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에세이/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3편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아빠가 만든 거야"
잠실의 한 백화점. 아빠는 남성 잡화매장 한가운데 서서 선반 하나하나 모두 자신이 설계한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스케치한 그림들을 보여줬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으로 공간을 훑어봤다. '근데, 우리 집은 왜 그래요?' 그때 아빠한테 묻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는데 유치원생이 었던 나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아빠 손을 잡고 다른 층으로 향하는 에스칼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아빠는 항상 멋들어진 외국 디자인 서적을 보고, 크고 작은 예쁜 집들의 모형을 만들면서 왜 우리 집 식탁에는 식탁 절반을 차지하는 각종 약통과 빵 봉투가 올려져 있으며, 왜 마진 없이 떨이 판매하는 가구 아웃렛점처럼 집 안의 가구들은 각양각색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많은 아이들이 한 번쯤은 그렇듯, 나도 다짐했다.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살지 않을 거야!
피는 속일 수 없는지 나는 집 꾸미기에 약간의 재능이 있었다. 아빠처럼 밖에서 그 재능을 소비할 필요가 없으니 나는 집 안에서 혼을 담아 그 재능을 낭비했다. 결혼을 앞두고 구한 첫 번째 신혼집은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가 예정되어 있어 1년 남짓만 살아야 했기 때문에 가심비 가득한 물건들로 집 안을 채워나갔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애정이 묻어나는 첫 번째 집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고 집을 기록했다.
텅텅 빈 블로그에 집 인테리어 기록 포스팅을 하나 올렸을 뿐인데 네이버 리빙판 메인에 개시되더니 하루에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글을 클릭했다. 여기저기 인테리어 플랫폼에서 집을 소개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이런 집에 살고 싶다고 댓글을 달았다. 설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는 항상 평온했다.
하루 종일 길바닥을 떠돌아다니며 취재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기자인 남편과 한참 강의 스케줄이 많았던 나는 평일에는 두 번 정도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날은 함께 조그마한 주방에 서서 복작 거리며 저녁을 만들어 먹었고, 그렇지 못한 날은 거실 조명의 조도를 낮추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커피소년과 LANY의 음악을 들으며 차를 내려 마셨다. 떨어져 있었던 시간 동안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잠들고 싶은 시간에 잠들었고, 주말이면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났다. 브런치를 만들어 먹고, 집 앞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동네 강아지들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와 주말의 낮잠을 즐겼다. 거실에서 지는 해의 붉은빛을 보면서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고, 깔깔깔 웃으며 주말 예능을 보며 월요일을 준비했다.
그때도, 우리 윗집에는 다섯 명의 한 가족이 살고 있었고 지금 집 보다 딱 붙어 옆집이 있었다. 당연히 크고 작은 생활소음들이 들렸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안전했고, 나와 남편은 평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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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파트로 입주한 후에도 우리 집은 많은 곳에 소개가 되었다. 집은 두배로 커졌고, 사고 싶었던 비싼 소파도 샀고 욕심내서 좋은 가전들을 들였다. '오늘의 집'에 올라간 사진을 보고 5만 원도 안 되는 이케아 조명이 100만 원짜리 디자이너 제품인 줄 알았다는 어떤 분의 댓글처럼 꽤 그럴싸하게 집이 꾸며졌을 때 방송 촬영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번의 거절 후, 인테리어 소개와 함께 신축 아파트 입주에 있어서 필요한 시공단계를 설명하는 정보성을 곁들이며 전문가와 아나운서 패널이 집으로 찾아와 촬영을 해서 방송에 직접 노출되지 않아도 좋다는 설명에 한 방송 프로그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집에서 사전 인터뷰 약속을 잡은 날, 오전 강의가 길어져 약속 시간을 2시간 미뤘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와 약속을 변경하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작가분들이 집을 찾아오셨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지 10분 남짓 지났을 까, 쿠쿠쿠쿠쿠쿵-!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윗집 아이들이 유치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고 언제나처럼 집 안으로 달려들어왔다. 등줄기가 삐쭉삐쭉 날이 선 것처럼 따끔하고,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귀가 트일 데로 트인 나만 크게 들리는 거겠지 애써 모른 척을 하며 작가님들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가분을 보면서, 나만 예민하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답을 이어갔고 쿵쿵 쿵쿵 아이들의 거실을 달리는 소리와 달리다 보니 무릎으로 넘어지는 쿵! 쿵! 소리와 진동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이어갔고 작가님들은 핸드폰으로 영상과 사진을 기록해 나갔다. 큰 방 침실로 들어서자 언제 방으로 옮겨 왔는지 쿵쿵쿵 쿵쿵! 쿵쿵 쿵쿵! 방 안을 왔다 갔다 뛰는 소리가 이어졌고 이쯤 되니 정말 이 소리가 저 사람들 귀에는 안 들리는지 궁금해졌다.
