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책을 읽고
우리는 사람들 속에 혼자 있을 때,
함께 있는 이들이 너무도 확실하게 행복해 보일 때 수치심을 느낀다.”
외로움의 책, 다이앤 앤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동안 한 번도 전학을 가본 적이 없다. 대학을 서울로 가기 전까지는 이사를 한 것도 손에 꼽는다. 같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6년간 같이 학교를 다니고 그대로 졸업해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고, 심지어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1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같은 재단 바로 옆 건물이었다. 두어 개의 초등학교가 하나의 중학교로, 또다시 세네 개의 중학교가 하나의 고등학교로 합쳐지기에 졸업과 입학은 끝도 시작도 아니었다. 적어도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쉽게 말해 모두가 나를 아는, 혹은 적어도 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여기는 그런 세계 속에 십 년 넘게 갇혀 지냈던 것이다.
학창 시절 나는 사람들, 주로 같은 나이란 이유로 친구로 불러야 하는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날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했다. 이유도 기억나지 않는 일로 거의 매일 싸웠고 많이 울었고 자주 죽고 싶었다. 한쪽 팔을 책상에 올리고 고개를 파묻은 채 교복이 다 젖을 정도로 소리 없이 숨죽이며 울던 시간들을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그때 난 정말 외로웠던 것 같다.
학창 시절 내 꿈 중 하나는 전학을 가는 것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전부 지우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운 좋게 적당히 나와 어울려 줄 몇몇 친구들을 구했다. 우리만의 암호를 만들어 교환 일기도 주고받고, 학교를 마치고 같이 떡볶이도 사 먹고 독서실에서 밤도 새우고 가끔은 옷을 사러 이대나 신촌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진정한 우정이라기보다 ‘친구가 있음’을 증명하려는 어떤 요식 행위에 더 가까웠다. 내가 느끼고 겪는 것들에 대해 소통하고, 반의 반이라도 내 마음의 한 조각이라도 이해받길 원했지만 내 기대는 단 한 번도 충족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다른 수업이 시작되기 전 십 분 남짓한 짧은 시간마다 교실 뒤 빈 공간으로 모여들어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고 서로의 이름을 줄여 제멋대로 지은 별명을 부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내겐 너무나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지만 먼저 손을 내밀거나 다가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종종 내게 다가오는 이들은 친밀감과 우정이 아닌 다른 실용적인 목적으로 다가왔다. 시험 기간을 앞두고 노트를 빌린다든가, 같이 시험공부를 하자는 식의 뻔한 접근이었다. 나는 그런 이유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이번엔 다를 거라 기대하곤 했다. 내 기대는 매번 어긋났고, 나는 전보다 더 외로워졌다.
모두가 나를, 내가 원하지 않고 내가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알고 있는 학교란 작은 세상에서 나는 완벽하게 고립되었다. 매일매일이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내게 주어진 외로움과 고독, 고립감에 대해 깊이 있게 사유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이를테면 창작의 동력 등으로 활용해 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 인생이 지금과 아주 많이 달라졌을까?
나는 활용 대신 다른 방식의 대응을 선택했다. 나의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고립은 다른 이들에 의해 주어진 게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른바 왕따라는 것을 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모두를 왕따 시켜 버리는 것으로 어느 순간 나 스스로도 믿게 된 것이다. “나는 저 아이들과 달라.” “나는 너무 특별해.” 도무지 받아들일 수도 적응할 수도 없는 감정들을 다독이며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주문처럼 읊조렸다. 좀 더 극단적으로는 저들과 나는 수준 차이가 난다고, 나는 더 성숙해서 미숙하고 유치한 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라 조금의 의심 없이 믿었고, 그건 제법 괜찮은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또래 아이들과 친밀감을 갖지 못한 내 결핍은 다소 엉뚱하고 조금은 위험한 욕망으로 표출되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학교에 부임한 옆 반 담임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와 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나만큼이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다른 선생님들보다 한참 어린, 우리보다 고작 몇 살이 많은 그를 ‘선생’으로 대하지 않았다. 교권이 지금처럼 무너지기 한참 전인, 교사들의 무자비한 폭행이 재미난 무용담쯤으로 여겨지던 그 시절 그가 느꼈을 좌절과 상대적 박탈감은 아마 그를 나만큼이나 외롭고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미 경험했고 극복했다고 믿은 것들을 토대로 그의 취약함을 파고들었다.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내가 듣고 싶은 얘기를, 내가 원했던 위로를 그에게 쏟아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다른 또래 아이들에게 받지 못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친밀감을 내가 내 스스로에게 대신 채워 주는 것과도 같았다.
