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37일 차, 프라이부르크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마을을 쏘다니는 프라이부르크입니다.

by 현준

간밤에 추위에 떨면서 잠을 잔 모양입니다.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잤는 데도 아침에 일어나니 몸에 한기가 도는 걸 느낍니다.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깹니다만 추위에 떠는 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하고 싶어서 다시 이불을 덮습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가 잠에서 일어나니 벌써 10시가 되어버린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어젯밤에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는데 열두 시간이나 잠을 자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한 일입니다. 아침에 부스럭거리던 사람들은 벌써 일과를 시작했는지 방은 텅 비어있고, 장기투숙객으로 보이는 손님 한 분만 신문들을 이불 위에 펼쳐놓고 느긋한 아침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잠을 자고도 떨치지 못한 채 몸에 쌓인 피로로 침대에서 마냥 뒹굴고 싶습니다만 그러기에는 하루가 마냥 짧기만 합니다. 언제까지고 늘어져 있을 수도 없기에 간단하게 씻고 오늘의 여정을 시작해봅니다.


일단 기상이 늦어 굶주린 배부터 채워보도록 합니다.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전통 독일 요리에 도전해 보기로 합니다. 여행 중에 독일 중에 체류한 시간도 어느 저도 되었습니다만 부어스트 말고 제대로 된 독일 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시가지를 거닐며 괜찮은 독일 요리 전문점을 물색해서는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기다려봅니다. 잠시 뒤 찾아온 수염 덥수룩한 웨이터가 제게 와서 주문을 받는데, 아무래도 저도 점원도 둘 다 영어가 부족한가 모양입니다. 계속 점원이 "Would you like... Would you like..."를 반복하며 머뭇거리면서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을 이어나가질 못합니다. 몇 번 말을 더듬기를 반복하고는 "Wait here"를 외치고 다시 가게로 들어갑니다. 저도 대충 알았다고 한 뒤 가게 안으로 돌아가는 웨이터를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뒤돌아서 돌아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점원에게서 낯설지 않은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마 영어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 영어를 하는 외국인이 대화를 걸었을 때 긴장하고 도망치고 싶은 건 전 세계 공통인 모양입니다. 이윽고 다른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 저는 슈니첼을 주문합니다. 돈가스보다 시큼하고 고기가 두툼한 대신 겉에 빵가루가 거의 없고 많이 기름진 느낌입니다. 레몬즙으로 느끼함을 잡고 소스에 찍어 감자튀김과 같이 먹으니까 조금 느끼하지만 그럭저럭 맛있게 배를 채웁니다.

생각보다 맛있는 슈니첼

점심을 먹고선 Donkey Republic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자전거를 빌립니다. 유레일 혜택 중에서 Donkey Republic 이용료 20% 할인 혜택이 있는걸 안 이후로는 좀 더 거침없이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특히 생태 도시이자 자전거의 천국 프라이부르크에선 꼭 하루 정도 자전거를 원 없이 타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목적지 없이 자전거를 타고 프라이부르크를 정처 없이 떠돌아보도록 합니다.

슈바벤 토르를 넘어서
오늘은 이 친구와 하루를 함께해보도록 합시다

처음 목표는 Seepark 공원입니다.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에서 서쪽으로 3km 정도 달리면, Seepark라는 작은 호수공원이 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따라 공원으로 달려가 봅니다만 자전거 여행길의 시작부터 트러블 하나 발생합니다. 좁은 자전거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데, 제 앞에서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께서 거의 걷다시피 하는 정도로 자전거를 느리게 탑니다. 이 경우에는 추월을 해야 하는데, 벨을 울려서 추월 신호를 보내고 타이밍에 맞추어 할아버지를 넘어가려고 합니다만, 그때마다 할아버지께서 자전거를 지그재그로 모셔서 추월에 실패합니다. 일부러 막는 느낌은 아니고 그냥 힘이 부족하셔서 불안정하게 자전거를 몰고 계신 느낌입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차선으로 넘어가고 싶어도 자동차 차선이 정체인 상황이라 빠질 수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인도로 넘어가 봅니다만 턱에 걸려서 그대로 자빠지고 맙니다. 통증을 보아하니 분명히 무릎 아래 정강이에 멍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갈 길을 서두르고 싶어 다시 자전거 도로로 돌아가 달려봅니다만 제가 넘어진 사이에도 할아버지께서 얼마 달리질 못하셔서 금방 따라잡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한참을 서행하다가 교차로가 나오는 지점에서 횡단보도를 따라 할아버지를 추월합니다. 원래 자전거 도로에서 이렇게 추월이 어려운 건지, 추월 관련 규정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습니다만 무사히 Seepark에 도착합니다. 초목으로 우거진 공원은 한적하고 조용합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입니다. 저도 자전거를 타고 호수를 돌면서 중간중간 멈추어서 호수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호수를 반 바퀴쯤 도니 동아시아 스타일의 나무문이 보입니다. 문 안으로는 아담한 크기의 정원이 보이는데, 하얀색 대리석, 정갈하게 가꾸어진 소나무 등을 보아 일본식 정원인 듯합니다. 독일의 한적한 공원에 자리 잡은 일본식 정원은 이질적인 위화감을 줍니다. 보통 이런 일본식 정원이 정숙을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활용하는 모습이 특히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도대체 이런 곳에 일본식 정원이 홀로 동떨어져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한가하고 너무나 한가로운 Seepark 공원
한적한 공원을 바라보는 일은 마냥 즐거운 일입니다
영문 모를 일본식 정원

사실 Seepark 공원에 아이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 외코 스타치 온, 즉 에코 스테이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환경과 관련된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설로, 다양한 환경 체험 프로그램, 프로젝트 및 주변 학생들을 위한 교실을 진행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홈페이지(http://www.oekostation.de)에 들어가면 무려 한국어로도 설명이 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프로그램은 독일어로만 진행이 된다고 합니다. 근처에 방송장비와 함께 태양열을 모으는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데 마침 환경 체험행사를 촬영하는 모양입니다. 프라이부르크의 환경 방송은 어떤 모습일까 구경하고 싶지만 이상한 이방인이 괜히 아이들 노는 것을 방해하면 또 안 되는 일인지라 가던 길을 그대로 가기로 합니다.

