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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Mar 19. 2019

중국 양대 파벌의 쩐의 전쟁

시진핑 대 강택민

이제 후진타오 시대에 사실 상 강택민의 인마가 모든 요직을 장악하고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시진핑 주석과 강택민 전 주석 파벌 사이에 지속적인 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하지만 큰 흐름으로 본다면 이미 주석 직에서 내려와 세 번째 주석(시진핑이 연임이므로)을 맞이하는 강택민 파벌이 점점 더 위축되어 종국적으로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권력 투쟁을 밖에서 지켜보며 이러한 투쟁의 파편이 우리의 경제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그리고 조금 더 넓게 생각한다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가늠하여 삼국지 보듯이 관망한다.

하지만 사실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일이 지나가고 난 후에야 "아! 그 일이 그래서였어?" 하며 다음번에는 알 수 있겠지 하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실제 중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영향은 지대하다. 단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발생하고 지나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시진핑 파벌이 강택민 파벌의 잔재를 뽑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권력을 통해 치부한 강택민 그룹은 기득권을 모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러한 투쟁과 갈등이 돈의 흐름으로 나타나고 이 돈의 흐름은 우리 한국의 경제 활동에 직결된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시진핑 일파의 반대파의 해외 자산 찾기에 들어서면서 여러 면모가 알려지고 있다. 우선 갑작스럽게 거액의 해외 투자를 감행한 몇몇 재벌들에게 그 칼끝이 향했다. 이 맥락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것은 대만의 매체들로 현재의 상황을 각종 방법으로 시진핑에게 도전했던 강택민 파벌이 공격 수단이 다 하자 이제 방어로 들어갔고 그동안 축적한 재산을 해외로 뺴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사례가 안방보험이다. 안방보험은 등소평의 외손녀의 남편인 오소휘(吴小晖)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오소휘는 안방보험의 그룹 동사장(우리의 회장)이자 CEO이다. 안방은 우리나라의 몇몇 기업도 인수하였으며 미국 뉴욕의 월도프 호텔을 인수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5년 우리나라 동양생명, 2016년 알리안츠 생명,  2017년 알리안츠 글로벌 자산운용 등 인수)


시진핑 산하의 중앙기율위원회는 그동안 154만 건을 조사하였고 153만 7천 명을 처리하였다. 법원으로 이송한 인력도 5만 8천 명에 달한다. 그리하여 국내 숙청이 일단락되자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해외에 있는 사람은 잡아오고 해외로 보낸 돈도 찾아오려는 것이다. 사실 이 작업은 2014년 이미 시작한 일이다. 당시 숙청 작업을 이끌던 유금국(刘金国)은 19대에서 중앙기율위원회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숙청 작업은 이제 국내에서 홰외로, 그리고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향하고 있다.


앞서 예로 든 오소휘의 경우 예전에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사람이었다. 등소평의 외손 사위라는 꽌시를 배경으로 그는 불과 2010년 대에 설립된 안방보험을 몇 년 만에 전 세계 TOP 10에 들어가는 보험 회사로 성장시켰다. 즉 10년 만에 10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업적의 뒤에는 많은 공산당 및 정계의  이 세대 들의 지지가 있다. 그러던 그가 2018년 6월 9일 오후 북경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들긴다. 

"회장님, 밖에 많은 사람들이 회장님을 찾고 있습니다."

"누군데?"

"중국 공산당 중앙에서 찾는다고 합니다"

백여 명이 넘는 인력이 오소휘를 잡으로 온 것이다. 그들은 안방보험 건물을 모두 포위하고 지하 주차장 등도 모두 봉쇄한 후 오소휘를 잡으러 온 것이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사무실로 들어와 "중앙기율위원회에 가서 면담 좀 하십시다"라며 관련된 사안이 여러 건 있다며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고층에서 일층까지 끌려 내려와 잡혀갔다.  그리고 그를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방 보험은 6월 14일이 지나자 "일신 상의 문제로 오소휘가 복직할 수 없다"라며 실종을 선포하였다. 당국은 오소휘에게 투자 명목으로 해외에 뺴돌린 자산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안방의 해외 자산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뉴욕의 월도프 호텔이다. 안방은 2014년 19억 5천만 달러에 뉴욕 월도프 호텔을 인수하였다. 그리고는 2년에 걸친 리노베이션 후 개장한 바 있다.  당국은 이러한 ㅐ외 자산을 매각하여 대금을 중국에 가져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해외 자산을 많이 매입한 것이 완다 그룹이다. 완다는 해외에 2500억 위안을 투자했는데 북경 당국은 불합리한 투자라며 완다 왕건림(王健林) 회장의 해외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했다고 한다. 이렇게 투자 명목으로 외화를 반출해 가는 것을 후에 중국 당국은 막았고 덕분에 정상적인 무역 거래를 하는 기업들도 규모가 터지면 당국으로부터 이런저런 의혹에 대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 기업들도 영문도 모르는 체 누구에게 왜 얼마나 어쨰서 이 시기에 등의 질문에 근거 자료를 제시해야만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더구나 19대가 열리는 시기는 정치적으로 민감해서 큰 액수의 대외 지불은 모두 중지되거나 지연되었다. 다시 말해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중국의 정치 풍향을 항상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일정 규모 이상의 대외 지불은 모두 중앙에서 심사한다. 예전에 지방 은행에서 심사했던 것에 익숙했던 기업은 속이 탈 것이다.


