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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W Dec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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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학·회계학·국문학 학사가 이공계 석·박사 제치고 '국가 R&D' 라니

2000년대 초반, 여느 때와도 같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새벽으로 넘어가려는 시각, 책 볼 거 보고 논문도 좀 보다가 문서 작업 중이었는데, 익숙한 국번의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당시 이차전지를 담당하고 있던 A모 사무관이었다.


A모 사무관: 박 박사님, A입니다. 죄송하지만, 혹시 지금 들어와 주실 수 있으실까요?


필자: 아, 무슨 일이신가요.


A모 사무관: 오늘 평가위원회를 하나 다녀왔는데, 자료 검토하다 이상한 게 있어서요.


필자: 네, 갈께요.


이 과제 개발 목표는 이미 제품화되어 팔리고 있는 B 제품이다.  


대략 이와 같은 평가를 내렸다. 이 과제를 선정하는 것은 국가 R&D 예산 낭비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필자의 설명을 들은 A모 사무관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A모 사무관: “제가 비록 행정고시 출신이고, 담당관으로 몇년 간 맡고 있지만, 기술 개발에 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과제 계획서를 훑어보다 보니 정말 이게 말이 되나 싶은 게 있어서요.”


그러면서, A모 사무관은 자신이 이 사업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라고 인사이트를 받은, 일종의 ‘깨진 유리창' 하나를 찾아냈다고 하며 보여주었다. 그것은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참여 연구원' 리스트였다. 주관기관의 ‘참여연구원' 명단 아랫쪽에 ‘국사학과' 출신의 직원이 전지 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되어 있었다.


A모 사무관: “국사학과 출신이고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가능할까요?”


필자: “졸업 후 다년간 실무 경험이 있지 않고서야 국사학과를 나와 전공자도 제대로 하기 힘든 전지 개발을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A모 사무관: “역시,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D 교수란 사람, 뭐하는 사람입니까? 자기가 MXX란 소재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개발했다고 하며 평가 때 시끄럽던데……”(일화: D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배터리 사기 벤처의 배후 인물이며, 우리나라 최고액 대학교 기술이전 사기를 속이고 덮은 희대의 인물이다. 퇴임 후 그 대학교의 명예교수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으며, 배터리 벤처 사기로 번 당시 가치 10억 (지금으로 치면 50억이 넘을 듯)의 소득을 숨기기 위해 그 돈으로 같은 아파트의 큰 평수로 이사를 한 일화로 업계에 잘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이 학연계에 끼친 가장 큰 패악은 우리나라 이차전지 기술 발전을 30년 퇴보 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필자: “그 소재는 일본의 E사에서 상용화하여 파는 제품입니다. 그 분이 좀 그렇습니다. 이해 부탁드릴께요. ㅠㅠ”

이후, A모 사무관은 이 사업 선정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부처 상급자들에게 경고를 들었다 한다. 전문 평가 위원들이 선정한 결과대로 가는 게 맞다고 말이다.


이후, 이 사업 문제의 불씨는 이대로 끝나지 않고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직 평가기관 직원이 회사 이사로 취업하여 만든 중대형 사업이며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더해 참여기업 기제품화 내용을 사다가 정부 돈을 받으려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우리나라 이차전지 R&D 연구개발 사업의 초창기 흑역사 중 하나로 남게 됐다(물론 역대급은 V사다).


‘국가 R&D, X조 원이 새고 있다'란 지상파 프로그램이 기획되는 동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 제작 등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평가기관 직원 2인이 큰 인사상 피해를 입게 되는 참사를 일으키는 ‘나비의 날개짓'이 되었다.

당시 기술개발 과제를 주관했던 업체는 기술 개발 사업 종료 후 몇 년간 사업을 해보려 하다가 더 이상 이차전지 사업을 하지 않는다. 그와 달리, 당시 사업 기획, 평가 선정, 부실 수행의 주역들은 지금도 연구비위와 이차전지 관련 사건에 추문 단골 손님이 되고 있다.


이때 행정고시 출신의 이차전지 담당 사무관이 국가 R&D 사업 문제점을 지적하게 된 동기는 ‘전문 능력과 경험이 없는 사무원이 관련 회사에 다년간 재직했다하더라도 국가 R&D의 ‘연구조원'도 아닌, ‘연구원'으로 등재되어 참여율을 100% 인정받아 연구개발에 참여한다'는 건 당시 국가 R&D 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상식 이하의 시도였기 때문에 찾아낸 ‘깨진 유리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사이트는 ‘불행히도’ 들어맞아 잘못된 산업부 R&D를 바로 잡으려 했던 중요한 시도로 남아 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이 때 산업부 R&D의 문제를 바로 잡으려 했던 산학연관 관계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조직의 보복과 공격을 받았으며, 그 중 한 분은 이때 받은 피해로 백혈병에 걸려 한창의 나이에 가족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떴다.


