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철 Mar 11. 2020

시진핑이 우한에 지금 간 까닭은?

중용의 길을 가고 싶다

필자에게는 딸이 있다. 그런데 이 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딸이기는 해도 딸은 필자를 그렇게 대우해 주지 않는다. 필자의 지적 수준이 모자라 대화가 안된다며 필자를 상대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날 필자는 진지하게 딸에게 물어보았다. 

"따님, 저를 좀 대화의 상대로 취급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안돼"

"왜?"

"아빠는 교양이 부족해서 내 이야기를 못 알아들어"

그도 그럴 것이 딸은 서양 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실제로 필자는 딸의 입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어도 그들의 저서나 사상에 대해서는 인터넷 찾아보면 나오는 두세 줄 까지 소개 이상은 모른다.


"딸, 그럼 아빠가 공부하면 될 거 아니야? 우선 입문서라도 소개해 주면 내가 읽고 이야기해 볼 테니 하나 지정해줘"

"그럼 헤겔부터 읽어봐. 헤겔을 알아야 기본적인 개념이 생길 테니까."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년 8월 27일~1831년 11월 14일

헤겔! 들어보았다. 정-반-합의 변증법!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헤겔은 공산당의 원조라서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헤겔의 등을 업고 나타난 막스는 엄청나게 더 나쁜 사람이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필자는 헤겔의 책을 하나 샀는데 두께부터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딸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읽어야 했다. 필자는 매일매일 노력을 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노력을 한 결과 27페이지를 읽는 데 성공했다. 이 헤겔의 글은 앞 문장을 이해 못하면 다음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필자는 하루 종일 한 페이지 정도를 읽고 나면 그 페이지 첫 문장에서 헤겔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 잊어버렸다. 결국 필자는 헤겔을 읽기보다 헤겔을 실행하기로 했다.


정: 헤겔은 똑똑하다

반: 필자는 똑똑하지 못하다

합: 헤겔이 하는 말을 믿자


어떤가? 필자는 훌륭한 사상가는 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이만하면 훌륭한 실행자가 아닌가? 하지만 딸은 그럴 줄 알았다며 자기와 사유의 담론을 하고 싶으면 헤겔을 완전히 읽고 이해한 후에 오라고 하였다. 아니 세상에 똑똑한 사람만 살라는 법이 있는가? 세상은 필자처럼 훌륭한 사상을 실행하는 사람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투덜투덜!


이 사건 이후 필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변증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당구에 한참 미쳤을 때 식탁 위의 밥그릇들이 당구공으로 보이기도 하였는데 이젠 뉴스에서 보는 사건들이 변증법으로 보인다. 아니 적어도 '정'과 '반'의 대립으로는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을 보라. 블룸버그가 중국의 공해가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사라졌다는 보도를 하면서 낸 내용인데 어떤 사람은 중국 쪽의 공해가 거대했었다며 이는 중국의 공해가 한국에 피해를 주었다는 증거라고 하는 반면, 어떤 이는 한국 쪽의 공해가 이전이나 이후에나 큰 변화가 없는 점을 들어 이는 중국의 공해가 한국에 별 피해를 주지 않는 증거라고 한다. 이런 사례가 변증법에 해당되는 것인지 필자는 잘 모른다. 하지만 같은 사실에서 서로 상충하는 의견울 내는 경우임에는 틀림없다고 본다.

사실 이런 상황은 의외로 많다. 최근 중국의 물가를 놓고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2월 중국 소비자 물가가 5%를 넘게 뛰었고 그중에서도 돼지고기 가격은 135%를 뛰었다고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보도하면서 코로나 19 바이러스 상황에서 물가가 너무 몰라 문제라고 하였다. (https://www.scmp.com/economy/china-economy/article/3074378/coronavirus-chinas-inflation-remained-high-february) 그런데 아래 그래프를 보라

 똑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지만 블룸버그는 소비자 물가인 CPO 외에 식품 물가를 제외한 Core CPI, 그리고 기업들을 위한 PPI를 함께 보여 주면서 그중에서도 제조 물가 지수인 PPI를 강조하며 중국의 물가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바로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서민 대중의 시각인데 비하여 블룸버그가 기업인 자본가들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필자가 보기에는 동일한 현상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가지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어제 시진핑 주석이 우한을 방문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왜 우한으로 갔는가?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정반의 두 가지 견해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우선 시진핑 주석의 우한행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시진핑 주석이 공사다망한 가운데 여러 위험과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우한에 행차하셨다는 것으로 주로 관방 매체들을 중심으로 조성하고 있는 의견이다. 소위 "위대한 나의 조국' 맥락인 것이다. 