우리는 종종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가끔은 긴 통화를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학교가 아닌 곳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졸업한 대학의 교정을 함께 걸었다. 그냥 걸었다.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거나 그런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약속도, 어떤 다짐도 없었지만 그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 되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평생 찾아 헤맸지만 한 번도 갖지 못했던 내 마음의 빈 조각이 비로소 채워진 것만 같았다. 나는 더 이상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다.
그는 조금씩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그에게는 다행이었고, 나에게는 불행이었다. 서울에서 온 젊은 남자 선생님은 아저씨나 할아버지 같은 선생님들만 있던 시골 학교 안에서 금세 인기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를 좋아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취약함을, 그의 외로움을 더는 사랑할 수 없게 된 나는 다시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전보다 열 배는 더 외로웠고, 백 배쯤 더 아팠다. 내겐 또 다른 좋은 핑계가 남아 있었다. 나는 학생이고, 그는 선생이란 사실을 끄집어내었다. 처음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마치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굴었다. 그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인 양 타임캡슐에 내 감정을 봉인해 졸업 뒤로 미뤄 두었다. 입시, 고3이라는 상황 또한 내겐 적절한 포장지이자 완충제가 되어 주었다.
시간은 하루하루 더디게 흘러갔다. 졸업을 앞두고, 타임캡슐을 열 그날 만을 카운트다운 하던 내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결혼을 한다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고백도 하기 전에 차이다 못해, 그 어떤 가능성도 사라져 버린 허무함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가슴 한 구석을 철렁 이게 만든다. 내 첫사랑은 그렇게 어이없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졸업과 함께 학교를 떠났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마침내 일어났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 내던져졌다. 조금 슬프지만 대학이라고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외롭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던 유일한 일은, 친밀함을 갈망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지만 기대를 낮추자 놀랍게도 절망이 떠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더는 다른 이의 이해와 사랑, 관심이 내게로 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꼈을 무렵 새로운 갈증이 찾아왔다. 내가 만든 공간, 내가 쓴 글, 내가 찍은 사진, 내가 파는 제품이 관심받고 유명해지길 원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방식의 외로움과 고독이 나를 잠식했다.
가장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 아무래도 SNS 활동일 것이다. 좋아요와 댓글, 팔로워수에 집착하는 건 물론이다. 다른 사람들의 게시물 속 너무나도 완벽해 보이는 장면들, 내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아득한 숫자의 하트와 애정과 관심이 듬뿍 담긴 댓글들에 때로는 너무나 큰 박탈감을 느낀다. 마치 쉬는 시간 교실 뒤편에 모여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늘처럼 내 마음 한켠을 아프게 찌르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아무리 괜찮은 척, 초연한 척, 어떤 이유를 또다시 핑계 삼아도 결국 나는 평생 사그라지지 않을 친밀감을 향한 갈망과 이로 인한 외로움과 고독을 품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행인 건 이제 더 이상 책상 위에 얼굴을 파묻고 숨죽인 채 혼자 우는 아이가 아니라 고독을 즐기고 기꺼이 연료로 이용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단 사실이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인 채로, 그러면서 또 혼자인 채로 살아가는 법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다행인 건 고독의 시간을, 외로움을 조금은 만끽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더는 빈 조각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