어떻게 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가 R&D가 그나마 이런 소리 없는 분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삐걱거리면서라도 오늘날에 이르렀다고도 볼 수 있는데, 요즘 들어 여러 부처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제법 많은 정부 사업의 계획서와 결과 보고서를 보면, ‘행정 공무원들이 기술개발 과제의 참여율 50% 이상 연구원'으로 올라와 있는 일도 있고, ‘국사학과, 회계학과, 국문학, 디자인 전공 등등' 학사를 갓 받은 이들이 전혀 무관한 기술 개발 분야 국가 R&D의 높은 참여율을 가진 연구원으로 당당히 등재되어 있다.


외려, 전문능력을 가진 학사 전공자라도 신규로 뽑아서 과제를 수행해도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게 신기술 개발인데, 전문 능력을 가진 이들보다 공무원이나 회사의 회계담당이 비중 높은 참여율로 고액의 정부 출연금이 가는 국가 R&D 핵심 연구원이 용인되는 게 현실이다.


이미 이런 기미는 10여 년 전부터 명징하게 보였다고 할 수 있는데, 부처 산하 연구원의 원장직을 기술 전문가가 아닌 부처 행정관료의 전관예우 수단으로 활용할 때부터였다. 이들이 비영리 연구기관으로 몰려가게 된 이유는 전직관료이기 때문에 기관 예산 확보의 로비스트 역할을 높이 산 탓이라 한다.


거기에 더해,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까짓 연구원 원장직도 수행 못할 것 같으냐 하는 항변을 점점 드높이며 이제는 식품영약학 박사를 가진 분도 용감하게 특정 연구 기관의 장을 거쳐 평가원 원장까지 노리고 있는 세상이 왔다.


이를 보며 ‘뭐가 문제냐?’하는 관료 방식의 대응을 하는 이들이 다수가 되고, 이런게 바로 융합이요. 창조경제라는 잡설까지 나온다. 로봇이 어차피 제조업도 담당할 것이고, 누구나 웹과 책을 통해 동영상과 글로 기술을 이해할 수 있으니 전문가나 전문 능력을 꼭 현장에서 배양할 필요가 있냐는 볼멘 소리도 있다.


결국, 행정고시 출신 고위 공무원을 하다가 다양한 현장 및 민간 경험을 쌓아 공무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의 제도 덕에 행정고시 출신 고위 공무원들은 이공계 출신들이 다년간 실험실에서 연구대상과 싸워 얻은 전문 능력 없이도 쉽게 국가 R&D 핵심 연구원이 될 수 있고, 2년 정도 경험 후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그리고 연구 경력이 있다 하여 첨단 전문 연구기관의 장도 서슴지 않고 맡으려 한다.


결국 이공계를 들어가 정규 코스를 밟아 기술자와 과학자로 성장하고, 그리고 나이가 들어 과학 행정이나 첨단 연구 기관의 장으로 가는 것보다 그냥 행정고시를 봐서 중앙행정 부처 공무원을 하다가 산하기관의 국가 R&D 연구원으로 서류상 역할을 하게 되면 언제든지 전문능력을 가진 전문가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필자가 과문하여 이런 시대의 흐름을 미리 읽지 못하고 과학자의 길을 온 건 필자 개인의 문제였을 뿐이다.


다행히도 요즘의 젊은이들은 필자나 필자 세대 같이 과문하지 않아 사회 진출 자체를 공무원으로 집중하고 있으니 그들의 장래를 위해 현명하기짝이 없다 하겠다. 국가가 권장하는 직종이 공무원인데다, 공무원을 하게 되면 연구원도 될 수 있는데다가 고위공무원을 하던 중에 민간으로 이직하며 단숨에 대기업 임원도 될 수 있는 최고의 직종이 공무원이 된 것이다.


조금 있으면 수능 시험이 있다. 수능 시험을 본 많은 후학들에게 미리 당부하고 싶다. 이공계 가지 마라. 만일,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공계를 간다면 공무원 시험을 보고 이공계에서 석사와 박사를 하지 마라. 외려 공무원의 길을 가게 되면 더 빨리 연구원이 되고 외려 나이 들어 과학 행정가로서 정부출연 연구원의 원장도 쉽게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외려 과학자 행세를 하고 대우받으며 연구하고 국외 연수도 쉽게 가려면 공무원을 하라고 권해야 할 것 같다. 중앙행정부처에서 이공계 출신을 홀대하는 나라에서는 이공계의 미래는 없으니 공무원이 만능인 이상한 나라에서 괜히 두눈박이가 되려 하지 말고 외눈박이가 되는 게 좋다.


저런 현실이 고쳐지지 않는 한, 공무원들이 저런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이공계를 가지 말거나 가더라도 늦지 않게 공무원을 하는 게 최선인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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