싫어-------------!!! 아파아아아꺄아아아아아------------!
베란다 공간을 설명하던 그때, 벽을 타고 비명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아아- 다행이다. 나만 들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어..! 쿵쿵 쿵쿵 방 안을 뛰는 소리와 함께 욕실을 통해 다른 아이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가 방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리는 걸 떠나 창피함에 얼굴이 후끈 빨개졌다.
"아이고, 심하네. 윗 집이랑 같이 사시는 구나. 애들이 다 그렇죠 뭐- "
밝은 목소리로 괜찮다는 듯, 붙여오는 상냥한 말에도 나는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전날 방문했던 작가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제가 들었던 만큼 크게는 아니지만 핸드폰 동영상으로도 소음이 쿵쿵 잡히네요. 혹시 촬영 날 윗집에 미리 양해를 구해서 촬영 시간 동안 집을 비워 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까요? 어제 같으면 촬영 진행이 안될 것 같아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윗집 사람을 만난 김에 소음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었을 때
'예민하신 거 아니에요? 저희는 다른 집에서 나는 소리 신경 안 써요'라는 답을 들은 후 나는 줄곧 내가 예민한가, 예민한 사람이어서 윗집을 괴롭히고 있는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눈물이 났던 건, 안도감에서였다. 그날 그 전화 한 통은 내가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명이었다.
나는 촬영을 최종 고사했다. 언제 집에 돌아오는지, 주말에 집을 비울 때는 알려달라는 윗집 아이 엄마의 카톡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2편. 귀가 보고를 하라고요? 참고) 생각을 한 내가 우리 집 때문에 반나절 집을 비워달라 할 수 없었다. 사이가 좋은 관계에서도 하기 힘든 염치없는 부탁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해서 방송 출연을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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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공개된 소리 없는 사진 속 우리 집은 항상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고요했다. 그 안에서 우리 부부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자상한 남편이 뒷정리를 해주고, 이따금씩 빵을 굽고 커피를 내려 홈카페를 오픈하고, 베란다에 캠핑의자를 두고 맥주도 마시고 컵라면도 먹는 낭만을 즐기는 행복한 신혼부부였다.
실상은 햇살 쏟아지면 사진만 한 장 찍고 그대로 집을 버리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에는 집으로 퇴근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집 안이 시끄러우면 그대로 다시 문을 닫고 나가서 외식을 하고, 조용하면 집에서 집 밥을 먹었다. 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쿵쿵 쿵쿵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그대로 숟가락을 내리고 밥을 다 먹었다 식탁에서 일어나 버렸다. 주방이 거실과 붙어 있는 구조여서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들려오는 쿵! 쿵! 소리와 함께 주방 후드가 흔들렸던 날 분노감에 씻던 그릇들을 싱크대에 던져 버렸고 그 후 설거지는 항상 남편이 도맡아 해 주었다. 소음을 피해 선택한 곳이 베란다였다. 낭만이 아니라 이 집에서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이게 우리 집의 밑 낯이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이중인격인 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