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방의 나비

간편소설 셋

지난 가을, 저지대의 낡은 빌라 촌에는 저기압이 북적거렸다. 자석에 끌어당겨진 쇳조각처럼 태풍들이 생기는 족족 한반도를 덮치면서 탱글탱글 우동 사리 같은 빗줄기를 퍼부었고, 그것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반지하방으로 밀려들어왔다.


침수, 배수, 침수, 배수를 되풀이하는 동안, 내 배포는 짜증에서 근심, 우울, 체념을 지나 달관의 경지로 확장된 반면, 내가 아끼던 꽃무늬 이불의 솜은 한데 뭉쳐져서는 공룡알에서 타조알, 거위알, 닭알을 거쳐 메추리알 크기로 위축되었다. 턱밑까지 끌어당겨서 덮으면 볼륨 있게 푹 눌러주는 무게감이 애인처럼 좋았는데…… 아무리 해도 펴지지 않는 메추리알을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창가의 텔레비전 위에 접시를 받쳐서 놓아두었다.


아침이면 잠시잠깐 손수건만 한 햇볕에 감싸지는 작고 단단하고 동글한 솜뭉치를 눈 비비며 감상하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이처럼 출발은 하얗게 빛났지만, 그 뒤는 볼품없이 후줄근했다. 그리고 ‘오늘도 중고로운 평화나라’에서 구입한 침낭의 지퍼를 닫는 것으로 캄캄하게 마무리되었다.


침낭 속에서는 늘 같은 꿈을 꾸었다. 솜뭉치 안으로 들어가 애인과 만나는 꿈이었다. 말하자면 침낭 속의 꿈속의 솜뭉치 속의 사랑인 셈이었다. 길고 추운 겨울밤을 견뎌내는 난로 같은 사랑의 불꽃을 한 줌 지핀 다음, 솜뭉치에서 빠져나와 꿈을 깨고 침낭의 지퍼를 열면, 손수건 햇볕에 감싸진 솜뭉치가 맞아주었다. 변함없이.


그러다 변함이 생겼다. 손수건 햇볕이 한 겹 두꺼워진 3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솜뭉치에 금이 가는가 싶더니 안에서 뭔가가 비집고 나왔다. 나비였다. 눈처럼 하얀 나비는 쪼글쪼글한 날개를 햇볕에 말렸다. 날개는 티슈가 물을 빨아들이듯 햇볕을 흡수했다. 그리고 금세 다림질한 것처럼 반듯하고 팽팽하게 펴졌는데, 날개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부챗살처럼 뻗어 있는 맥락을 타고 반짝이는 작은 알갱이들이 흘러가는 게 보였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중에 팔랑팔랑 떠오른 나비. 삐뚤빼뚤 흔들리는 비행 궤적을 따라 분분히 날리는 빛 알갱이들. 천장 주위를 배회하며 탈출구를 찾던 나비는 환기를 위해 빠끔히 열어둔 창문 틈으로 빠져 나갔다. 그리고 물속에 던져진 소금 결정처럼 햇볕 속에서 스르르 사라졌다. 창가 텔레비전 위의 접시에는 찢긴 채 텅 빈 속을 드러낸 솜뭉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