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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철우 Mar 05. 2020

내로남불은 과학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일관적이지 못한 사람을 비판할 때 자주 활용되는 용어이다. 특히 정치적인 갈등 상황이 되면 왜 지난번 상대방에 대한 잣대를 지금은 스스로에게 똑같이 적용하지 않느냐면서 항의한다.

작년 여름부터 모 장관을 놓고 양쪽 진영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지금은 검찰, 언론, 야당, 여당, 태극기, 촛불 모든 세력이 뒤엉켜진 이유도 결국은 서로 내로남불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비판은 적절한 것일까?


나는 2008년부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기업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강사님들과 함께 GAM컨설팅 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11년째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아시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강사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이라는 것이 사실 일반적 조직과는 많이 다르다.

개인적 성향도 강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말도 많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조직을 이루고 그것이 무려 11년을 간다는 것은 이 업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작년은 우리 회사 설립 10주년이었다. 10년 동안 기업교육 업계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고 자평한 우리들은 러너코리아라는 회사와 함께 10주년 맞이 기념 특집 공개강좌를 기획했다.

우리 회사의 가장 자신 있는 컨텐츠인 심리학 내용에서 강사 1명이 한 시간씩 4시간 동안 차례로 특강을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컨셉은 요즘 많이 관심을 받는 인지 행동과학 쪽으로 정했다.


4명의 강사가 하나의 컨셉에 맞춰서 4가지 주제로 강의를 한다고 할 때 강사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중요한 것은 바로 강의주제와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를 누가 할 것인가? 하고싶은 주제가 겹칠수도 있고 꼭 필요한 주제인데 서로 안한다고 할수 있고,

누가 먼저 강의를 하고 누가 나중에 하는가는 이러한 릴레이 공개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처음 강의하는 아무래도 많이 긴장이 된다. 공개강좌의 특성상 1시에 시작한다고 하면 1시에 모든 청중이 다 오지 않는다. 1시에 강의는 시작되지만 처음 15분 정도는 매우 어수선하다. 조금씩 늦게 온 청중이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우왕좌왕 하면서 강의를 방해한다. 이러한 어수선함을 이겨내고 강의를 해야 해서 민감한 강사들은 처음을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후 강사들은 어떨까? 두 번째, 세 번째는 그나마 처음의 어수선함은 없지만 처음 강사가 너무 잘해버리면 내가 할 때 비교되어 자신감이 위축된다. 또한 앞의 강사가 진행한 내용을 잘 들으면서 혹시 유사한 내용을 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 마지막 강사는 어떨까? 토요일 오후에 진행되는 과정이다 보니 많은 청중은 강의 이후 약속을 잡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갈수록 청중이 이런저런 이유로 미리 자리를 떠난다. 그래서 마지막 강사는 처음보다 많이 자리가 빈 강의장을 보면서 강의할 수도 있다.

그럼 이것을 당시에 어떻게 결정했을까? 이러한 심도잇는 고민과 예측 가능한 위험들을 감안해서 각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결정했을까?


당시 결정과정은 지금도 우리 회사 단톡방에 남아있다.



11시 2분에 최초 제안한 내용이 11시 4분에 전체 기획 및 세부 주제, 순서 및 담당 강사가 결정되었다.

그 중요하고 복잡하다는 것이 단 2분 만에 정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있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해석 수준 이론 (Construal Level Theory)이라고 부른다.

해석 수준 이론 이란 다양한 현상에 대해 선택하게 될때 사람들은 개인에게 있는 심리적 거리를 통한 해석으로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적 거리는 시간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 관계적 친밀함을 의미하는 사회적 거리, 가능성을 나타내는 발생 확률적 거리등을 포함한다.

사람들은 심리적 거리가 멀수록 상위 수준으로 해석하고, 가까울수록 하위 수준으로 해석하게 되며, 이러한 해석 수준으로 기준으로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상위 수준 해석이란 추상적, 원칙적, 본질적, 중요성 등을 기준으로 why 관점의 해석을 말하고, 하위 수준 해석이란 구체적, 예외적, 활용성,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how의 관점에 따른 해석이다.


