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기회도 부족한 사회
과학계의 ‘석학 노름’(※ 오타가 아니라 연구비 이슈가 개입되어 있어 쓰는 표현)이 끝 간 데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자꾸 흘러나온다. 사실관계는 아직 확인해봐야 한다고 전제를 하고 봐도 IBS기초과학연구원에도 파열음이 계속 들려온다. 단장 하나의 연구 수행 과정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연구단 핵심 기술 관련 기업 소유자가 단장을 맡는 등 예견된 파국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과학계의 해묵은 논쟁 중 하나가 연구비 양극화라는 주장이 나오는데 더해, 그 블랙홀이 IBS기초과학연구원이 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은 현장에서도 자주 나오던 차여서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대형 연구비가 지원되는 곳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그들을 ‘구원’하는 전가의 보도는 ‘그 사람은 석학입니다’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과학계만 한정된 일이 아니다. 학계 전체가 이렇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학계 논쟁과 파국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일류대, 명문대 교수로 재직 중인’ 석학 이야기다(※ 오죽하면 석학의 석이 돌 석(石) 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일까?).
왜, 석학은 어김없이 일류대, 명문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일까에 관해 의문을 가져 본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만일, 석학이라서 일류대, 명문대에 재직하게 됐을지, 일류대, 명문대에 재직하며 석학이 됐을지의 인과관계를 짚어본다면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 사례가 많을 게다. 무엇보다 일류대, 명문대를 진학한 우수 학생들이 평범한 연구자조차도 석학 반열에 이르게 하는 주요 동인인 게 현실이다(※ 원래 대학교 사회 평가에 가장 민감한 계층은 재학생과 졸업생이 아니라 소속된 직원과 교수들이란 이야기가 있다).
단순히 연구 측면만 본다면, 평범하거나 부족한 이들을 소위 석학들이 거느리고 연구에 매진하면 당연히 실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외 사례는 그 석학이 시쳇말로 ‘사기 캐릭터’급 천재 아니면 표절과 연구부정으로 점철된 진짜 ‘사기꾼’ 일 때뿐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교육 측면에선 많은 게 달라진다.
우수한 학생들의 고유 특성은 누가 잘 가르쳐서라기보다 혼자서도 잘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공부와 연구 의지가 누구보다도 강하다. ‘혼자서도 잘해요’ 이게 사실 우수한 학생들의 표상이다. 반면에, 부족한 학생에 가까울수록 혼자 공부하는 방법도 모르고 뭘 공부해야 할지 모른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의욕 과잉은 대개 ‘활자 중독’에 이른다.
일류대, 명문대에 석학들이 치우쳐 있는 건 기실 우수한 학생들에 기인할 수 있음을 이미 전제했다. 사실 이런 상황도 비틀어 보면, ‘학교의 양극화’라는 게 고등학교 이전과 대학교 이후가 다르게 나타난다. 우수한 학생들은 언제나 우수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우수한 학생들은 선택과 집중된 환경에서 최적의 독서조차 할 수 있지만, 평범하거나 부족한 학생들일수록 어렵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활자중독 성향이 강해지며 양서와 악서에 골고루 노출되어 있다. 우수한 학생들은 양서에서 자양분을 얻고 악서에서 위기감을 느끼지만, 평범하거나 부족한 학생들은 양서를 불편해하고 악서에 쏠리는 경향이 크다. 이런 세태를 보면,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란 말이 절실히 느껴진다. 그러면서 이들은 어려운 주제를 쉽게 소화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책과 강연자에 집착하고 열광한다. 이를 바꾸어 보면, 당신이 가진 100만 원을 월 10%의 수익을 꼬박꼬박 보장하겠다는 말에 놀아나는 것과도 같다.
이들에게는 정말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평범하거나 부족한 아이들일수록 좋은 선생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자본주의 사회 경쟁 체제에서야 우수한 학생들이 더 좋은 기회를 얻는 건 상식이지만, 적어도 공교육에선 공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게 필자의 오랜 생각이다.
평범하거나 부족한 학생들, 사회 진출 후 인생 이모작으로 방향 전환을 꾀하기 위해 재 진학하는 학생들을 한 여러 형태의 고등교육기관들 중 단연 돋보이는 곳은 폴리텍 같은 교육기관이 있다. 실무, 현장 중심 교육 환경에 집중되긴 했지만, 일류대, 명문대에 비해 열악한 교육 환경이 처해 있다. 평범하거나 부족한 학생들일수록 좋은 교육환경과 선생이 절실한 게 현실이다. 우수 학생, 우수 학교 중심 지원이 정권과 부처 실적을 내는데 효율적이긴 하지만, 이런 게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평범하거나 부족한 학생들이 출발점부터 점점 뒤처지게 한다. 갓 세상에 나온 아이들을 보면 평범하거나 부족한 학생일수록 준비도 부족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특히, 어쭙잖은 정신승리 격의 ‘토크 콘서트’가 활개를 친 게 이런 아이들의 맹점을 잘 파고든 거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고등 교육 문제는 참 어렵고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처방도 어렵고 정답도 없다. 다른 건 몰라도 평범하거나 부족한 아이들도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에 자신의 명성보다 이들 교육에 관심이 깊은 석학 교수와 선생들이 있어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우리나라에 만들어졌으면 싶다는 게 필자의 바람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