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보다 심각한 정부 주도형 배터리 연구개발 사업
배터리 전기 버스, 렌터카, 택시 보급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추진한 ‘배터리 (전기차) 리스’ 사업이 1년여 만에 좌초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제주도는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면밀히 따져 보지 않고 무모하게 뛰어든 결과다. 산업통상자원부, 제주도, 에너지공단과 시행 사업자인 특수목적법인의 사업 운영위원회는 지난 1월 12일 회의를 열어 중단키로 했다고 한다.
중단 사유는 ‘수요가 없었다’였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배터리 교환형 전기 버스는 23대, 렌터카는 48대, 택시는 1대에 불과했으며 이 모두 목표치에 한참 미달되는 수준이었다. 해당 특수목적법인은 월평균 손실이 3000만 원 정도지만, 자체적으로 배터리 교환형 전기 버스 운행을 유지할 것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수지타산에 맞다기보다 해당 특수목적법인을 청산한다 했을 때의 난관이 더 심대하기 때문이라 보는 게 맞을 듯싶다. 애초에 이 사업은 아무 생각 없이 시작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2015년 10월에 발표한 필자의 여신금융 초빙 원고에서 내다본 이 사업의 장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원래 배터리 (전기차) 리스 사업은 2011년에 출간된 필자 저서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우연찮게도 르노 쪽이 그 이후에 ‘RCI방크 배터리 리스’를 기존의 리스 사업에 부가한 형태로 시작했다. 필자는 2007년경부터 강연 등에서 언급했지만 필자와 RCI방크 배터리 리스는 독립적이었다 봐도 무방하다. ‘RCI방크 배터리 리스’는 배터리 전기차 제조사가 하는 민간 주도형인 반면에 필자 저서 내용은 과도기적 배터리 전기차 보급을 넘어가는 방안으로 제시했고 준공영 방식으로 배터리 전기차 보급을 위해 배터리 전기차 제조사를 끼우지 않은 형태였다.
여하 간에, 배터리 전기차의 하이 에너지 이차전지 팩 단가가 높기 때문에 고안된 일시적 방책이 필자가 2007년경에 고안한 배터리 리스 사업이었지만, 알 수 없는 연유로 배터리 리스 사업이 2015년 산업부 대통령 업무보고에 올라가는 황망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2015년 초에 바로 사업자 공모를 거쳐 에너지공단의 관치형 실증 사업으로 시작됐던 것이다. 당시의 사업 요강과 공고문을 훑어보면 내용은 없었고 방만하기 짝이 없었다, 선정된 실증 사업자가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받아 선정된 것이 아니라 선정 후에 자율적으로 만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즉, 수요 예측조차 사업자가 알아서 만들라는 조건으로 에너지공단은 선정했다. 수백억 원의 국비를 지원하면서도 부실 그 자체였던 것이다.
에너지공단과 RCI방크 사업 체계를 다시 잘 살펴보면, RCI방크 배터리 리스는 배터리 전기차 제조사인 르노와 닛산 그리고 금융상품을 맡은 RCI 방크로 구성 자체가 외려 단순하다. 그냥 르노, 닛산의 배터리 전기차 5종 구매 희망 고객들을 위한 기술 연계형 금융상품 옵션일 뿐이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제조사는 차량 유지, 정비 서비스를 포함하여 제공한다.
그런데, 제주도의 에너지공단 배터리 리스는 배터리 전기차 제조사 없이 특수목적법인을 에너지공단이 선정하고 이 특수목적법인이 이미 모아둔 배터리 리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증 사업을 수행한다. 컨소시엄형 수용자 연계 특수목적법인이 정부 지원금으로 하는 관치형 실증 사업이었던 것이다. 이번 보도를 보면 그 이용자 수요 자체가 선정 때 주장과 달리 부풀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예시한 비즈니스 모델은 컨소시엄의 배터리 전기차 판매자가 배터리 전기 버스, 렌터카 및 택시 이용자에게 배터리 가격을 뺀 채 판매하고, 특수목적법인이 판매자에게 배터리 비용을 모두 지불한 후, 컨소시엄의 배터리 전기차 이용자들에게 제반 비용을 청구하고 배터리 보증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복잡할 뿐 아니라, 현실성 떨어진 사업성 실증 사업으로 실제 사업이 이렇게 진행될 리는 만무하였다.