19대 이후 중국의 모든 부호들은 조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고 한다. 증권 계좌, 보험 계좌, 투자 내용, 은행 계좌 등 모든 금융 자산에 대해 조사하여 불법 탈법의 소지가 없는지 조사하고 있다. 대만인들도 600만 NT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조사를 받고 있다.(한화 2억 2천)


중국이 외환보유고가 최고 4조 2천억 달러 정도였다. 그런데 2015년 한 해에 5천억 달러가 없어졌다. 현재는 3조 3천억 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략 1조 달러 정도가 유출된 것이다. 또 이 2015년 중국에서는 주식의 대 폭락이 일어났다 당시 중국의 주가는 상승 곡선을 달리고 있었고 인민일보는 지수 4000이야 말로 랠리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불을 붙였다. 많은 개미들이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고 급기야 지수는 5천을 넘어갔다. 공교롭게도 시진핑 주석의 생일(6월 12일) 최고점인 5361.5를 찍었다. 그리고는 급락을 한 것이다. 8월에는 5178이 2850으로 40%가 폭락하였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지탄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대변인인 인민일보가 투자를 부채질해놓고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국면에 가장 일차적인 책임자는 리커창으로 이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집도 못 가고 며칠간 사무실에서 기거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일련의 부양책을 발표한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결국 주요 국가기관들이 모두 나서서 주가 부양에 나선다. 6월 29일 양로 보험이 투입된다. 그리고는  7월 1~5일 국가 자금이 투입된다. 7월 8일에는 공안부 부부장 맹경풍이 증권감독위원회에 진주하며 공매도 등을 조사한다. 

이들이 연말까지 매입한 금액은 4조 3천억 위안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체 주가는 오르지 않았다. 

바로 이 자금들이 2015년 하반기부터 줄줄이 중국 대륙을 빠져나와 해외로 반출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달러 보유고의 저하와 위안화의 절하 상황으로 입증된다. 


결국 시진핑 그룹은 이러한 현상을 깨닫게 되었고 이렇게 자금을 해외 반출하는 세력들과의 전쟁, 즉 중국판 쩐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쩐의 전쟁의 시작은 201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며 시진핑이 이 시기에 입은 타격은 막대한 것이었다. 반대로 강택민 일파는 2015년 하반기에서 2016년 상반기까지 시진핑 벗겨 먹기에 들어간 것이다. 6월 12일 시진핑 생일이 지난 13일부터 대규모의 벗겨 먹기 작전이 시전 되었다. 항생지수는 6월 12일 이전에는 약간의 추락세였으나 13일부터는 자금이 집결하기 시작하여 상승 국면까지 이끌어 낸다. 상해-심천-홍콩을 연결하여 삼각 형세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장에 이상한 공고가 뜬다. 현재 이후 모든 증권사들은 장외 자금, 장외 펀드에 어떠한 서비스나 편리를 제공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건은 무슨 의미인가 하면 중국은 당시 지하 사채업자들이 증권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그냥 돈을 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자기들이 운영하는 전략에 따라 그들의 계좌가 운영하는 대로 사람들이 따라 하게 하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운영하면 각각의 개미의 행동과는 달리 목돈이 움직이게 되고 여기에 몇몇 증권사나 다른 지하 사채업자들이 가세하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 행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6월 13일에 바로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안 된다는 공고가 뜬 것이다. 시진핑의 생일인 6월 12일은 금요일이었다. 공고가 뜬 13일은 토요일. 주말 동안 자기 돈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던 개미들은 증권 시장이 문을 연 15일 아침부터 매각에 나서 대형 하락세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하락세는 한 달간 지속되었고 1/3이 빠진 주식이 속출했다.  중국 정부는 총동원되어 이 사태를 막으려 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나중에는 중신증권 등이 동원되고 심지어 중국석유, 중국석화, 보험 기금까지 투입되었다. 그런데 전혀 효과가 없는 데다 아무래도 상대방은 중국 정부의 액션을 언제나 한벌 앞서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시진핑 그룹은 마치 망망대해에 외딴 똇목을 타고 항해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적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더구나 모든 국가 기관이 힘을 합쳐 대응하고 있는 가운데 신화사가 이런 공고를 내 무력화하고 판을 망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시진핑 그룹은 6월이 지나 7월에 들어가면서 무엇인가 잘 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결국 실마리를 찾아낸다. 즉 지하 사채 업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돈이 어니서 났고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하겠기에 말이다. 돈의 소스를 찾아 광동으로 홍콩으로 조사를 계속해 나가 보니 대부분 수상한 자금들이 홍콩에서 환치기 수법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개미들을 모으는 자금 모집, 자금 분배 방식으로 사용하여 주식 시장에서 작전을 한 후 다시 지하 경제를 이용하여 홍콩으로 돈을 뺴돌린 것이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홍콩의 실력자는 다름 아닌 증경홍(쩡칭홍, 曾庆红)이어서 그가 의심되었다. 