반면 해외 반체제 매체들을 중심으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원흉이 시진핑이며 리커창 총리 및 여러 국가 지도자들이 방문 할 때에도 겁이 나서 얼굴을 안 내밀더니 이제 이 사람들이 어렵게 수습을 어지간히 해 놓자 느지막이 찾아와서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 사실 이 두 가지의 상반된 견해는 모두 동일한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라서 서로 다른 진실을 다투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해석이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진영의 시각은 이미 잘 알려진 성향으로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요즘 말로 "기-승-전-(친/반) 공"의 기조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가급적 이러한 사전적 해석을 배제하려 노력한다. 그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선 인물이나 상황, 그리고 시대를 배제하고 일반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중국의 현 상황과 같이 국가적인 전염병이 일어나면 국가 지도자가 현장을 방문하고 시찰하는 것이 필요한가? 대답은 네 아니오 둘 다 존재한다. 현장에서의 작업이 급박한데 높은 사람들이 자꾸 찾아가서 보고하게 하고 인력과 시간을 뺏으면 안되니 가야 하지만 절제한다 라고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반면에 신속히 현장에 가서 상황을 확인하고 필요한 지원을 신속하게 결정해 주어서 직접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우한의 경우는 어느 쪽이 맞을까? 필자는 후자가 맞는다고 본다. 직접적으로 환자를 다루는 의료진들이 정신이 없겠으나 국가와 행정이 해주어야 하는 후방의 지원은 충분히 중앙 정부 그리고 상부의 정책적 지원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지역 방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엄청난 인력과 사전 경호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가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주석의 방문이 그렇게 엄청난 사전 작업이 필요한 체계가 된 것은 중국 공산당의 큰 문제이지만 말이다. 


바이러스 초기에 시진핑 주석이 '춘절 분위기를 망치지 말라'는 등 안일한 대처를 한 것이 사실이고 조기 우한 봉쇄를 주장한 리커창 총리가 우선적으로 우한을 방문한 뒤에 시진핑 주석은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면서  현장을 방문하면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질 것을 걱정했을 수도 있다. 시민들의 감정 또한 시진핑 주석을 진심으로 환영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호전된 후에 우한에 간다면 당신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이런 압력을 받고 있기도 하다. 결국 시진핑 주석이 우한을 방문해야 하는 시점은 '바이러스 초기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이슈는 사그라지고 완전한 해결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아있지만 괄목할 만한 진전이 있어 우한 사람들이 기쁘고 또 수고한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시기'자 가장 최적인 셈이다. 그래서 우한 및 후베이 지역 외에는 새로운 확진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판단한 것 아닐까?


돌이켜 보면 다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순춘란(孙春兰) 부총리가 우한의 한 아파트 단지를 방문했는데 이 단지를 시진핑 주석이 방문한 것을 보면 사전 탐사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이때 현지 정부는 아파트 단지 안에 구호품 및 식재료 등을 전시해 놓고 물자 공급이 잘 이 루어 기고 있다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가짜다!", "형식주의!"라고 외쳐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소문에 따르면 바로 다음날 이 아파트에는 여러 가지 물자가 공급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시진핑 주석이 방문하였을 때에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하였는데 해외 반체제 인사들의 트위트에 따르면 이렇게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 사람들의 집에는 두 사람씩의 공안들이 뒤에 서 있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공안이 사람들을 위협하여 손을 흔들게 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공평을 기하기 위하여 말해둔다면 시진핑 주석이 방문하는 지역은 어디든 경호를 위하여 이렇게 한다. 물론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드는 장면은 선전부의 시나리오였겠지만 말이다.


또 하나 짚이는 것은 우한에 설치했던 '방창 의원(方舱医院)들이 해산된 것이다. 이는 우한에 더 이상 비상 체계가 아닌 일상 의료 체계로 돌아간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며 우한 시민들 및 중국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큰 것이다. 사실 큰 행사로 치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데 상대적으로 조용히 뉴스 보도 정도로 처리되었다. 마지막 남은 방창 의원에 시진핑 주석이 방문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시진핑 주석의 우한 방문에 맞추어 하나 남겨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시진핑 주석은 병원을 직접 방문했지만 환자들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서 대화를 하였다. 

화교 매체들은 정말 어이없다는 반응들이다. 화상 회의로 만나려면 베이징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우한 방창 의원까지 가서 화상회의를 하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얼마나 겁이 많은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여간 이 화상회의 장면은 해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이 중국 사람들에게는 국가 주석이 이렇게 위험한 질병 창궐 지역의 핵심에 여기까지 진입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며 국가 주석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는 데에도 인식을 대부분 같이 하는 것 같다.


필자는 사실 시진핑 주석이 우한에 가거나 말거나 별로 관심이 없다. 필자의 생활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과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사실들이 살제로는 동일한 근거에서 출발한 상반된 견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떤 뉴스를 만나면 자꾸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딸 때문에 27 페이지 읽은 헤겔의 변증법 생각이 자꾸 나는 것이다. 문제는 '정'도 보이고 '반'도 보이는데 '합'은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주로 중국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중국 뉴스를 다루고 있지만 한국 뉴스를 다룬다면 처지가 전혀 달라질 것이다. 국내 뉴스를 통해 보는 정치 뉴스들은 '정'과 '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극한의 '정'과 극한의 '반'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가면 '합'이 나오려니 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내 생전에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유명한 고전이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읽어 보지 못한 글이 떠오른다. 바로 '중용'이다. 읽기야 읽어 보았지만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그러 와중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TV에서 강의하는 것을 듣고 한 마디가 매우 인상에 남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중용이라는 것은 양 극단의 평균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의견에 대해 왜 그런 의견을 가지는지 배경과 맥락과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는 행위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중용'은 '정'과 '반'이 '합'으로 가기 위하여 필요한 '프로세스'가 아닐까? 필자는 필자가 써오고 있는 중국에 관한 글들이 '친중'과 '반중'의 대립에 있어 '중용'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 '중용'의 길이 우리 모두를 위한 '합'의 길에 이르도록 필자의 조그만 노력이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몬다.

매거진의 이전글 复工, 중국 업무 재개는 얼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