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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Feb 02. 2024

'죄송합니다'의 가격은 얼마인가.

회사생활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계를 넣으라고, 합계. 내가 말했잖아 어?”


“죄송합니다.”


밥을 잘 드시고 들어오자마자 파트장께서 지점별 Job설명회 참석 예상인원을 보고하라고 하셨다. 아직 취합도 다 마무리되지 않았던 상황. 급하게 몇 통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허겁지겁 만들어 간 출력물을 눈앞에서 흔들며 파트장님이 급발진하셨던 것이다. 지난번에도 하셨던 지적이었기에 ‘죄송합니다’라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무실 안에서 ‘어!’ 혹은 ‘말이야!’와 ‘죄송합니다’의 티키타카가 몇 번 이어졌다. 목 끝에서 다른 말이 나오기 직전에서야 파트장님은 피드백을 멈췄다. 오늘도 ‘죄송합니다’를 얼마나 꾸준하게 외치고 다녔는지. 파블로프 아저씨의 개가 된 기분이었다. 파트장님이 나를 호명하면 튀어나오는 ‘죄송합니다’.  


휴가 중에도 전화는 수시로 걸려왔다. 통화의 마무리도 항상 ‘죄송합니다’였다.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은 지겹고, 뻔한 결말.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이 말했다


“뭐가 그렇게 죄송할 일이 많노.”


취직도 안 해 본 놈이. 뭘 안다고.. 괜히 불쌍하게 보이는 게 싫었던 나는 괜히 있어 보이려 목에 힘을 단단히 주고는


“마. 아마추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원래 이렇게 말하고 돈 버는 거다”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진짜로 내가 받는 월급은 ‘죄송합니다’의 대가로 받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 가격이 궁금해졌고, 그 계산을 위해서 우선 출근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 번의 ‘죄송합니다’를 말하는지 카운트해봤다. 총 33번. 연봉을 근무일 수로 나누면 일당은 10만 원 정도. 아 나는 죄송합니다. 한 번에 3천 원을 버는구나. 취직 전 경험한 알바 중에서 시급이 높은 편이었던 PC방 밤샘 알바의 경우가 시급 2,400원. 그나마 식대는 쌀과 밥솥만 제공인 조건이었으니 굉장한 발전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계산을 한 번 해보고 나자 ‘죄송합니다.’를 말할 때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늘은 벌써 69,000원을 벌었군. 이제 몇 번 안 남았네. 뭐 이런 기적적 정신 승리.


15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나의 ‘죄송합니다’의 단가도 많이 인상되었다.  상사 밖에 없던 사무실에 후배들도 꽤나 늘었고, 일을 시키는 사람이 뭐를 궁금해하는지 알 정도의 눈치도 생겼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에 따라 연봉도 올랐다. 기쁘게도 한 번의 ‘죄송합니다’도 없이 퇴근하는 날들도 생겼다. 이것저것 다 따지면,  '죄송합니다' 한 번에 십만 원 정도 될까? 시간을 들여 계산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성공의 경험을 통해 자신감과 자존감을 쌓을 수 있겠지만 보통의 직장생활에서는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성공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무탈한 하루에 감사한 날들이 있을 뿐. 올드보이의 오대수. 오늘도 대충 수습하며 보낸 날들이 쌓이며 직장인은 시나브로 자라난다. 매일 가슴 뛰는 날들만 가득하다면, 아우... 몇 년 못가 심장 관련 질환을 훈장처럼 얻고서 DNF(Did Not Finish) 하지 않을까? 실력과 눈치는 무수한 실패, 다시 말해 '죄송합니다'의 축적을 통해서 향상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시도가 없이는 실패할 수 없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진땀 나는 순간은, 어떠한 업무를 진행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는 실패로 인해 배우고,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버티는 힘이다. 레이스 당일을 버터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42.195미터의 10배 20배가 넘는 거리를 꾸준히 달리며 쌓아가는 누적거리, 그 지루한 과정을 부상 없이 완수해 내는 게 핵심이다. 날씨가 나를 말리고 피로곰이 발목을 잡던 날에도, 일단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섰던 날 들, 그 하루하루가 풀코스를 버텨낼 몸을 만든다.


마라톤은 단거리 게임같이 느껴질 정도로, 대부분의 월급쟁이가 버텨야 할 직장 생활은 아득하게 길다.  '죄송합니다'로 겨우 버텨낸 하루. 그런 날들의 반복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직장생활의 마일리지는 꾸준하게 쌓여간다.  그 지루한 반복이 주는 힘을 믿고, 오늘도 일터로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나에겐 사야 할 나이키 신발이 있으니. 그나저나 이 짧은 글 속에서도 13번이나 '죄송합니다'를 썼다. 역시 습관이 무섭다.

[신에게는 아직 사지 못한 나이키 신발이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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