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빈 킵툼이 죽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인데 마음이 먹먹하다. 아니 그보다 먼저 믿을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제 24살, 이제 마라톤 세계 신기록이 공인된 시점, 이제 곧 파리 올림픽에서 그의 우상이던 킵초게와 나란히 달릴 예정이었는데, 이제 곧 두 시간의 벽을 공식적으로 넘을 사람이었는데.. 이제 곧.. 앞으로 오지 못할 수많은 '이제'들이 아쉬워 마음이 아팠나 보다.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을 수많은 성취들이 이제 또 저만큼 멀어져 간다. 케냐 시골 마을에서 일주일에 300km를 달리며 꿈꿔온 미래가.
두 시간의 벽이, 그깟 36초 차이가 뭐가 그리 대수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 그 사람은 분명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일 거야. 뛰어본 사람들은 알지, 그 별거 아닌 30초를 위해서 얼마의 시간을 달려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인내를 해야 하는지. 일주일에 300km씩 달리고 나면 어떤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 달리고 쉬고, 또 달리고, 계속 훈련만 이어지는 고문에 가까운 하루하루를 버티어 냈던 사람이라는 걸. 그것만으로도 이미 존경받을 선수였는데.
24살이면, 이제 마라톤을 시작한 지 1년밖에 안된 선수라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남아있을지. 앞으로 달릴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인류의 한계를 얼마나 넓혀갈 수 있었을지. 나는 가늠조차 안되지. 마라톤 1시간대의 세계는 킵초게가 살짝 엿보고 온 게 전부였으니. 작년 10월 시카고를 달릴 때 너는 알고 있었을까. 모두가 버티기에 급급한 35km 구간에서 오히려 페이스를 올려 치고 나가던 순간, 기록을 예감했을까. 마침내 세계기록 돌파가 확실해졌을 때에는 너도 보통의 주자들처럼 피니시 포즈를 고민했을까. 국기를 들고 멋지게 포즈를 취하며 웃는 그 모습을 너의 친구들은 얼마나 자랑스럽게 보고 있었을까. 너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사람들이 많아져 그나마 다행일까. 간절했을 세계기록을 넘어서고 난 뒤라서 다행일까. 세상에 다행인 죽음이 있기는 한 걸까. 계속해서 이어지는 물음표가 무상하다. 나의 어린 영웅. 이제는 조금 천천히 달리며 편히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