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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Aug 02. 2024

황치판이 말하는 신질생산력(新质生产力)

황치판(黄奇帆)은 중국의 걸출한 경제 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보시라이(薄熙来)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보시라이가 당서기로 있었던 총칭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고 이 사건 이후 출세와는 멀어진 사람이다. 그는 상하이 방의 한 사람으로 분류되었었고 보시라이 사람으로도 여겨졌지만 다른 관련 인사들과는 달리 큰 풍파를 겪지 않고(그렇다고 출세의 길을 가지도 못했지만) 조용히 학자의 길을 걸으며 말하자면 완만한 내리막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린이푸(林毅夫)처럼 용비어천가를 부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국 공산당의 정책을 비판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원만한 처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그를 처음에는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황치판은 마윈이 인터넷으로 고리대금업을 시작하려 할 때 제도와 규정을 잘 구부려서 기존의 체계를 허물지 않고 시진핑 지도부가 원하지 않는 행정적 조치를 취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에 대한 필자의 시각은 많이 달라졌는데 그가 중국의 경제에 대하여 소개하는 영상이나 글을 보며 진정으로 중국의 전략, 정책의 상호 연관 관계를 잘 이해하고 학문적 시각에서 해석해 내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황치판이 정치적 좌절을 겪지 않았으면 총리가 되었을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이들이 많다.

서두가 길었다. 요즘 시진핑 주석이 자주 이야기하는 신질생산력(新质生产力)을 최근 황치판이 광둥성 당교의 춘계 주체반(主体班)에서 소개한 내용이 네트워크에 올라와 여러 미디어들이 전제하고 있다. 이를 필자 나름대로 해석하여 여러분들에게 좀 더 이해가 쉽도록 전달해 드리고자 한다.

https://news.creaders.net/china/2024/07/30/2758020.html

 우선 황치판은 신질 생산력이 일반적인 경제 성장이 아니라 전통적인 생산력 발전 경로에서 벗어난 성장 도약이며 중국식 현대화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물질적, 기술적 기반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다른 글에서 '비연속성'이라고도 표현했는데 말하자면 신질 생산력은 중국이 해온 고도 경제 성장의 연속선 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성장 곡선을 파괴하고 뛰어넘는 개념이라는 뜻이다.

황치판은 한 국가가 경제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네 가지 방법이 있다고 제시한다. 첫째는 자본 투입, 노동력 증가, 천연자원 개발과 같은 지속적인 요소 투입을 통해 생산이 소비를 초과하여 잉여와 축적을 창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제 무역에서 순 수출을 형성하거나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국제 투자를 도입하는 등 국제 경제 협력을 통한 것이다. 셋째는 외국의 무력 정복과 식민지화 등을 통해 다른 나라의 자원과 부를 약탈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과학 기술 발전과 자원 요소의 최적 배분을 통해 총 요소생산성을 높여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최근에는 자본, 토지, 노동과 같은 요소의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교 우위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에 의존하는 투자 중심, 부채 중심 성장 모델은 이제 더 이상불가능해지고 있다. 세 번째의 식민지 등의 방법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불가능한 방법이다. 따라서 남은 방법은 과학 기술 발전과 자원 요소의 새로운 배분을 통해 총 요소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 유일하다.

