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금속과 탄소재 전극은 음극인가 양극인가
구세대 기술로 이미 흘러간 리튬금속 이차전지들이 요즘 학연에서 역설적으로 득세 중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리튬 금속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리튬 이차전지에 관련된 자료와 문헌을 보다 보면 특이한 경향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리튬 금속 전극의 우리말 호칭이다. 어떤 글에는 리튬 ‘양극’이라 되어 있고, 다른 어떤 글에는 리튬 ‘음극’이라 되어 있다. 유명 포털에 올라온 자칭 ‘전문가’의 자료에도 ‘양극’, ‘음극’이 혼재되어 있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정답을 미리 이야기하자면, ‘음극’이 맞다.
그렇다면 왜 ‘양극’이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이것은 리튬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와 일어 ‘용어’를 비전문가들이 번역하는 과정에 일어난 대참사이다.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와 ‘술어’를 비전문가 시각의 ‘단어’로 지식과 공부 없이 얕은 생각으로 한 번역의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이 사례는 전문가 번역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필자가 종종 원용하는 주제이다. 양극의 원어는 캐소드(Cathode)이고 음극의 원어는 애노드(Anode)이다. Lithium Metal Anode의 오역 결과가 ‘리튬 금속 양극’인 것이다.
그렇다 해서 그렇게 쓰는 예가 없는데도 자의적으로 한 오역은 아니다. 쓰는 분야에 따라 애노드라 양극 혹은 음극으로 달리 쓰이다 보니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일어난 일이다. 가령, 전해공정 등 전류 혹은 전압을 인가(소모)하는 쪽은 대개 양극으로 쓰인다. 여기에 더해 Cathode Ray Tube의 번역이 ‘음극선관’이라 하듯, 캐소드가 음극으로 번역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과 번역가 일부는 ‘애노드’를 접하면 ‘양극’이라 불러버린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리튬 금속 양극이라는 말을 주저 없이 쓰고 있다. 심지어 맞춤법 검사기에도 애노드는 양극으로, 캐소드는 음극이 맞다고 바꾸라 권한다.
원래 애노드라는 말은 ‘전기화학적으로 산화반응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리튬 금속이 일차전지에 채용됐을 때, 전지의 사용(방전을 뜻한다) 중에 리튬 금속은 전기화학적으로 산화반응이 일어나며 리튬 이온으로 전해가 되기 때문에 애노드라 부르는 것이다.
시작은 일차전지 때의 애노드 번역인 ‘음극’으로 시작하여 이차전지에 와서도 음극을 공식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 시점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늘 묻는 포인트가 있다. 이차전지로 쓸 수 있다면 충전과 방전 때 각기 일어나는 반응이 환원과 산화이니 양극과 음극이라 다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호기심을 보인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애당초 일차전지와 이차전지의 전극을 각각 양극/음극, 정극/부극으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이런 구분을 곡해하여 한국에서는 이차전지의 전극을 캐소드와 애노드라고 써야 하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한국의 상황에서는 리튬 금속을 음극이라 번역하는 것이 적합하다(다음의 맞춤법 검사 결과에 나오는 ‘부극을 음극으로 바꾸는 것이 행정순화용어라는 것’도 완전히 틀린 것이다. 행정이 과학과 공학을 앞설 수 없음에도 일어난 참사이다).
이와 조금 다른 포인트로 전기화학 시스템에 널리 쓰이는 탄소재 전극이 있다. 그럼 탄소재 전극은 양극일까? 음극일까? 탄소재 전극은 리튬 금속과 달리, 일차/이차전지 내에서도 전기화학 시스템에 따라 양극이 되기도 하고 음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양극과 음극 둘 다 맞다. 탄소재가 음극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예가 리튬이온 이차전지이다. 그리고 탄소재가 양극으로 쓰이는 예가 Li/SO2 일차전지이다. 그래서 상황과 맥락을 잘 보고 써야 망신을 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리튬 금속은 전기화학적으로 언제나 음극으로밖에 쓸 도리가 없으니 언제나 음극이 맞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리튬 원소이고 금속상 리튬이고, 양극과 음극이다. 게다가 양극과 음극이 잘못된 만남을 하게 되면 그것이 단락이 되어 전지는 발화 내지는 폭발까지 이르게 된다.
10.11,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