이미 실증 사업 시작 전에도 에너지 공단 배터리 리스 사업은 RCI방크 방식과 비교해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승용 배터리 전기차 리스에 추가된 옵션인 배터리 리스가 RCI방크 방식이었던 반면에, 에너지공단 방식은 배터리 스왑 앤 리스 방식이 주력이었다. 물론, 필자가 2007년 경에 이 아이디어를 고안했을 당시엔 ‘값 비싼 배터리'란 화두를 극복하는 게 급선무였고 배터리 전기차 보급의 주요 장애물이었기 때문에 고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10여 년 전에 비해 점점 하락하는 배터리 단가로 인해, 배터리 자체가 리스 상품으로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는 등, 시대와 현황에 맞게 전문가들이 기획 단계에서 제대로 검토했어야 한다. 배터리 리스는 교환형 배터리 전기차용으로 쓸 때, 교환형 배터리로 고정형 배터리보다 언제나 심각하게 낮은 단가로 해결할 수 있어야 수익성이 확보될 수 있다. 그래서 높은 배터리 전기차의 보급률의 자동차 사용 환경에선 이 모델의 수명이 종국에는 끝날 모델이었다.
이때의 민간 주도형으로 넘어갈 때의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민간 배터리 전기차 제조사들이 주도하는 RCI방크처럼 현재 자동차 리스의 부분 상품으로 정착시키거나 준공영은 또 다른 구체적 전략으로 기획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할만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 에너지공단 배터리 리스 사업은 실증 초기 단계에서 좌초되었다. 이 정도로 부실하고 황망한 수준으로 사업이 제안되고 대통령 업무 보고 후 시행된 데 대해서는 국정 감사 등을 통해 명명백백 밝혀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앞서 칼럼에서 밝힌 바를 다시금 그대로 가져와 강조해도 시의적절하다. 유독 정부 주도형 배터리 관련 사업은 악명이 높고 실패의 역사였다 할 수 있다. 갤럭시 노트 7 이상발화 원인 규명 때의 KTL의 ‘사실상 원인 불명’ 발표도 그랬다. 수없이 많은 무의미한 소재 개발 사업은 차치하고서라도, 저속 전기차 보급 사업, OLEV 기술 개발 사업, 준중형급 공용 배터리 전기차 플랫폼 개발 사업(현대차의 아이오닉이 이 사업 결과물이란 건 억지에 가깝다), 남산 및 각 지역 배터리 전기 버스 보급 사업, 제주도 배터리 전기차 및 스마트 그리드 관련 사업(이 사업 내의 배터리 리스 사업은 끔찍한 상황이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모범 규준 인증에서 무기력한 정부 역할, 볼리비아 리튬 광산 개발 사업, 서태평양 공해상 망간각 탐사 광구 확보 건, 에너지 저장 장치를 발전설비로 법제화, 중장거리(300~400 km) 주행용 배터리 전기차 개발 사업, 1톤급 배터리 전기 트럭 개발 사업 등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그동안 물 쓰듯 썼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거란 우려만 더해진다.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공무원들과 그 산하기관의 수준 낮은 전문가들의 질 낮은 아이디어로 죄의식 없이 수천억 원 이상 흥청망청 낭비되는 ‘좋은 예’를 보며, 낭비된 국비와 세금의 규모만을 놓고 봤을 때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의 최순실 씨와 그 관련자에 비해 공무원들과 관련 전문가들의 무능으로 인한 것이 훨씬 역사도 깊고 규모도 방대하다.
필자의 입버릇과도 같은, ‘공공의 영역에서는 무능이 곧 부패다’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역설적으로, 무능하나 관성적인 공무원이 유능하나 부패한 공무원보다 끼치는 해악이 훨씬 크다. 수없이 많은 ‘제2의 제주도 배터리 리스 사업’이 하나둘씩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 보인다. 개중 가장 유력한 것은 300 km 대 배터리 전기차 소재 개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국감에서 심각한 부실과 중복성이 있다 지적됐음에도 해당 부처와 모 정당의 야합으로 강행되고 있다. 무리한 강행의 배후에는 요즘 대형 부패 사건 관련해 언급되는 해당 부처 최고위층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기 수행 중인 부실 사업의 중단과 무능한 공무원과 산하기관 전문가를 효과적으로 퇴출하고 선순환하는 방책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