여러 매체들에서는 중국이 지금까지 고도성장을 해온 방식의 연장선에서 통화 확대를 해야 된다거나 경기 진작책을 써야 한다는 말들을 하지만 실제 하나하나 따져보면 중국의 경제가 이제 그런 방식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인구 감소다. 과거 끝없이 저가 노동력을 제공하던 중국에서 이제 그런 인구 효과는 역방향으로 작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자원의 경우도 글로벌 생산량의 30%에 미달하는 수준의 생산을 하는 중국은 글로벌 자원의 50%를 소비하고 있다. 이제부터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은 급격하게 비용과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다. 자본의 경우도 중국은 지난 2년 동안 M2를 연간 20조씩 늘렸는데도 주식 시장이 움직이지 않고, 집값도 오르지 않고, 원자재 가격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결론을 나타낸다. 중국은 이제 더 이상 양적 팽창 방식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진핑 주석이 신질생산력을 내세우는 배경일 것이다. 황지판은 현재 중국의 총 요소생산성 증가율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40~60%에 불과해 성장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기술 혁명이 없이는 경제에 내재된 양적 변화만으로는 개선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신품질 생산성 발전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형성하고 경제 성장의 모멘텀을 유지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14억 인구가 중국식 현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신질 생산력 발전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신질 생산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황치판은 신에너지, 신소재, 디지털 스마트 기술, 바이오 의약, 첨단 장비 제조 등 5개 분야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중국 정부는 기존 정책에서 소위 9대 전략 신흥 산업(차세대 정보기술, 생명공학, 신에너지, 신소재, 첨단 장비, 신에너지 자동차, 녹색 환경 보호 및 항공우주, 해양 장비 및 기타 산업)과 6대 미래 산업(사이버네틱스, 양자 정보, 유전자 기술, 미래 네트워크, 심해 및 우주 개발)을 이야기해 왔다. 필자가 볼 때 황치판이 예시한 5개 분야는 자체로서도 매우 큰 시장을 포함하고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다른 산업에의 연관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5개 분야의 산업은 기타 다른 산업들을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변환시키는 트랜스포메이션의 효능이 있다. 그리고 그 변환 결과가 신질 생산력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중국 정부로서는 이러한 5개 분야를 우선 집중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황치판은 신질생산력 시대의 '불연속성'을 거듭 강조한다. 파괴적인 이론적 혁신, 파괴적인 기술 혁신, 파괴적 프로세스 혁신, 파괴적인 도구 혁신, 파괴적 요소 혁신 등이다. 이중 파괴적인 요소 혁신이란 데이터 요소의 도입과 활용을 말한다. '요소'라는 말은 중국의 경제 이론에서는 국가 경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인식하여 투입과 산출을 정의하는데 그 대상이 되는 것이 인력, 자본, 시설, 기술 등이다. 여기에 최근에 정식으로 데이터를 다섯 번째 요소로 정의하고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국가 데이터국을 설립하고 각지에 데이터 거래 시장을 만드는 것 등이 다이 데이터 요소의 도입의 일환이며 동시에 신질 생산력을 구축하기 위한 5개 분야 추진에 필연적인 것이다.

이 신질 생산력의 추진을 위해 도입된 지표는 생산적 서비스의 GDP 비중이다. 여기서 생산적 서비스라는 것은 황치판이 다른 곳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이발, 안마와 같은 일상생활형 서비스가 아닌, 정보 통신 서비스, 물류 서비스, 반도체 설계 등 산업 가치 사슬에 부가가치로 작용하는 서비스들을 말한다. 그는 생산적 서비스 산업은 제조업의 이익, 산업 부가가치의 높고 낮음, GDP의 내용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애플이 직접 휴대폰을 생산하지 않아도 전체 가치 사슬을 장악하고 제공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생산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취한다고 본다. 그는 중국의 생산적 서비스 비중을 27%, 유럽은 40%, 미국은 50%로 본다.

두 번째 지표는 수출입 무역에서 서비스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세 번째 지표는 고급 장비, 고급 제품 최종 가치의 비중이다. 네 번째 지표는 신질 생산력을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의 비율이다. 다섯 번째 지표는 총 요소생산성이 GDP 성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황치판에 따르면 중국은 이제 생산량을 늘려서 재화를 획득하는 유형의 산업을 지양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전하겠다는 것이며 그 수단은 과학 기술 혁신이다. 따라서 향후 중국은 과학기술 개발에 전 국력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과학 기술 개발은 비단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군사 안보적 차원에서도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며 미중 및 서방과의 갈등은 더욱 그 긴급한 필요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왜 그러는지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국가 과학기술 예산이 5조 원 삭감되었다. 또 과학 기술 전략이 국가 외교 안보 전략이나 국가 경제 발전 전략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는지도 잘 설명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관성에 의한 국가 과학 기술 개발과 엉뚱한 정책을 불문곡직 실행하는 정부 하에서 기업과 연구소, 대학은 각자 알아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연구 개발을 하고 있어 보인다. 이런 상태로 이제부터 중국이 휘몰아칠 과학기술 개발에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우리 과학기술 개발의 난맥은 곧바로 근간 내에 중국 제품에 대한 우리 제품의 기술 우위가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최소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라도 인식을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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