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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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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팅하는 천대리 Jun 14. 2020

질투와 열등감 그 사이

감정소비로 힘든 사람들을 위해

고등학교 시절,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구와 나는 중학교 때부터 같은 무리에서 지냈고 나름 친한 편이었다.


그 당시 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하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친구에게 더 살갑게, 잘하려고 노력했다. 편지도 쓰고, 선물도 주면서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하듯 정성을 다 했지만 그 친구가 뒤에서 한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친구와 나는 같은 동아리에 지원했었는데 나는 붙었고 친구는 떨어진 사건이 있었다.

그게 친구의 마음에 불을 지폈는지 학교 축제에서 동아리 무대에 내가 나왔을 때 '넘어져라'라고 빌었다는 것을 다른 친구를 통해 듣게 된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그 친구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구나. 나는 왜 그 아이의 마음을 돌리려 시간을 허비했을까. 우리는 그 이후로 소원해졌고, 무리가 함께 모이는 약속에서만 볼뿐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10년도 넘은 일이 지금에서야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유는, 내가 그 친구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다. 최근 일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같은 직종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실제로든 인터넷상으로든 말이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들.

이 사람은 나랑 동갑인데 벌써 유명하네?

이 사람은 나랑 연차 비슷한데 강의도 다니네?

이 사람은 나보다 어린데 책도 냈네?


이건 사실에 기반한 생각으로 질투에 가깝다.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만한 오묘한 감정.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간 문제는 그 사람의 성공을 그 사람의 노력에 집중하지 않고 깎아내리려는 열등감이었다.


저 사람은 금수저라 유학도 다녀왔으니 잘하겠지!!

저 사람은 학연으로 연결되는 백이 많겠지!!


나는 아직 발굴되지 못한 진주일 뿐이야.

나도 저 사람들보다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배경에 묻히는 것뿐이라고!


이렇게 말이다.

이런 못된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그 친구가 생각났다.


그래, 너는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 아이였구나. 스스로와 비교해가며 갉아먹는 너도 참 힘들었겠구나. 고등학교 아이가 가질만한 아주 보잘것없는 재능이 너에게는 죽을 만큼 뺏기기 싫은 것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그 친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되면서 이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가장 처음으로 해야 했던 것은 인정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어떠한 분야에서는 나보다 잘한다는 것. 그리고 그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 열등감을 긍정적인 연료로 사용하기로 했다. 저 사람만큼 되려면 내가 더 노력해야 하겠지, 1년 안에 나도 꼭 저 자리에 설 거야!처럼 나를 다독이는 말들과 다짐으로 말이다. 


열등감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다.

비교만 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냥 감정소비일 뿐이다. 하지만 행동의 연료로 삼는다면, 이것이야말로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말해주기로 했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거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그냥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마음일 뿐이라고 말이다.


이 열등감은 이제 더 이상 나를 갉아먹지 않는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나를 더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을 뿐이다.

어디선가 이런 열등감 때문에 예전의 나처럼 스스로를 갉아먹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고.

그만큼 욕심이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남이 잘되는 것을 진심으로 축복해주면 

그 축복이 언젠가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서로서로를 축복해주는 날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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