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백지 혁명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한국과 서방의 언론들은 이 백지 혁명을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도전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겪었던 수많은 민주화 운동과 의미를 연계하고 있기도 하다. 유신 말기의 참혹한 현실과 전두환 군부, 그리고 6.10 항쟁을 모두 청년기에 맞이했던 필자 입장에서는 한국의 민주화 이후 다시는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이런 시위를 또다시 맞이하는 것에 대한 감회가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백지 혁명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진실을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우선 이번 백지 혁명은 대다수 군중들이 방역 정책에 대한 불만을 들고 일어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초기 도화선은 지난 11월 24일 신장(新疆) 우루무치(新疆) 우루무치(新疆)에서 발생한 고층화재였다. 철저한 봉쇄 조치로 피해 가구들이 대피하지 못하고 소방대가 현장에 접근하지 못한 참사로 추정된다. 결국 1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상하이에서 화재를 애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습은 지난 26일 처음 등장한 뒤 중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중국 전역의 최소 17개 도시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일부 군중들은 공산당과 시진핑의 하야를 요구했다. 그리고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나타났던 백지 시위가 확산된 것이다.
https://www.thenewslens.com/article/177584
젊고 깨어 있는 학생들이나 일부 시민들은 이번 방역의 원인이 집권 공산당의 불합리한 정책과 비민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여 시위를 하고 있어 서방 언론들은 드디어 중국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아닐까 다소는 흥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거리 한 귀퉁이에 살고 있는 필자의 눈과 귀에 대다수 인민들은 그저 목전에 괴로운 방역 상황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인다. 물론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민주와 자유를 외치고 백지를 높이 들고 시위하는 것은 필자의 30년 중국 생활에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다. 엄청난 변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시위가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져 나가기 어려운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앞서 지적한 대로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은 소수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권력에 도전하면 당국에 의해 끝까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매년 중국에는 전국적으로 수 백 차례의 시위가 있지만 모두 이해관계나 해당 지방 정부 또는 관리의 부패를 대상으로 한다. 공산당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사상범이 되어 엄중한 결과가 오거니와 가족과 친구들까지 연루된다. 그래서 사실상 민주를 요구하는 마음이더라도 피해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서 한정된 사람이나 조직의 이념 문제가 아닌 부정부패 문제로 처리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중앙 정부는 11월 29일 소위 중요 발표를 해서는 중앙 정부의 이른바 20개 방역 조치(방침)는 아무 잘 못이 없다고 확인했다. 이날 정말 중요한 메시지는 "젊은이들은 저항력이 강하지만 60세 이상, 또는 8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라는 마치 언뜻 들으면 과거 발언을 중복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중국인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안다. 이 말은 "젊은이들에게는 감염되어도 큰 문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라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방역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발표 다음날 방역의 총책임자인 쑨춘란이 전문가들과의 회의 석상에서 오미크론 변이는 치명성이 크지 않아서 젊은이들의 경우 심각한 상황으로 가는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는 풍향이 정해진 것이다.
중대 발표 후 가진 기자와의 문답도 중국의 경우 모두 사전에 정해진 질의 답변이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답변도 중요 메시지이다. 이날 "만일 감염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가능한 빨리 관계 당국에 알려야 한다. 7일간 격리해야 한다."라는 답변이 나왔다. 이 또한 기존 방침과 동일한 발언이었지만 메시지는 다른 것이다. 이 말의 메시지는 바로 "7일간 격리해야 한다고 했지 어떻게 하라고는 안 했다"라는 뜻이다. 즉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강제 격리, 강제 봉쇄, 방창 의원이라고 불리는 수용소 격리 등을 꼭 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만일 이 조건이 없어지면 이번 시위에 나선 인민들의 99%의 요구가 대답을 얻은 것이다.
http://www.nhc.gov.cn/cms-search/xxgk/getManuscriptXxgk.htm?id=6fedb556a9324cd3b5b986446ee7ca34
여기에다가 중대 발표에서는 "일부에서 중앙의 방침을 벗어나는 과다한 집행을 해서 문제가 커진 곳들이 있다"라고까지 했는데 이는 각급 지방 정부에게 알아서 방역을 완화하라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각 지역에서 봉쇄한 지역을 풀고, 방창 의원에서 사람들을 풀어 주었으며, 대중교통처럼 사람들이 밀집하는 곳도 더 이상 방역 어플을 통한 코드를 보여줄 의무가 없도록 했다. 필자가 사는 지역은 원래 매일 PCR 검사를 했어야 했는데 이제 재택근무하는 사람은 안 해도 된다. 광저우 시에서는 문제가 되었던 수십 개 단지를 일시에 해제하였다. 이제 주민들 쪽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자발적 방역을 하고 있다. 많은 PCR 검사소가 철수하여 줄어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PCR 검사를 자발적으로 받으려는 사람들이 검사소를 찾아 헤매고 또 긴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정부 쪽이 굳건히 방역 완화의 길을 가고 있다.
