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묘책을 읽고 (사물, 동물 다른 관점에서 에세이 써보기)

by chuncheondiary

삐삐삐삐 삐삐삐삐 삐, 드르륵 두둑.


캄캄한 어둠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12시가 다 되어 느지막이 도착한 여자와 남자가 문을 열고 내 안으로 들어온다. 둘의 발걸음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계단에 저벅저벅 울리고, 불빛이 하나둘씩 켜진다. 어둠 속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던 내가, 다시 누군가의 집이 되는 순간이다. 집이 된다는 건 그렇게 거창한 의미는 아니다.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곳이자 며칠간 머물 곳이 되어준다는 이야기다.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찬찬히 나를 살펴본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살펴본다. 웃는 모습이 어딘가 서로 닮은 중년의 남자와 여자. 커플은 아니고,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 같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대부분 나를 험하게 쓰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하기 때문이다.


1층의 트윈베드룸과 욕실, 2층의 거실과 주방, 3층의 더블베드와 테라스까지. 다 합쳐도 30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집. 원래 주인은 세이카라는 친구지만, 정작 세이카가 여기서 지낸 날은 손에 꼽는다. 대신 나는 매일 새로운 이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내 틈 속에는 이곳에 머물렀던 많은 이들의 흔적이 일기장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아무도 없는 빈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이 남기고 간 기억들을 들여다보곤 한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일은 매번 쉽지 않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마치 새롭게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보 같다. 나는 종종 내가 이곳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번 친구들은 일단 짐이 참 소박하다. 각자 어깨에 가방 하나씩, 트렁크도 자그마한 것 하나만 가져온 것 같다. 단출한 짐은 나를 있는 그대로 두어 준다는 신호 같다. 일단 합격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는 같은 구조, 같은 면적임에도 성냥갑처럼 좁아지거나 온 우주만큼 넓어진다. 이번에는 또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될까. 조금은 설레기도 한다.


짐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두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 문 앞으로 간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뭐지. 설마 다시 나가는 건가. 혹시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아니면 어딘가 불편한 게 있었나. 나는 말을 할 수도, 붙잡을 수도 없어서 그저 문이 열리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그들이 다시 돌아오길 마냥 기다릴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닐봉지에 맥주와 과자를 가득 담아 들고 두 사람이 돌아온다. 아, 다행이다. 그냥 맥주를 사러 간 것이었구나. 나는 안도한다. 떠났던 이들이 돌아와 내 안에 머무는 것,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테지만 내게는 특별하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새삼스레 깨닫는 순간이다.


두 사람이 TV를 켜고 각자 한 손엔 맥주 한 캔씩을 든 채 나란히 소파에 앉는다. 이제부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 소파에 앉은 사람들은 조금 더 자기다워진다. 그 비밀은 이 소파의 적당한 포근함에 있다. 너무 푹신하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아 두 사람의 무게를 꼭 알맞게 버티는 정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살짝 기대어 대화를 시작한다.


“여기 이런 집에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 구조가 맘에 들어. 평수도 적당하고.”


“새로 짓는 건 너무 번거롭고 차라리 비슷한 집을 사서 고치는 게 낫지 않을까?”


대화의 주제가 나라는 걸 알기에, 나는 평소보다 더 잔뜩 숨을 죽인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평가를 면전에서 들어왔다. 계단이 불편하다는 말, 좁고 답답하다는 말. 어떤 말들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상처처럼 남아 있다. 그런데 이번 친구들은 나 같은 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이 유난히 오래 맴돈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게 잠깐 빌려 쓰이는 공간이 아니라, 언젠가 닮고 싶은 삶의 형태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어디 가지?”


“몰라, 내일 일어나서 생각하자.”


“일어나면 무조건 맛있는 커피부터 한 잔.”


“여기서 걸어서 10분 거리라던데.”


“그래, 거기 가자.”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특별한 계획이다. 새로운 것, 유명한 것, 멀리 있는 것을 찾아다니지 않는 사람들. 지금 머무는 여기 이 동네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해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쓰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좋다. 두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이 간다.


“맞다, 금요일 날 체크인하는 손님 몇 명이야?”


“세 팀.”


“청소는?”


“걱정 마. 다 해 놨어.”


체크인이라는 단어에 깜짝 놀라 나는 좀 더 가까이 그들에게 다가가 본다. 이 사람들 역시 누군가의 머무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공간을 대하는 태도도, 머무는 방식도 유난히 조심스럽다. 이 사람들이 운영하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가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가볼 일 없는 그곳이 문득 궁금해졌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거기가 어떤 곳인지 다 알 것만 같다는 기분도 든다.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어느새 그들의 공간으로 포개어진다.


환한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바닥은 학교 복도 같은 나무 바닥일 것 같다. 벽에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다정한 엽서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창가의 테이블과 중앙의 바 테이블은 오래된 선박에서 가져온 고재로 만들어져 손에 닿았을 때 기분 좋은 딱 알맞은 온기를 머금고 있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제목은 정작 잘 모르는, 그러나 조금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만 해도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채운다.


구석구석 작은 화분이 놓여 있고 창가에 앉아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며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창을 뒤로하고 돌아앉아 바 테이블에 서 있는 두 사람과 마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만 같다. 음악 소리와 조용한 대화, 대화 중 가끔씩 번지는 웃음소리가 공간 안에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섞인다. 모두가 조금 더 자기다워질 수 있는 곳, 무언가를 억지로 꾸며 내거나 감출 필요 없이 그냥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나랑 꽤나 닮은 공간이다. 아마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지금 여기서 만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다니며 새로운 것을 보고 또 많은 것을 느끼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처럼 머무름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것 대신 살면서 자주 잊고 지냈던 조금은 낯설어진 원래의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다시 자기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 잠시 멈춰 서서 돌아보고 자기를 챙기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되기 위해서, 자기를 찾기 위해서, 자신으로 머무르기 위해 잠시 자기를 떠나는 것이다.


맥주를 비운 두 사람이 잠자리에 든다. 불이 완전히 꺼지고 다시 어둠. 하지만 처음의 어둠과는 다르다. 어두운데, 따뜻하다. 텅 비어 있던 내가 다시 사람의 온기로 채워진 이 순간이 좋다. 누군가의 하루 끝을 안아 주는 역할, 그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 같아서.


조용히 잠든 두 사람을 내려다본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밤을 건네고 싶다.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속으로 인사를 해 본다.


굿 나잇.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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