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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준 Jan 21. 2020

7월 15일, 43일 차, 인터라켄

구름을 뚫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나는, 인터라켄입니다

부르르 어깨를 떨며 자리에서 눈을 뜹니다. 생각보다 잠에서 일찍 일어난 건지 창 밖의 풍경은 새하얗게 잠겨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밤새 내린 비에 공기가 차가워 이불을 찾아 몸을 덮습니다. 산에 구름이 자욱하게 깔려서는 해는 뜬 것 같은데 사방이 온통 안개에 잠긴 것처럼 어두컴컴합니다. 오전에 패러글라이드를 타기로 했는데 날씨가 이래서는 낙하산을 펼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부디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부족한 잠을 더 청해봅니다.


한 숨 더 단잠을 청하니 그 사이에 비가 그친 합니다. 햇살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날이 밝아졌습니다. 사방으로 산등성이에 한 반만큼 구름이 가라앉아 있는 게 보입니다. 신선이 사는 마을이 이런 풍경일까요? 구름이 이렇게 걷히지 않아서야 패러글라이드는 탈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취소되는 건 아닐까, 셔틀 픽업장소에 서서  부디 버스가 오길 초조하게 기다려봅니다. 다행히도 약속 시간을 조금 지나서 셔틀버스가 오는 게 보입니다. 한국인 다섯 명과 미국인 한 명, 스위스인 한 명 이렇게 일곱 명의 손님, 그리고 일곱 분의 파일럿과 함께 버스를 타고 산등성이를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길이 구름 때문에 완전히 보이지 않아 계속 걱정스러운데, 기사 분은 거침없이 운전하고 패러글라이딩을 브리핑해주시는 분은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십니다. 한국 사람이 워낙 많이 찾아오는지 장난처럼 한국어를 섞어가며 설명해 주시는데 유머감각이 좋으셔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구름을 뚫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 유창한 한국어 솜씨에 다들 혀를 내두르고 놀라며 더 웃습니다.

무슨 신선이 사는 마을에 온 것 같은 분위기는 감탄이 나옵니다만
이런 날씨에 패러글라이딩을 한다는 것이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다행히도 하늘에서 패러글라이드의 행렬이 내려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패러글라이딩' 운전수를 따라서
장비를 빌리고 산으로 올라가 봅시다

차를 타고 산을 한참을 올라가니 금세 낙하 포인트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같이 뛸 파일럿 분과 인사를 나누고 장비를 갖춥니다. 'TOM'이란 이름의 파일럿 분과 함께 낙하 장비를 끌고 이동하면서 제가 하던 일, 온 장소, 뛰는 것에 대한 소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비탈길을 따라 걸으며 주위 풍경을 둘러보니 온통 구름 투성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행히 TOM이 'I wish 구름 goes out'이라며 익살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인용구에 한글로 적힌 부분은 전부 한국어로 이야기한 겁니다.) 산비탈에 방목한 소가 보여서 신기해하며 구경하는데 소똥을 조심하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낙하산까지 바닥에 펼쳐놓고 뛸 준비를 마치고는 제게 마음에 준비가 됐냐고 물어보시더니, '달려달려달려달려'를 외치며 전력으로 뛰어갑니다. 달리다 보니 점점 지면이 꺼지는 것 같아 그대로 추락하는가 싶더니 금세 몸이 붕 뜨는 게 하늘을 나는 걸 실감합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며 구름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데, 물방울 알갱이 같은 것들이 얼굴을 때립니다. 코앞도 가늠할 수 없는 구름 속에서 계속 헤매나 싶었지만, 잠시 뒤 구름 사이로 마을과 호수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많은 전경들을 봐왔지만 하늘을 날면서 보는 마을의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합니다. 서쪽으로 툰 호, 동쪽으로 브리엔츠 호 두 개의 호수를 끼고 푸른 산에 어우러지며 길게 이어지는 주홍색 지붕들의 행렬은, 평생 잊기 어려울 풍경입니다. 파일럿 분과 함께 계속해서 사진을 찍으며 감상을 이야기하는데 짧은 영어와 아름다운 풍경에 말문이 막혀 very very good만 연발합니다. 파일럿 분이 'Do you want 빙글빙글?'이라고 물으시길래 '많이 빙글빙글'이라고 답해드렸더니 낙하산을 좌우로 흔들면서 롤러코스터처럼 내려오는 게 너무 재밌기만 합니다. 그렇게 15분의 비행을 마치고 땅에 착륙했는데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지도 못합니다. 너무 감동해서 주저앉은 거냐며 환상적이었냐고 물어보는 파일럿 분의 익살에 저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인사를 드립니다. 하이파이브를 연발하며 쌍 따봉을 치켜세우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대단한 비행이었습니다.

