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을 읽고”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2005년 2월 대학 졸업 이후 2018년 8월 춘천에서 창업하기 까지 약 10여 년간 내가 다닌 회사는 적어도 10곳이 넘는다.
가장 오래 다닌 곳이 4년, 짧은 곳은 두 달도 채 안 됐다. 퇴사 이유는 거쳐간 회사의 수만큼이나 다양했지만, 그중 8할을 차지하는 공통된 이유는 단연 지루함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지루함은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한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일의 과정, 과정이 만든 결과, 그리고 결과가 불러오는 사람들의 반응. 이 모든 요소들이 나에게 의미 있게 느껴질 때, 일이 아무리 고되어도 크게 지루하지 않았다.
반대로 “이 일을 해서 뭐가 달라질까” ”나는 왜 이걸 해야 하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수정, 수정 2, 수정 3, 최종수정, 최최종수정
끝없이 반복되는 수정작업에 원래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목적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일을 하는 것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 내 주변을 감싸는 감각이야 말로 지루함의 본질에 가까웠다. 지루하다는것을 깨닫는 순간 일은 내게 고통스러운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추석에 입사해 설 전에 퇴사했던 마지막 회사를 다닐 때가 가장 끔찍했다. 소셜미디어 채널 기획과 운영을 맡기로 하고 입사를 했는데 막상 내게 제일 먼저 주어진 일은 소셜 미디어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본부장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서류와 면접을 거쳐 나를 직접 채용한 사람에게 내가 왜 이 일을 해야만 하는지를 설득하는 과정은 블랙코 메디 그 자체였다. “이러실거면 도대체 왜 저를 뽑으신건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마지막까지 그 말을 하진 못했다.
입사 후 세 달 동안 워드문서를 한 30번쯤 고친 뒤 겨우 본부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다음에 내게 주어진 일은? 바로 이사장님을 설득하기 위한 문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의 그 황망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마침내 회사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었다.
퇴사를 앞둔 사람에게 주어진 한 달은 말 그대로 한가함과 지루함의 절정이다.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서 몇 시간 동안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을 기다렸다. 월요일이 되면 주말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주말은 드라마 엔딩에 잠깐 나오는 다음 주 예고편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일요일 저녁이면 내일 또 회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우울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한가하고 지루하며 우울했던 한 달이 마치 일 년처럼 더디게 흘러갔다.
퇴사하는 순간, 우울함은 씻은 듯 사라졌지만 갑자기 주어진 한가함은 이전과는 다른 지루함을 데려왔다.
그때만큼 돈과 시간, 일과 지루함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회사일로 바쁠 땐 돈이 있어도 쓸 시간이 없었고, 한가할 겨를이 없어 지루 함을 느낄 틈도 없었다. 반대로 무의미한 일을 반복해야 했던 시기에는 지루함이 나를 잠식했지만, 그것을 극복할 기분전환조차 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퇴사 이후 맞닥뜨린 지루함은 내게 새로운 의미의 문제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만큼은 도무지 할 수 없는지 다시 맨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회사를 10곳을 넘게 옮겨 다녔어도 미처 다 알지 못했던 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건 당연히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의미가 찾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는 상황 속에서 어느덧 한가함은 내게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4대 보험 가입이력에 다시 한 줄을 추가했다. 다만 이번엔 내가 만든 나의 회사이다.
“이러실 거면 도대체 왜 저를 뽑으신 건가요”
라는 질문은 그때처럼 지금도 던질 수 없다.
지루함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이 여정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안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은 지루함과 싸우는 삶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