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야심한 밤에, 게다가 장대비까지 퍼붓는 험악한 날씨에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오게 된 건 다 고래 때문이었다. 자정 무렵 창밖에서 “우웅, 우우웅!” 하는 높고 기이한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마치 바다 속인 것처럼 빗속에서 고래가 헤엄치고 있었다. 크고 하얀 고래는 우리 동과 앞 동 사이의 허공을 천천히 선회하면서 소리쳤다.
“큰물이 나서 아파트가 잠길 겁니다. 모두 옥상으로 대피하세요.”
황당한 소리였지만, 나는 서둘러 트렁크에다 옷가지와 비상식량을 담고 비옷을 챙겨 입었다. 고래가 경비원 모자를 쓴 때문이기도 했지만, 물에 관한 일이라면 고래만 한 전문가가 있겠냐는 생각도 들어서였다. 옥상에는 먼저 대피해 온 이들이 비옷이나 우산에 의지한 채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텐트를 친 이들도 보였다. 속속 대피해 오는 사람들로 옥상이 비좁아지자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대피하라고 해서 올라오긴 했지만 아파트가 잠긴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게요. 경비나 서는 사람, 아니 고랜가? 아무튼 경비 따위의 말에 장단 맞추고 있으니 존심 상하네요.”
이런 와중에 아파트 입주민 대표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지금 옥상에 계신 주민분들은 안심하고 내려오세요. 그리고 우리 아파트가 물에 잠길 거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경비는 당장 잘라버리겠습니다.”
볼멘소리를 터뜨린 이들을 선두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내려가고, 남은 이들 중 절반이 또 내려가고, 시차를 두고서 두엇씩 내려가면서 옥상에는 나를 포함해 몇 명만 남게 되었다. 그칠 줄 모르고 퍼붓는 빗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눈떠보니 날이 밝아 있었다. 비는 그치고 하늘은 쾌청했다. 하지만 옥상 아래 세상은 온전하지 않았다. 고래가 말한 대로 큰물에 잠겨 있었다.
섬처럼 고립된 단지 안의 옥상들마다 서성거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황당하고 절망스럽고 막막한 기분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고래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크고 하얀 고래가 눈앞에서 자맥질하고 있었다. 고래는 아침 순찰이라도 도는 듯 옥상들 사이를 헤엄쳐 나아갔다. 그리고 단지가 끝나는 저만치에서 물을 후욱 뿜어 올렸다. 하얗게 치솟은 물줄기가 넓게 흩어지는 순간,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허공에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