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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철우 Mar 05. 2020

담배를 끊는 사람들의 심리학적 비밀


담배를 처음 끊기로 결심한 것은 1998년 군대에 제대해서 복학하고 2년쯤 되어서였다.  조금씩 피던 담배는 군생활을 정점으로 하루 한 갑을 돌파했고, 제대 이후 담배에 대한 열정은 멈춰지지 않았다.  기상과 동시에 한대를 시작해서 모든 행동의 마무리는 담배였다.  전철에 내리면서, 강의가 끝나면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흡연자의 천국이던 시절이었다.  강의실을 나오면서 복도에서 한대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던 시절이었으니..


 목이 엄청나게 부으면서 인후염 통증을 앓았고 일주일을 꼬박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다가 드디어 결심했다. 담배를 끊어야겠노라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동안 아파서 담배를 못 피워서 그런지 흡연 욕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남들이 다 생긴다는 금단현상도 없었다. 술을 먹을 때 조심하라고 했지만 술을 먹어도 특별히 흡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내게 독한 놈이라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쉬운걸 왜 못 끊고 있지?

2004년 금연 7년 차가 되었다. 아니 이제 내게 담배란 전혀 의미 없는 존재였다. 그냥 뭐..  냄새나는 것..  



그런데 위기가 찾아온 것은 회사에서 처음으로 사내 강사라는 직책을 맡게 되고 난 이후였다. 

사내강사를 하면서 기존의 업무와는 전혀 다른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매뉴얼도 없었고, 강의안도 없이 그냥 처음부터 생짜로 모든 것을 창작해야 하는 꽤 스트레스받는 일이었다. 


당시 전국의 영업점을 다니면서 강의를 했었는데 1박 2일 출장 코스가 많았다. 지방에 있는 모텔에서 당시 대리이던 나는 선임 차장님을 모시고 지내는데 사지 멀쩡한 남자 둘이서 지방 모텔에서 밤에 뭘 하겠는가? 

술밖에 없었다. 술을 마시는데 당시 차장님이 꽤 골초 애연가셨다. 연신 담배를 피워 대시고, 모텔방에서도 피우시는데 7년여 만에 흡연 욕구가 샘솟기 시작했다.  어.. 왜 이러지?  담배가 너무 아담하고 맛있어 보였다. 저걸 한번 피울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의지력으로 어떻게 해서든 막고 싶었지만 나는 금연 6년 5개월 만에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그리고 한 모금 빨았을 때의 그 어지러움, 깊은 몽롱함..... 

그리고 나는 다시 예전의 골초가 되었다. 


 담배를 끊다가 다시 피우면 그동안 못 피웠던 것을 다시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이후 에는 하루에 두 갑 가까이 피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는 그 가격이 많이 인상되어 있었다. 

양담배를 피우면 되게 눈치 보던 시절에 담배를 끊었는데 이제는 던힐, 말보로를 자연스럽게 피우는 사회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와이프는 난리가 났다. 몇 번이고 싸우면서 금연을 요구했지만.. 나는 괜히 회사 핑계, 스트레스 핑계를 대면서 이거라도 피워야 살 것 같다고 항변했다. 


담배를 다시 피울 때 나에게는 일종의 오만함이 있었다.  난 한번 끊어봤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시 금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오만함이었다.   놀랍게도 그런 기적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처음에 너무 쉽게 끊어서 그런지 이후 금연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3일 참았다가 다시 피고, 일주일 참았다가 다시 피고..  수차례 시도는 번번이 의지력의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게 다시 10년을 피웠다.   

본격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심리학을 접하고, 열심히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의 일이었다. 

사람들이 평소에 "넌 의지력이 너무 없어!" "쟤는 의지력이 부족해! 강단이 없어!"라는 말이 얼마나 비 과학적이고 잘못된 이야기 었는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특히 다이어트와 관련하여 왜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에 대해서 연구자들은 과학적인 근거와 실험으로 설명하는 탁월함을 보였다.  그리고 의지력에 의존했던 나의 금연 시도가 얼마나 한심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우 과학적으로 금연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아내가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다! 암이라는 공포가 있었지만 수술을 아주 쉽게 할 수 있고, 완치된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술을 받고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병원이라는 공간!  지금은 금연정책으로 정말 많은 곳이 금연장소이지만 2014년에는 과도기였던 상태라서 그중에서 병원은 완전 금연이 보장된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대형병원의 완전 밖으로 나가야 하는... 

 어쩌면 이는 내가 다시 한번 금연에 성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나와 강의일을 본격적으로 하던 나는 일주일 정도 강의가 없는 시간을 만들고 아내를 간호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심리학을 활용한 과학적 금연을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나의 금연 의지가 아닌 주변의 금연상황으로 해결하자! 


발생한 현상의 원인이 상황이냐? 사람이냐? 는 오랜 기간 논의되었던 문제이다. 지금은 양자 모두 관련 있다는 것으로 정리되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사람에 기인하는 경향이 많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로스(Ross)의 실험을 보면 대학생들을 무작위로 짝지어 퀴즈게임을 진행했다. 한 학생이 질문자의 임무를, 다른 학생은 답변자의 임무이다. 문제는 질문자가 알아서 내는 것이었다. 특히 자신만이 알만한 어려운 퀴즈를 짝에게 냈다. 보통 답변자들은 열 문제 중에서 네 문제 정도를 맞추었다.  질문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불평등한 관계마저 실험 참가자들은 인식하지 못했다.  실험이 끝나갈 무렵 참가자들에게 자신과 파트너의 지적 수준을 평가하게 했다. 놀랍게도 질문자들은 답변자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답변자들 조차 자신이 질문자보다 지적 수준이 낮다고 평가했다. (Ross, Amabile, Steinmetz, 1977).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을 사람에 귀인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좀 더 원인 파악이 쉽기 때문이다.  사람에 귀 인하면 걔 성격이 그래서, 아는 게 없어서, 등등으로 편하게 이야기 하지만 상황에 귀 인하면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복잡하고 어려워 지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잘못되었다.   