회사 내에서 누군가가 위법한 사실로 징계를 받는다고 해보자, 그 대상자와 친밀도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면 원칙과 규정을 말한다. 규정을 위반했다. 원칙대로 처벌해야 더 이상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대상자가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몇 년 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도 했다. 그러면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해하려 한다. 원래 그런 친구가 아닌데, 당시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했었던 것 같아. 그 친구 집안 사정도 이렇고, 그동안 열심히 회사에 대해 공헌도 했고.. 라는 방식으로 예외와 구체적 타당성에 따른 해석을 하려 한다.


10주년 기념 공개강좌를 준비하면서 주제를 선정하고 순서를 정하는 것은 실제 강의일 두달전의 일이었다. 이때 우리 회사 강사님들의 머릿속에는 무슨생각이 들었을까? 두달후의 이야기이다.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것과 관련된 해석이 대부분 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할까? 성공적인 강연회가 될까? 이 강연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등등에 초점을 두었지 누가 처음 하고 누가 마지막에 한다는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쉽게 고민없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강사들은 어땠을까? 점점 강의일자가 다가오면서 해석의 기준이 구체적, 가능성 측면으로 옮겨간다. 맨 처음으로 강의를 시작하게 된 내경우는 강의전날에는 도대체 몇시에 시작해야 어수선함을 최소화 해서 지각하는 청중에게 강의가 방해받지 않을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앞에 이야기했던 모 장관의 사례도 그렇다. 지난여름 그 장관을 수호해야 한다는 세력과 그 장관을 구속해야 한다는 세력이 나누어져 주말마다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싸웠다. 각자의 해석은 이렇다.


장관 수호의 입장인 사람들은 당사자와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 이렇게 해석한다. 표창장이 위조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80시간 인턴을 하고 100시간 도장을 받은 것에 대해 위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이른 적이 없다. 그런 부분에 특수부 검사 수십 명이 말이 되느냐? 내가 사모펀드를 알아보니 .. 이러한 상황과 사례를 구체적을 확인한다.

반면에 장관 구속 입장인 사람들은 당사자와 심리적 거리가 멀다. 이렇게 해석한다. 총장이 그런 표창장 준 적이 없다고 했다고? 이거 입시비리구만.. 인턴을 100시간 하고서 200시간 도장을 받았다고? 이거 위법이네. 구속시켜야지.라고 해석하고 말한다.

더구나 이런 심리적 거리와 해석 수준은 상호 순환관계를 이룬다. 그래서 심리적 거리가 증가할수록 상위 수준으로 해석하는 성향을 보이는데, 이는 다시역으로 상위 수준의 해석을 할수록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결과를 나타낸다. (Trope & Liberman, 2010)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불륜은 바로 이 해석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행위는 구체적으로 남의 행위는 추상적으로 해석하므로 발생하는 아주 과학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첫째! 내로남불이라고 함부로 비난하지 말아라!


비난하면 더욱 비판받는 사람은 자신의 해석 성향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더욱 극단적으로 간다.


둘째! 항상 나도 내로남불하고 있음을 인지하라!


나는 아닌것 같지만 나 역시 해석수준의 변화로 인해 내로남불 하고있다. 따라서 내가 내로남불 할수밖에 없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유의해라. 따라서 판단과 의사결정할때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이거 너무 가까운 거리로만 생각한 것이 아닐까? 먼 거리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셋째! 질문을 던져서 해석의 기준을 바꾸도록 유도해라!


"마감이 내일이 아니라 두 달 후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아?"

"지금 그 사람이 너의 동생이라면 지금처럼 판단할 수 있을까?"

"한 번 더 이 일을 경험하게 되면 어떻게 선택할 것 같아?"

"만약 본인이 팀장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져 기존의 해석 기준을 바꿔 생각하도록 유지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편협한 판단을 내리게 되는 인간의 의사결정을 보완해주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내로 남불... 진짜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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