정부는 이렇게 "너희가 풀어달라고 했지? 그래 너희들 소원대로 풀어주었으니 죽든 말든 알아서 해라"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민주화'가 아니라 이 방역 완화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걱정하고 있다. 금년 5월에 중국과 미국의 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Nature Medicine에 기고한 바에 따르면 150만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즈베스티야의 보도에 의하면 영국의 한 기관의 분석 결과는 130만~170만 명 정도가 사망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전에 분석을 제시한 바 있는데 필자 또한 유사한 결과가 나왔었다. 더구나 노인들은 백신 접종율도 낮고 사망률도 높다고 해 놓으니 집안에 노인이 사망하면 가족들이 책임을 져야 할 판이다.
현 상황은 어떤 의미로는 코로나 상황에서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던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에게 책임을 벗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연간 380조에 달할 것이라는 PCR 검사 비용으로 파산할 지경에 다다르던 지방 정부들도 좋아라 검사소를 철수했다. 이제 사람들이 감염이 되거나 말거나 다 인민들의 책임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내년도 경제 계획은 '성장 위주의 계획'이 될 것이라는 바람을 잡고 있다.
https://m.ftchinese.com/premium/001097894?topnav=china&archive
그리고 근본적으로 중국에는 공산당에 대항하는 조직이 없다. 야당도 없고 종교 단체도 없다. 모든 조직은 공산당이 관여한다. 이번에 백지 시위 등이 가능했던 근본 원인은 방역을 하기 위해서 단지 그룹 메신저 방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방역 관련 정부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 사용되던 이 단체 방이 방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방으로 사용이 된 것이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도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단지별로 함께 행동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같은 단지 내의 공동 불만에 대해서는 단체방을 통하여 민중이 결집할 수가 있었지만 이 단지를 벗어나면 전혀 방법이 없다.
중국 정부는 이미 공안들을 동원하여 젊은이들을 무작위로 스마트폰 검사를 하고 SNS 등에 있는 대화를 확인하고 있다. 반정부 메시지나 백지 혁명을 옹호하는 메시지가 있으면 파출소로 데려가 반성문을 쓰게 하고 부모에게 각서를 받고 풀어주고 있다. 동시에 겨울 방학 기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을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조치하고 있다.
이런 단절점들을 극복하고 반정부 또는 민주화가 조직화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단지 중요한 의미는 이미 반정부, 반 공산당, 반 시진핑의 맹아가 뿌려졌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 어떤 민중의 시위가 있더라도 당국은 민주화의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이들의 민주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리청펑(李承鹏)이라는 사람은 방역을 완화하자 벌써 민중들이 이번 백지혁명을 애써 잊으려 하고 당국이 방역 완화하려는 것을 알았으면 시위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댓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망각은 중국인들이 생존하려는 수단이다"라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 자신도 과거 유신 체제 하에서 현실을 도피했고 전두환 시절에도 현실을 회피했다. 필자같은 사람은 이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https://www.wenxuecity.com/news/2022/12/04/12000652.html
필자가 관찰하는 한 가지 조직화의 가능성은 인민이 아닌 지방 정부와 관료들이다. 지난 팬데믹 3년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처절한 상태로 전락해 왔음을 필자는 지난 수년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왔다. 문자 그대로 민생이 도탄에 빠져간 것이다. 이러한 우리에게 익숙한 상황은 비록 엄청난 규모와 영향을 주고 있지만 조직화되기 어려운 반면 지방 정부와 지방 공직자들의 어려움과 불만은 잘 인지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 중국의 5천 년 역사 중 관료주의와 싸워서 이긴 왕조는 한 번도 없었다. 지난 팬데믹 3년 동안 지방 정부들은 엄청난 부채 증가, 수입 감소, 이권 부재, 의무 증가, 그리고 부정부패 퇴치 운동과 시진핑 3 연임을 위한 권력 투쟁으로 고통받아 왔다. 차이가 있다면 아무도 큰 소리로 외치지 않고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간의 중국 뉴스를 전하며 간간이 지방 정부의 고충에 대한 소식을 전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민중들의 시위가 어째서 그렇게 신속히 전국으로 전달되었는가, 어째서 중앙 정부는 신속히 사실상 방역 완화를 하게 되었는가, 어째서 각지에서 신속히 PCR 검사가 철회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동안 소리 없는 지방 정부들의 투쟁과 지방 정부 공무원들의 불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잘 조직되어 있다. 만일 이들이 민중의 편에 서거나 민중의 시위를 이용하기 시작한다면 그때 비로소 중국의 민주화, 백지 혁명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월동주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