8월에 2차 주가 폭락이 나면서 9월이 되었을 때 맹경풍(孟庆丰)이 조사에 나선다. 이 조사에 걸린 것이 다름 아닌 증권감독위원회의 부주위 유운산(刘云山)이었다. 중앙전시의 아들이 주도하는 자금, 계속 그 소스를 찾아 조사하던 중 8월말, 9월초 즈음에 맹경풍이 지하 사채업자들을 일망타진하여 잡아들이며 자금도 몰수하였다. 그 규모가 무려 4300억 위안이었다. 


그리고 2016년 1월 3차 주가 폭락이 온다. 이때 시진핑 그룹은 이미 지하 사채 업자들의 보유 금액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미 투자 명목으로 상당 부분이 해외로 나간 것이다. 이들은 기업 명의로 해외 투자, 인수 합병 들을 했기 때문에 시진핑 쪽에서 다시 기업들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1년이 지난 2017년도이다. 결국 중국 국내 권력 투쟁을 포기한 강택민 파벌이 돈을 해외로 옮겨 나갔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종소군(钟绍军)이다. 이 사람은 원래 컴퓨터 공학과 출신으로 석사 마친 후 다시 심리학 석사를 하고 청화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시진핑 측근이 되었다. 현재는 군인 신분으로 대령이며 중앙군사위원회 반공청 주임이라는 요직 중의 요직을 맡고 있다. 이 사람은 사실 군 복무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유소기의 아들 유원(刘源)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군의 모든 기밀 사항을  이 유원이 종소군에게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문으로는 그에게 비밀 부대 하나가 배속되어 온갖 비밀 작전을 수행한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시진핑을 보필하는 3명의 왕 씨가 있어 통칭 삼왕이라고 하는데 우선 중앙 경위국 국장 왕소군(王少军) 중장, 왕소홍(王小洪) 북경시 공안국 국장, 그리고 왕춘림(王春林) 북경군구 사령관이다.


이렇게 시진핑 진영은 완다, 안방, 그리고 해남항공 등 강택민 파벌의 기업인들을 하나씩 낙마시키며 해외에서 투자한 자산들을 조사하고 몰수해 가고 있다. 세계 최대의 부동산 그룹으로 우뚝 섰던 완다는 중국 전역에 있던 완다광장을 하나씩 하나씩 매각해 가고 있다. 결국 완다 그룹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완다 그룹의 지분 상당 부분을 시진핑의 누나가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도 이러한 완다 그룹의 행보를 읽으면 전후 맥락이 짐작이 된다. 

그리고는 금년에는 소위 인터넷 거인 BAT, 즉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의 창업주들이 모두 물러나는 사태에 까지 이른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서 피해나간 사람은 홍콩의 이가성이다. 그는 중국 대륙에서 철수했고 이때 이가성의 중국 탈출을 막으면 외국 기업이나 대만 홍콩 기업에게 끼칠 영향이 커 중국 당국이 철수를 허용했다. 이가성은 이에 그치지 않고 홍콩의 중환센터를 매각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이가성이 홍콩마저 떠난다는 신호를 주었다. 중환 센터는 일 년 수익률이 7%를 넘는 우량 자산인데 이를 매각한 것은 이가성이 더 이상 홍콩에 대규모 자산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으로 사람들은 보고 있다. 홍콩의 자본이 홍콩을 떠나면 중국의 상해, 심천 증시와 함께 홍콩 증시도 문제가 되고 글로벌 펀드들 입장에서 아시아 증시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증시도 영향을 입을 수밖에 없다. 강택민의 남은 파벌들의 시진핑에 대한 투쟁과 재산 이동이 이렇게 나비 효과를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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