나는 그동안 금연 실패의 원인을 나의 개인적 의지력이 약해서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나의 의지력에 맡기지 않고 상황에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금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 병원은 거기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그래서 일주일간 나는 중간중간 짬을 내어서라도 집에 가지 않았다. 혹시 흡연할까 봐 주차장으로도 가지 않았다.  오직 병원에서만 머물면서 담배를 피울 수 없는 환경에 나를 집어넣었다.  아내가 퇴원한 이후에는 바로 보건소에 갔다. 흡연은 질병이니 의지가 아닌 치료의 방법을 찾았다. 보건소에 가서 귀침을 맞았다. 일주일간 귀속에 붙어있던 귀침은 흡연욕구가 생길 때마다 눌러주라는 보건소 선생님의 가르침이 정말 요긴하게 도움이 되었다.



둘째, 담배를 끊는 것이 아니고 잠시 참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자! 


니콜 미드(Nicole Mead)와 버네사 패트릭(Vanessa Patrick)은 디저트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를 세 집단으로 나누고 A집단에게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후식을 골라먹는 상상을 하기, B집단에게는 디저트를 전혀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기, C집단에는 지금은 먹지 않겠지만 나중에 맘껏 먹어도 된다고 상상하게 했다.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디저트에 대해 생각하고 집착하는지 조사해 보았다.  

 놀랍게도 "지금은 안돼, 나중에 먹자"라고 다짐한 C집단 사람들이 A, B집단에 비해 초콜릿 케이크를 보고 오히려 덜 괴로워했다. 

 음식이건, 담배 건 이를 거부하는 데는 의지력이 필요하지만, 마음에게는 "절대 안 돼"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중에"라고 하는 편이 훨씬 부담이 적은 것이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갈망도 줄어들고 실제 섭취도 줄어든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상상을 했다. 

이건 끊는 게 아니고 참는 거야~나중에 피지 머.. 다행히 지금까지 잘 참고 있다.   




셋째! 혹시 실패해도 좌절하지 말자, 다시 하면 된다!


7년 만에 금연을 실패하고 다시 담배를 피울 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다시 담배를 피우니 7년간 안 피웠던 것을 다시 몰아서 피우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담배를 많이 피웠다. 그래서 이 부분은 다시 금연하려는 시도를 약화시켰다.

"혹시 또 실패하면 못 피웠던 만큼을 몰아서 다시 피우지 않을까? 그럼 더 몸에 안 좋은데.."


 헤르멘(C.P.Herman)과 맥(D.Mack)은 다이어트 중인 참가자와 그렇지 않은 참가자를 모집했다. 그리고 각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음식 결핍 상황을 실험한다고 하면서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했다. 

이후 첫 번째 그룹에게는 살짝 배고픔만 면할 정도의 밀크셰이크를 주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보통 사람이라면 배부르다고 느낄 정도로 커다란 잔에 두 번이나 밀크셰이크를 따라주었다. 세 번째 그룹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이후 세 그룹에게 크래커, 쿠키 등을 주면서 각 스낵을 먹으면서 맛에 대한 등급을 매기라고 하였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피실험자들은 밀크셰이크를 두 잔이나 마신 이들은 크래커만 조금 먹더니 맛을 평가했다. 살짝 배고픔만 면할 정도의 밀크셰이크를 먹은 이들은 그보다 조금 더 먹은이후 평가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세 번째 그룹은 쿠키와 크래커를 계속 먹으면서 평가했다.  우리 모두 예상한 결과이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하는 피실험자들은 달랐다.  커다란 잔에 두 번이나 밀크셰이크를 마신 그룹의 사람들은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참가자보다 더 많은 쿠키와 크래커를 먹어치우면서 평가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를 "아무렴 어때 효과"라고 불르기도 하는데 밀크셰이크 두 잔을 먹은 다이어트 진행 집단은 예상치 못한 이유로 당일 먹을 목표치를 초과한 경우 그날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다음엔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오늘을 즐기자 라는 심정으로 폭식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실패라고 생각한 이후에는 모니터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패라고 생각한 시점 이후에는 얼마나 더 크래커와 쿠키를 먹었는지, 먹는 양을 계산하지 않고, 먹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도저히 금연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한대를 피울 수 있다. 그때 무너지면 안 된다. 다시 정신 차리고 그다음부터 새롭게 금연하면 되는데 우리는 보통 심리적 멘털이 붕괴되고 아무렴 어때 라는 생각에 자기 절제 모니터링이 작동을 멈춘다. 그리고 전에 피우지 못한 만큼의 담배를 열심히 피워댄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무너지고 또 한대를 피우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털어버리자.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그 이후 6년이 흘렀다. 

지금도 누가  담배를 끊었냐고 물어보면 "끊은 것은 아니고요 참구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을 한다. 

 "그냥 잠시 참구 있어요.. 이러다가 피게 되면 또 피겠죠..  근데.. 그럼 다음날 또 안 피면 되죠.."

편안하게 생각하고 흘러가듯 내버려 두려고 한다. 

나는 더 이상 금연에 나의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필요한 곳에 의지력을 쓴다.  만성적 가슴통증이 사라지는 등 몸의 건강은 보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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