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래 디자이너 블로그에서
굴림체는 한글디자인의 선구자로 알려지고 있는 '최정호'선생님에 의해서 제작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최정호 선생님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명조와 고딕 글꼴 대부분의 모태가 되는 명조.고딕의 원도(글꼴 레터링)를 제작하시고 디지털(당시에 사진식자)화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60~80년대 당시 우리나라 인쇄 기술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사진식자 조판 기술은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안타깝게도 한글 폰트 또한 모두 일본에서 제작해서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진식자기기를 판매하던 일본 업체중 한 곳이 '모리사와'입니다. 현재 디지털글꼴 회사로 더 유명합니다. 바로 이 '모리사와'측에서 일본 '나루체'에 어울리는 한글 글꼴을 최정호 선생님께 의뢰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굴림체가 제작된 목적 이었습니다. 이러한 태생적 목적때문에 굴림체는 한글의 조형적 구조 보다는 일본 글꼴의 조형적 구조에 더 어울리에 제작 되었다는 이야기합니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글꼴 디자이너나 타이포그래퍼들이 굴림체를 경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굴림체가 지금 우리에게 보편적인 글꼴로 인식된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워드프로세스 '아래한글' 때문 입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워드 프로그램들은 일본의 워드 프로그램을 많이 참고하는데요. 그 이유는 유니코드, 그리고 CJK문화권에 의한 글꼴의 특징등 다양한 부분에서 일본 프로그램은 큰 참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한글 워드 프로그램이 일본 프로그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상황에서 '아래한글' 제작 당시 굴림체가 가장 기본이 되는 서체로 지정이 된듯합니다. 아마도 기본 글꼴 지정에 프로그래머들이 특별한 생각을 갖고 지정하진 않았을 걸로 생각됩니다.
아시다 시피 워드 프로세서 '아래한글'은 현재 국가 공문서를 작업하는 공공기관에서 주요 프로그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관공서 문서는 전부 아래한글의 기본 글꼴인 '굴림체'로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그 문서 데이타는 오랜기간 동안 엄청 나게 많은 양이 누적 되었습니다. 시각디자이너들은 '아래한글'에서 굴림체가 없어지거나 기본 글꼴이 다른 글꼴로 지정되기만 해도 시각디자인 분야에 큰 변화가 이루어 질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래한글' 제작 측에 이런 의견을 전달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래한글' 측에서 돌아온 대답은 '어렵다'였습니다. 그들도 굴림체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의견은 동의하고 이해하지만 이미 많은 관공서의 문서들이 아래한글로 제작 되었고 모든 문서가 굴림체로 제작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본 서체를 변경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서체를 굴림체가 아닌 서체로 변경하거나 삭제하는 일은 기존의 관공서 문서를 열어보는데 있어서 문서의 변형이나 오류를 불러 올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그 관공서 들이 '아래한글'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주 고객층 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디자이너들이 '아래한글'에서 기본으로 지정한 굴림체에 대해서 크게 이야기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네이버에서 의뢰하고 산돌이 제작한 '나눔고딕'이란 글꼴이 있습니다. 굴림체를 대신하기 위해 만든 글꼴입니다. '아래한글'프로그램에서도 기존에 굴림체로 제작된 문서를 나눔고딕으로 변경하여도 크게 문제 없게 제작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들이미 토속적으로 자리잡은 굴림체의 사용을 비판하기 보다 '나눔고딕'처럼 좀 더 나은 대안을 내 놓은 것이 더 올바른 해결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 굴림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굴림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시간을 거부해야 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굴림체의 문제는 '변화'보다는 '수정'이 더 올바른 해결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