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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woong Aug 04. 2016

인터페이스 연대기 <5장_1>

인간과 컴퓨터의 공진화


20세기 초 발터 벤야민은 인간의 시각 기관을 뒤흔드는 영화의 스크린을  집약한 사례로 제시하였고,

이 의식은 "광학적 무의식"이라는 개념의 정초로 이어진다. 벤야민의 호기심은 영화에 그치지 않고, 

그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와 사진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카메라의 인터페이스에 큰 관심을 갖는다.

발터 벤야민(포스ㄷㄷ)

벤야민은 사진 이미지가 지표적 기호로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피사체와 카메라 간의 물질적 결속 덕분이라고 진단한다.


일반적으로 뷰파인더로 사물을 포착하고 셔터를 누르는 과정은 "하나의 사건을 무한대의 시간 동안 이미지로 고정"한다. 카메라의 인터페이스는 순간적으로 사진사의 시각적 지각과 촉감적 행위를 연결함으로써, 즉 눈과 손의 협응을 적극적으로 유도해냄으로써 찰나적 시간성의 서명을 간직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인터랙션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벤야민이라면 카메라 인터페이스의 유예로 무엇을 지목했을까? 1984년 슈퍼볼 중계방송 중에 방영된 독특한 광고로 등장한 스트브 잡스의 매킨토시. 그것은 컴퓨터 사용의 일상화를 주도할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라는 비범한 개념의 디자인을 담고 있었다.

영상 참고: https://youtu.be/2zfqw8nhUwA



매킨토시의 GUI는 결과적으로 스크린을 입출력 장소에서 향해의 공간으로 변모시켰고 컴퓨터 사용의 진입장벽은 현저히 낮아졌다. 그러나 1990년대  매킨토시는 높은 가격대로 소비자와의 외면을 받았으며, 나중에 기술력의 발전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된다. 

매킨토시 GUI


컴퓨터의 개념 역시 변화하게 된다. 이제 컴퓨터는 소프트웨어의 시뮬레이션을 위한 블랙박스 하드웨어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과 연결되어 다양한 시청각 콘텐츠를 중개하는 미디어 터미널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진전되자 마이크로소프트도 매킨토시의 GUI를 모방해 자사의 윈도우즈를 업그레이드할 수밖에 없게 된다.



_GUI의 역사적 기원


이 분야의 연구 상당수는 SAGE 프로젝트의 강력한 영향 때문에 행동주의의 안에 놓여 있었다. SAGE와 같은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에서 역할은 그저 데이터의 확인과 전송을 행하는 피드백 루프의 연결축 즉 외부의 자극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버튼을 누르는 오퍼레이터"로 정의되었다.


행동주의적 접근의 한계는 기껏해야 인간을 거대 시스템의 정보 노동자로 취급하는 테일러리즘의 새로운 판본에 불과했다. 이와 같이 시스템의 피드백 루프에 부속품처럼 취급되던 '위기의 인간'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입장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먼저 발상의 전환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1950년대 중반 배니버 부시가 프로토 타입으로 제안했던 '메멕스'라는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이었다. 


부시는 "일종의 기계화된 개인 파일과 도서관"으로 메멕스를 제시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라는 짧은 논문에서였다. 그에 따르면 메멕스는 "인간의 기억 능력을 보조하는 기계로서, 개인이 책, 기록, 통신 내용 등을 저장하고 손쉽고 빠르게 이 문서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제작된 장치"였다. 여기서 정보는 백과사전의 색인 같은 정형화된 틀로 저장되거나 분류되지 않고, 인간 사용자의 연상 경로를 따라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것이었다.


부시의 제안이 착상 단계라고 말한다면, 본격적으로 탈행동주의의 깃발을 치켜든 것은 심리학자 릭 라이더였다.

SAGE 프로젝트에서 스크린 기반 인터페이스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던 릭 라이더는 실시간 응답이 가능한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등장에 힘입어 "인간과 컴퓨터의 공생"을 내세우며 컴퓨터의 개념을 재정의하려 했다. 


기존의 관례대로 컴퓨터를 거대 시스템의 연산 기계 장치로 간주하는 한, 인간 사용자는 오퍼레이터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릭 라이더는 이런 상황의 반전을 꾀하고자 부시의 제안에 내포된 의미를 재해석해,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는 지배와 종속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공생'의 파트너십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릭 라이더의 문제의식을 계승해 공생의 관계를 '공진화'라는 주제로 확장한다.

언어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의식을 좌우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에 관심을 기울였던 엥겔바트는 컴퓨터와의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인간의 지적 노동을 보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지닌 '신경의 힘'을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시켜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엥겔바트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 패턴은 언어를 포함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미디어의 변화는 인간의 사고능력, 지각. 인지 방식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니까 미디어와 접촉하는 인간은 불변의 상수가 아니라, 공진화의 변수라는 것이다. 즉, 문제의 초점을 컴퓨터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느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엥겔바트의 발상은 동시대의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 명제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투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미디어의 속성에 관여를 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양자 모두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수용자는 미디어에 따라 각각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 책이라는 전통적인 미디어는 문자 언어의 선형적인 전개에 따라, 그리고 텔레비전은 시청각 이밎의 정교한 편집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매클루언은 한걸은 더 나아가 "미디어는 인간 두뇌의 확장"이라는 명제를 내놓으며, 미디어가 인간에게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인쇄술은 단지 대중적으로 책을 보급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듯이, 사람들이 세상을 지각 인지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음으로써, '독자'라는 새로운 인간형의 탄생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컴퓨터라는 미디어는 어떤 방향으로 인간의 지각. 인지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엥겔바트를 따라가 보면, 그는 스탠퍼드연구소에서 "인간의 지능의 확장을 위한 도구 상자"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로 개발된 것이 온라인 시스템(NLS)이라고 명명된 장치였다. 이는 소집단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발명품들로 구성되었고, 네트워크에 접속한 상용자들이 정보를 처리하고 다른 사용자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엥겔바트의 발명품 중 인터랙션의 기술적 차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다준 것은 윈도우와 마우스였다. 


이처럼 스크린 내부를 항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터페이스 요소들을 발명한 이가 엥겔바트였다면, 공진화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 요소들을 정교하게 재조립한 주인공은 앨런 케이였다. 우리가 GUI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케이는 1968년 가을 샌프란시스코 시민히관에서 열린 컴퓨터 관련 학술대회에서 최초로 공개된 엥겔바트의 시스템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던 3천여 명의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_<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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