으로 산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남작의 인품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는 언쟁이 시작된다. 가축을 샀느냐는 여자의 질문에 남작이 '가축'이 아니라 '커피'를 심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분개한다. 엄마에게 '목장을 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투자자에게 '목축업'을 한다고 해놓고 '농업'을 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남작의 대답은 '수입만 좋다면 당신 어머니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였다. 이 장면 역시 여성 관객들의 분노를 샀는데 필자는 남작의 판단이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역시 '커피 농장'을 해야 한다고 본 남작의 안목은 탁월한 것이지 않은가? 


그러자 여자는 말한다. "다음에 마음을 바꿀 때에는 당신 돈으로 하세요"라고! 참으로 비열한 발언이다. 남작도 필자와 같은 기분이었던 모양으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남작 부인이라는 칭호를 샀지 나를 산 것이 아니야"라고 말이다. 100% 동의한다. 나에게도 인권과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단 말이다. 그리고는 한 술 더 떠서 남작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동생'이라고 부른다. 자존심을 상할 대로 상한 남작은 사냥을 간다는 핑계로 집을 떠난다. 필자는 이 장면에서 여러분들께 묻고 싶다. 남작이 무엇을 잘 못했는가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 여자야 말로 문제 투성이의 천박한 성격 결함자로 보인다.

남작이 떠난 동안 여자는 자본가의 딸답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을 벌인다. 그리고는 남자를 하나 만나게 되는데 그가 '소위 사냥꾼'인 로버트 레드포드이다.  이 곳의 서양인들은 모두 농장을 사서 말하자면 투자 이민을 온 사람들인데 로버트 레드포드는 맨 몸 하나로 여기저기 빌붙어 사는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매우 그럴듯한 인물로, 신사로 포장을 해 놓지만 말이다. 로버트 레드포트에게 로망을 품고 있는 많은 여성 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 영화가 암시하고 있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진정한 직업은 '남창'이다. 사냥은 그냥 무직자이며 건달에게 직업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붙여준 직업명일 것이다. 


아무튼 이때 세상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 난다. 바로 일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남작은  사나이답게 전쟁에 참가하여 싸운다. 그리고 로버트 레드포드는? 그는 영국과 독일의 왕가에서 싸우는 것이라며 자신은 참가하지 않는다. 사실 로버트 레드포드의 말이 맞다. 일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것이 유럽의 민중들이 원한 것은 절대 아니었으며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온 것에 틀림없다. 그래서 필자도 로버트 레드포드가 전쟁에서 도망간 것에 대해 비난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열심히 참전해서 용감하게 싸운 우리의 '블릭센 남작'은 왜 비난받아야 하는가 말이다. '블릭센 남작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남자들에게는 용기를 보이는 기회겠지만 여자들에게는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여러분들은 이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가? 필자에게는 그야말로 자신 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의 절정으로 생각이 된다. 


그리고는 여자에게 전쟁터의 남편으로부터 보급품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온다. 그리고 정부는 가족들을 시내로 대피하라고 지시한다. 여자의 반응이 뭣이었냐고? 여자는 그것은 대피가 아니라 억류라면서 자신이 사람들을 인솔하여 보급품을 보내겠다고 떠난다. 그리고는 길을 잃고 헤매어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결국 민병대에 의하여 구조되는데 그래도 자기 고집만 세워 민병대는 나침판과 길을 알려 준다. 여자는 마사이 족과 사자와 조우하며 결국은 보급품을 전달한다. 그리고는 남작에게 묻는다. "언제 집에 올 거야? 집에 아예 관심이 없군요." 필자는 이 장면에서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이봐요! 지금 전쟁 중이라고 전쟁 중! 


여자는 농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로버트 레드포드와 계속 바람을 피운다. 남편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바람을 피운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엄청 로맨틱하게 보일 것을 안다. 그리고 로버트 레드포드가 매우 매력적인 남성인 것을 안다. 진정으로 나쁜 것은 시드니 폴락이다. 영화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느냐 말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이라고? 기생충에게 수여된 상이 아니었다면 필자는 아카데미 작품상 자체를 평가 절하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다닐 때 드디어 남편인 남작이 돌아온다. 두 사람의 행위는 아무리 계약 결혼과 불륜이 일반적이었던 당시에도 지나친 행위였다. 불륜을 한다면 몰래몰래 했어야 하는 일이지 백주 대낮에 남자를 집안에 끌어들여 같이 살면 안 되었던 것이다. 결국 전쟁 후 사냥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여자의 돈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남작은 여자에게 물어본다. 이혼을 원하느냐고. 그러자 여자의 대답이라는 것이 "그 여자는 돈이 많아요?"였다. 과연 이 여자가 할 만한 반응이다. 처절하리 만큼 천박하지 않은가? 그에 반해서 남작은 여자에게 그동안 감사했다고 점잖게 이야기하고 두 사람은 이혼을 한다. 필자는 이 장면에서 남작에게 성원을 보냈다.


카렌은 남작을 떠나보내고 (이제 남작 부인이 아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자기와 결혼할 수 있는지를 에둘러 물어본다. 하지만 로버트 레드포드는 거절한다. 카렌은 심지어 남창도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이 장면도 상당히 미화를 한다. 카렌은 점점 더 레드포드를 속박하려 하고 견딜 수 없었던 레드포드는 '사냥을 떠난다'.


그리고는 영화는 대단원을 향해 달린다. 카렌의 농장에는 불이 나고 카렌은 빈털터리가 된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이미지에 맞게 여자에게 돌아와 돕겠다고 한다. 이때 카렌이 한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럼 저를 곁에 두실 건가요?"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거니와 일관된 태도이다. 평생을 "나를 전력을 다해 사랑하고 케어해 달란 말이다"라는 입장을 만나는 남자들마다 들이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 카렌의 불행의 원인은 그녀가 평생 "왜 사람들은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거야!"라는 방향으로만 생각을 했지 "왜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라는 방향으로는 생각하지 않은데 있어 보인다. 당신이야말로 상대방을 사랑히기는 한거야 라고도 묻고 싶다.


필자는 이번 글을 쓰면서 주저함이 있었다. 영화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고 누구나 자신의 편견에 갇히기 때문에 "편견"이나 "오해"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 자신이 그런 "편견"이나 "오해"를 하고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비난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비록 그러한 비난을 받더라도, 그리고 나 자신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편견"이나 "오해"를 나 자신이 하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더라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다.


그 이유를 말해 보겠다. 필자의 필명은 '북경의 한국인'이다. 한 1년 전부터 중국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있다. 그 동기가 되었던 것은 한국의 방송, 유튜브 동영상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정말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되어서 허상이 아닌 진짜 중국의 모습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객관적인 사실 만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사람들의 선입관, 편견, 그리고 오해에 거슬려서 사실 전달을 하다 보니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나를 교육시켜온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 사회나 중국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 그리고 착각들이다.


내 방송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필자를 "중국 공산당의 악행을 폭로하는 사람"으로 여기거나 "중국 공산당의 앞잡이"로 여긴다. 그리고 같은 동영상을 놓고 혹자는 "시진핑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며 혹자는 "돈에 눈이 멀어 중국 비난 방송을 하는 자"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필자는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경험으로 해석한 사실을 전할 뿐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고 카렌을 비난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보지 못했다. 남작을 옹호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필자는 "반 페미니스트인 꼰대"라는 소리를 예상한다. 그리고 "오만함에 가득 찬 편견의 소치"라는 비평도 예상한다. 어떡하랴. 필자는 내 가슴 밑바닥에서 느끼고 울리는 소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에게는 세상이야 말로 "아름다운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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