한창 촬영이 진행중인 환경 체험학습의 현장

다음 목적지는 보봉 마을입니다.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에서 이번에는 남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태양광 발전으로 유명한 산골 마을입니다. 사실 태양광 발전 시설을 본다고 무슨 감흥 같은 게 오겠냐만은 그래도 생태 도시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여 목적지로 달려봅니다. 보봉 마을로 향하는 길은 eco 관련된 문구나 디자인이 많이 보입니다.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보봉 마을은 역시 사람이 거의 없는 평범한 산골 동네입니다. 지붕 곳곳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을 빼면 평범한 농가처럼 보입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산골을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태양광 발전 타워가 붙은 원통형 집인 헬리오트롭이 보입니다. 집 천장에는 원통형 타워가 설치되어 있고, 타워 주위로 태양광 패널들이 붙어있는 데,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서 자가발전하고 발전의 효율성을 위해 태양을 따라 집이 통째로 회전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건축가가 지어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지만 사적 거주지이기 때문에 멀리서 사진만 찍고 지나갑니다. 시골 산동네에 지어진 근미래적인 집이, 향후에는 당연스럽게 여겨질 세상을 잠시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생태 마을 아니랄까 봐 호텔도 녹색 시티 콘셉트입니다
근미래 태양 발전 주택, 헬리오트롭
보봉 마을을 넘어, 산 위로 계속 가봅시다

보봉 마을을 둘러보고는 계속해서 오늘 여행의 기점이 되었던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으로 돌아옵니다. 오늘만 오고 가며 벌써 세 번째로 방문하는 길입니다. 프라이부르크의 구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슈바벤 토르라는 관문 타워를 지나는데 마침 타워 내부로 올라가는 입구가 열려있는 게 보입니다. 어제오늘 몇 번을 지나다니던 길 입니다만 문이 열려있는 것은 처음 봤는데 아마 개방 시간이 한정적인 모양입니다. 이 좋은 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전거를 주차하고 타워를 올라갑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다리는 허벅지가 부들거리는데 오늘 몇 시간을 자전거를 타고 심지어 산길까지 올라갔으니 다리가 버티기 힘들 법도 합니다. 무거운 허벅지를 낑낑대며 끌고 타워를 오르다 보니, 온갖 오브제로 가득 찬 작업실이 나타납니다. 작업실 한 편에는 손님이 왔는지도 모르고 돋보기안경을 낀 채 작업에 몰두하고 계신 한 할아버지가 보입니다. 무엇을 만들고 계신지 슬쩍 보니 겨우 핀셋으로 들어 올릴 만한 작은 병사들을 만들고 계십니다. 작업실이자 전시실인 이 타워 내부는 작은 디오라마 박물관으로, 프라이부르크와 검은 숲에 있었던 각종 전쟁들을 묘사하는 디오라마들이 전시 중입니다. 작은 것 하나도 신경 써서 묘사된 배경에 세워진 납작한 병사들이 기묘한 현실감을 만들어내며, 전투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주신 전투에 대한 설명서와 함께 디오라마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봅니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입구로 돌아와 보니,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모습으로 작업대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할아버지는 아마 이 작은 타워를 가득 채우고 있는 디오라마들을 언제까지고 계속 만들고 또 만들어 오셨을 겁니다. 도시 한가운데 세워진 할아버지만의 작은 세계를 잠시 발을 담글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여행자에게 얼마나 큰 행운일까요?

다시 돌아온 슈바 벤토르입니다만
타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있네요?
오늘따라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운 타워의 계단길
마치 동화책을 펼치면 나타날 것 같은, 디오라마로 가득한 할아버지의 세계
세세한 부분에서 할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제 도시의 묘지공원을 잠시 구경하고, 프라이부르크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쉬를로스베르크에 올라갔다오면 하루 일정이 끝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에 피로가 너무 쌓인 모양인지 점점 운전이 불안해집니다.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는 걸 인지 못해 뒷사람이 알려주어서 겨우 출발합니다. 한 번은 신호가 없는 사거리에서 제 좌측에서 차가 오는데, 차가 사거리를 통과하기 전에 제가 충분히 넘어갈 줄 알고 정지하지 않고 달렸다가 사고가 날 뻔도 합니다. 교차로를 통과하고 나니 저와 부딪칠 뻔 한 차 주인이 독일어로 신명 나게 욕을 박는 걸 듣습니다. 피곤한 상태로 더 이상 자전거를 몰면 위험하겠다 싶어 오늘의 여정을 마치기로 합니다. 걸어서라도 산길을 올라가 보려 하지만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지치는 몸을 이끌고 간신히 숙소에 도착하는 프라이부르크의 하루입니다.

프라이부르크의 묘지공원
신기하게도 자전거 차선이 차선과 차선 사이에 위치하기도 합니다. 실수하면 사고가 날지도 모릅니다.


자연사 박물관에도 들렀습니다만, 기억에 크게 남지는 않습니다
프라이부르크 구도심은 도보 곳곳에 이렇게 수로가 펼쳐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감 배를 가지고 노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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