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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철우 Feb 19. 2021

책을 몇 번 읽으세요?

나의 독서 이야기

"책을 몇 번 읽으세요? "라고 물어보면 듣는 사람은 잘 못 물어본 줄 안다.

"저기..  몇 권 읽으냐고 물으신 건가요? "

"아뇨.. 한 권의 책을 보통 몇 번 읽으시냐고요?"

그럼 좀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듯 나를 본다.


나는 많은 책을 읽지 않는다.  

가끔 SNS에 올라오는 독서 좋아하고 많이 하시는 분들의 글을 보면 1년에 거의 100권씩 가까이 읽거나 최소한 7-80권 넘게 읽어대는 분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고 부럽지만 나는 나 자신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 대신 남들과 좀 다른 차별점이 있다면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책꽂이에는 한 번도 안 읽은 책은 많지만 한번만 읽은 책은 거의 없다.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읽을 때의 인터벌이 예전에는 좀 길었는데 요즘에는 마음에 들면 한번 다 읽고 나서 다시 또 읽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기억력도 점점 떨어지고, 읽은 책의 수준도 높지 않고, 익숙함이 편할 나이가 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두 번, 세 번째 읽을 때의 그 맛이 참 좋다.     

여러 번 읽을 때는 분명히 다 안다고 생각했음에도 처음 보는 부분을 발견한다. 

어떤 책은 네 번째 읽으면서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그 문장이 그 책에 있었음을 알게 된 적도 있다.

그때의 쾌감은 무슨 작년에 옷장 깊숙이 집어넣었다가 1년 만에 꺼낸 봄 점퍼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5만 원짜리 두장을 발견할 때 보다 더 짜릿하다.     


여러 번 책을 읽으면 그럼 뭐가 좋은가?     


첫째, 급하지 않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아무래도 이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내용을 파악하고 즐기는 것보다는 한 권을 다 읽어내야 한다는 숙제를 하는 기분이 커져서 자꾸 얼마나 읽었는가를 체크하고 얼마 남았는가를 확인한다.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긋기는 하는데 사실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려는 탓이 크다.

다 읽으면 기분은 좋지만 뭐가 남았는가를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크다.

     

둘째, 내가 가져갈 것과 아닌것을 구별한다.

같은 책을 두 번째 읽기 시작하면 처음과 매우 달라진 나를 발견한다. 

일단 한번 읽었기에 맘이 편하고 특별한 숙제에 쫓기지 않는다. 

여유 있게 중간중간에 생각할 기회가 있다. 지금 읽고 있는 문장이 다른 책에서 언급되었던 부분과 연결되어 시키는 포인트가 나오면서. 중간중간에 메모하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 노란색 형광펜을 칠한다. 이미 처음 읽을 때 밑줄을 그은 경우가 많지만 그 위에 노란색 형광펜을 칠하면 왠지 내 것이 되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이건 20여 년 전 실패로 끝난 고시공부할 때의 버릇이다. 당시에 두꺼운 전공서적을 놓고 잘 휘어지는 책갈피를 자로 삼아 샤프로 줄을 긋고 이후 형광펜을 덧칠했었다.)     



 셋째! 생각이 확장된다.

 세 번째 읽는 경우는 주황색 형광펜을 사용한다.  노란색 형광펜 위에 주황색이 다시 덧칠된다. 

포스트잇이 나오고 빈칸의 메모가 많아진다. 

포스트잇은 주로 주제에 대한 정리인 경우가 많다. 몇 페이지에 걸쳐서 풀어쓴 내용을 작은 포스트잇에 몇 줄로 정리한다. 

이슈나 쟁점을 적어놓는 경우도 있다. 



주석을 찾아들어 논문을 찾기도 한다. (이것은 두 번째 읽을 때부터 하기도 하지만 주로 세 번째부터 본격 시작한다. 좀 더 내용을 알고 싶은 경우에는 구글 스칼라에 논문을 검색한다. 최신 논문은 Abstract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한 70% 정도는 원문까지 무료로 검색이 된다. 대학원 졸업 이후 가장 아쉬운 부분이 이 부분이다. 졸업은 내게 가장 소중한 논문 무료 검색권을 빼앗아 갔다.) 

논문의 연구 도표나 재미있는 사례는 따로 정리하기도 한다. (물론 열심히 파파고를 돌린다. 파파고 사랑해)     


 넷째! 나만의 책이 완성된다.

 네 번째 읽을 때는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말 좋아하나 보다. 이때는 과감하게 검은색 수성사인펜으로 포인트 점을 찍기도 하고, 붉은색 볼펜으로 형광펜 아래 다시 줄을 긋기도 한다. 

 네 번째의 하이라이트는 포스트잇이나 여백의 메모로는 그 양을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따로 정리해서 붙인다는 것이다. 

 역시 고시공부를 해본 사람만이 안다. 20년 전 고시생들에게 유행했던 방법이다.

일단 책에 붙일 자료를 정리한다.  이후 정리된 내용물과 딱풀을 준비한다. 

그리고 내용물의 왼쪽 부분을 딱풀에 직각으로 세워서 풀을 묻힌다. 마지막으로 책을 크게 벌린 다음 한번 접어주면 완벽하게 참고자료가 책에 첨부된다. 



(20년 전 고시생들은 이것을 단권화라고 했는데 요즘 고3인 우리 딸도 이런 말을 쓴다.  암튼 이거 한참 할 때 "제발 이거 할 시간에 한글 자라도 더 머리에 넣어라.." 라면서  옆자리에서 공부하던 동윤이 형(그 형은 빨리 합격을 했다^^) 은 늘 핀잔을 주었다.  동윤이 형 본지도 참 오래되었네.. 잘 지내나?)      


이렇게 완성된 책은 뿌듯하다. 괜히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손으로 만지면 마치 지적 향연을 한 듯 좋다. 물론 모두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e-book에 다양한 메모 어플에, 통계프로그램에 수많은 기술의 발전을 생각하면 지금 나의 아날로그 방식은 참으로 허접해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하나씩 느리게 느리게 가는 사람도 있어야 세상의 숨 쉴 공간이 좀 생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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