포인트에 도착하니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대로 낙하를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산비탈에 소가 있다니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구름이 금방 걷힐 거라는 파일럿 분의 말을 믿고 낙하를 준비합니다
낙하 준비 끝!
정신을 차리니 이미 발이 지면에서 떨어진 뒤입니다
끝없는 구름을 뚫고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 마을의 풍경, 잊히지 않을 비행입니다
호수와 호수 사이의 도시, '인터라켄'입니다
비행이 끝나가는 순간이 너무나 아쉽기만 합니다

패러글라이딩을 마치고 까르보나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치운 뒤 다음 액티비티를 향해 달려갑니다. 처음에는 캐녀닝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조금 비싼 가격에 관두고, 대신 가성비가 좋은 로프 액티비티를 하기로 합니다. 산길을 따라 인터라켄 내부로 들어가면 높이 솟은 나무에 장해물과 로프를 엮어 만든 공원이 보입니다. 미리 예약을 해두어서인지 "Oh you are Mr. Park"이라면서 제가 아는 척을 하기도 전에 반갑게 직원이 맞이해 줍니다. 체크인을 하고 안전장치를 착용한 후, 안전 교육과 안전장치 이용 방법에 대해서 듣습니다. 별도의 안전 요원을 동반하지 코스를 따라 직접 이동하는 만큼, 안전 장비를 로프에 제대로 걸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두 개의 안전 고리와 짚라인 기구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확실하게 튜토리얼로 숙지한 후 본격적인 로프 타기를 시작하기로 합니다.

생각보다 더 느끼하고 짜서 먹기 힘들었던 까르보나라
산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로프 액티비티 테마파크, SEI PARK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안전 장비를 갖추었으면 시작해볼까요?
이 지점을 몇 번을 통과했는지 모릅니다

열 개가 조금 넘는 코스는 난이도에 따라서 그린, 블루, 레드, 블랙으로 나뉩니다. 난이도는 길이, 높이, 장애물의 흔들리는 정도와 필요한 근력의 정도에 따라 구분이 되는 모양입니다.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가장 쉬운 난이도인 그린 코스부터 출발합니다만, 시작하자마자 줄타기를 하며 공원의 글자가 새겨진 목판을 클라이밍 하는 것이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습니다. 사다리를 타거나 그물을 건너거나 짚라인을 타거나 클라이밍을 하는 등 쉽지 않은 코스가 계속 이어집니다.

붉은색은 위험을 알리는 경고의 표시입니다. 제발 가지 마...

그래도 두 세 코스 정도 돌다 보니 점점 익숙해져서는 어느새 블루 난이도까지 전부 정복합니다. 이 정도면 블랙 난이도까지 정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드디어 상급 코스인 레드 난이도를 도전합니다만 곧 만만하게 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통나무들을 하나하나 밟으며 통과하는 코스를 만나는데, 그동안 평범하게 고정되어 있던 통나무와는 달리 그네처럼 흔들리는 것이 하나하나 건너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통나무의 중심을 맞추어 서지 못하면 그대로 균형이 무너져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다음 통나무로 넘어가기 위해 발을 떼는 것도 거의 점프하다 싶이 넘어간 통나무에 착지하는 것도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중에 매달린 로프를 팔의 힘에 의지해 최대한 체중을 통나무에 싣지 않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닥을 내려보니 15미터 높이의 공포가 체감이 되기까지 합니다. 혹시나 통나무에서 떨어져도 안전띠 때문에 떨어지지는 않겠지만은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걸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하나하나 장해물을 밟으며 건너가는데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집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쯤 왔을 때 포기하고 돌아갈까 싶다가도 안전장치가 역주행이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깨닫고는 한탄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팔에 힘이 다 빠져서 후들거리면서 거의 로프에 매달리다시피 나아가는데, 자신만만하게 하드 레벨 코스를 선택한 제가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코스들에 거의 울먹거리며 죽을 둥 살 둥 코스를 어떻게든 완주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한지 다시 코스 선택점으로 돌아오자 다른 레드 난이도도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을까 다시 도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스스로의 멍청한 판단을 후회하며 죽을 고생을 자처하는 스스로도 발견하게 됩니다. 겨우겨우 레드 레벨 코스를 통과하고 나서는 완전히 힘이 방전되어서 아직 코스 하나를 더 탈 시간은 되지만 초고난이도인 블랙 레벨 코스의 도전은 다행히도 포기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타고서는 한두 시간 놀면 많이 놀겠지 싶었는데 세 시간 반이나 로프를 탄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시간을 확인한 순간 팔에 격통이 느껴지면서 예고된 근육통과 온몸의 비명에 벌써부터 앞날이 깜깜해집니다.

정말 재미있는 테마파크입니다. 인터라켄에 오시는 분들은 추천드립니다 (웃음)
짚라인도 탈 수 있습니다
15분 동안 생과 사의 경계를 체감한 단순해 보이지만 끔찍했던 레드 난이도의 코스 일부
그보다 난이도가 더 올라간 블랙은 도무지 도전할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패러글라이딩과 로프 액티비티까지 마치고서는 정말 파죽음이 된 몸을 이끌고 겨우 숙소로 돌아옵니다. 숙소에서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기 앞에서 죽치고 시간을 보냅니다만, 아무리 봐도 숙소에는 한국인들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디 무슨 청년 단체에서 수련회를 온 듯한 사람들이 공용 공간인 식당을 점령해서는 환기도 되지 않는 지하 식당이 삼겹살 냄새와 김치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도대체 삼겹살이랑 김치는 어디서 구해온 건지 의문을 품으며 코를 찌르는 삼겹살 냄새에 주린 위를 움켜쥡니다. 겨우 빵 쪼가리 하나로 저녁을 때운 배가 요동을 칩니다만 굳이 사람들하고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애써 모르는 척을 합니다. 도대체 스위스인지 어디 한국에 콘도인지 알 수 없는 숙소 한 구석에서, 너무나도 즐겁고 들떴던 하루를 돌이켜보는 인터라켄의 하루입니다.

삼겹살 너무 맛있어 보인다...... 도대체 어디서 다 준비를 해온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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