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은 그래도 하루를 다시 시작한다. 평소에 시를 쓰던 벤치에 망연히 앉아 있노라니. 누군가 다가와 빈 노트를 건넨다. 새 노트를 받아 든 패터슨은 다시 쓰기 시작한다. 패터슨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이 쓰는 시란 결국 물 위의 낱말일 뿐이다(중략)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 오는 초조함도, 목표를 달성했기에 오는 허탈감도 없이,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사라질 내 삶의 시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생의 허무를 보다, 김영민, 사회평론'
하루하루 생활의 반복된 모습이 일상이라면, 그 하루 속에 어떤 루틴을 더하고 빼는가에 따라 결과적으로 삶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좋은 걸 더하면 좋아지는 쪽으로, 나쁜 걸 더하면 나빠지는 쪽으로.
그렇다면 단단한 습관으로 차곡차곡 하루를 채우고, 그 하루를 계속 반복하면 그만인 게 아닌가. 인생의 오의가 그 정도라면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가시성이 인생의 잔인함이다.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고, 저축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살면 될 것 같은데, 조금씩 해보기도 했는데, 뭐가 뜻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조금씩으로는 쌓이지 않는 모래성이고, 속도가 모자라 이륙하지 못하는 비행기다. 지독하게 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나를 방해한다. 습관이 그래서 어렵다.
의지와 근성 같은 말을 맹신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마음은 보이진 않지만 유한한 자원이다. 삼일정도는, 몇 번은 충만한 의지로 극기의 삶을 살 수 있을지라도. 하지만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소년만화 주인공들처럼 이를 꽉 물고 일어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드라마틱한 근성과 의지는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간 수많은 시간을 통해 충전되는 것이고, 한 번 사용된 힘은 다시 충전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근성으로 가득 찬 원피스의 루피보다, 매일의 루틴으로 강해진 원펀맨의 사이타마가 최후에 이길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적어도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고 소소한 결심이 결론적으로 인생을 바꾼다.
물 위에 시를 쓰는 것 같은. 거창하지 않은 순간들이 생을 지탱하고, 성장시키며 결국에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할 것이다.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장광설을 늘어놓은 것은 오늘이 2024년의 첫날. 한 해의 경영을 고민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무엇을 더 하고 뺄 것인가. 물 위에 어떤 마음을 새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