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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할 수 있었던 건 '겨우 하나의 인생'

'아침바다 갈매기는', '이토록 사소한 것들'

by 오제명

개인의 선의로 공동체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일주일 사이 두 편의 영화를 보며 고민해 봤지만. 희망찬 답을 꺼내놓기엔 너무 일찍 노회 해져 버린 듯하다. 우리가 몇 세대를 관통하며 이루어 놓은 공동체 속에서 개인은 겨우 '이토록 사소한 것들'뿐이지 않을까. 수 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마침내 실행한 인생을 건 모험. 하지만 그것을 통해 그들이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하나의 인생. 누군가의 삶의 무게 앞에 '겨우 하나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편하진 않지만. 하나의 삶이 망가질 위험을 무릎 쓴 베팅의 배당치고는 부족한 느낌이 강하다.

[이런 섬세한 감정을 연기해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무결했다면 하나의 균열로도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얀 티셔츠에 묻은 김치 국물은 숨길 수가 없으니까. 빨던지 갈아입던지. 하지만 내가 사는 리얼월드는 이미 엉망인 채로 어떻게든 굴러가는 중이고, 하나의 소란정도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사소한 일이 되어 버린다. 영국과 판례가 사는 가상의 어촌도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살며, 또 만들어온 공동체는 다양한 편견과 모순을 품고서 단단히 굳어버린 지 오래다. 질식할 것 같은 청춘들은 탈출을 꿈꾸다 좌절해 목숨을 끊거나, 죽을 수는 없어 돌아올 뿐이다. 달라질 것 없는 내일에 질린 용수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죽음을 연기하는 것뿐. 온 동네를 한동안 들었다 놨다 우당탕탕 영화 한 편을 찍어도 아침 바다를 나는 갈매기에겐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항구일 뿐이다. 용수와 영란은 성공적으로 연기를 마무리하며 퇴장했지만 공동체는 여전히 공고하다. 판례는 마을회관에서 웃으며 화투를 치고, 영국은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같은 모습으로 조업에 나선다.

어느 겨울 새벽에 감포의 작은 항구에서 생선을 싣고 들어 온 배를 본 적이 있다. 작은 배에서 생선들을 크레인으로 옮겨 실었는데, 1톤 트럭을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치게 양이 많았다. 코끝이 시리고 이마가 아프게 차가운 공기와 쨍하게 맑아져 가는 아침하늘. 지나치게 따뜻한 밥과 국. 새벽 어촌에선 허기가 아니라 온기를 먼저 채우는구나 느꼈던 한 끼. 배와 트럭 주변으로 수시로 떨어지는 물고기 때문이었을까. 아침바다에서 분주한건 오히려 갈매기들이었다.

일상의 분주함에 금세 쓸려가 버릴 이야기임에도 우리가 꾸준히 탈출과 구원의 서사를 응원하는 건 실제의 삶이 숨 막힌다는 반증이 아닐까. 사소한 균열일지라도 이야기가 만들어 주는 찰나의 틈으로 참았던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에, 그 한 번의 호흡으로 또 얼마간 버텨낼 힘을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비록 겨우 하나의 삶을 구하는데 그칠지라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감수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 그런 믿음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또 몇 달을 살아갈 힘이 되어 줄지도. 모르겠다.


[여러가지로 읽히는 좋은 영화.영상과 편집도, 연기도 탁월하다 독립영화치고가 아니라 그냥 잘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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