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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Sep 26. 2021

귀가 보고를 하라고요?

실화 에세이/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2편


[집에 들어오시면 알려주세요]



아아아악! 10분 전쯤 들어온 카톡 메시지를 확인한 후, 하마터면 쇼핑몰 한가운데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거 신종 가스라이팅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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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여섯. 엄마에게도 안 하는 귀가 보고를 윗집 여자에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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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10초 뒤로, 10초 뒤로, 동영상 재 감기를 하듯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처음부터 잘 못된 건 아닐까. 윗집이 이사를 온 후 시작된 층간소음은 남편과 나의 일상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쿵- 뛰는 소리 끝에 마지막은 꼭 어디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건지 진동을 동반한 거대한 쿵! 소리로 마무리가 된다. 매일매일 누가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먼저 새로 이사 왔는데 인사를 핑계로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 어떠냐고 제안을 해왔다. 우리는 이사를 온 후 앞집과 아랫집에 인사를 했었다. 우리가 했다고 남들도 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요즘 이사 왔다고 떡 들고 인사 가는 시대도 아니고, 벨을 눌러 집 현관문을 열게 하는 게 더 민폐일 수 있는 코로나 시국에 생각해보면 인사를 안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그릇장의 그릇들이 계속 흔들릴 정도의 쿠쿠쿠쿠쿵! 소음으로 관리실을 통해 인터폰을 했고 주의를 주겠다는 답을 저녁 7시에 받았지만 (이미 2시간 이상 소음을 들은 시각이었다) 밤 11시까지도 소음은 아랑곳없이 이어졌다. 그날만큼의 강도는 아니지만 그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참기 힘들 만큼 아이들이 쉬지 않고 뛰는 소음은 오전부터 저녁까지 계속됐다. 우리는 한 번쯤은 인사를 하러 내려오지 않을까, 어떤 이유에서 계속 소음이 나는지 양해를 구하지 않을까 기대했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이 층간소음으로 이석증 판정을 받고 약을 받아온 그다음 날 나는 과일을 한 상자 사서 윗집 앞에 섰다.

후우- 크게 심호흡을 내뱉고, 벨을 누르자 우리 집에서 들리는 익숙한 쿵쿵 쿵쿵! 소리가 현관문을 뚫고 들려왔다. 지난번, 산책길에 봤던 그 초딩이 앞에 서있겠지? 뛰지마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는 상상을 하며 한 번 더 크게 숨을 쉬었고 드디어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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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여서 저희가 갈 곳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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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목이 땡긴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지금 내 눈앞에 이게 뭐지? 순간 목과 팔에 도도독 소름이 올라왔다. 그때 내가 봤던 초등학생 아이는 없었다. 더 어린 남자아이 두 명이 현관문을 연 아이 엄마 뒤로 계속 왔다 갔다 맨바닥을 뛰고 있었다. 문을 연 애뗘보이는 여자는 앞 뒤 인사도 없이 첫마디로 '죄송해요. 코로나여서 저희가 갈 곳이 없어요' 말을 던져왔다.


아- 네, 그럼 저는 갈 곳이 있나요? 갈 곳이 없다고 이렇게 뛰는 건 아니죠. 지금도 보세요. 저렇게 맨바닥을 쉴 새 없이 뛰는데 그럼 저희 집에서는 어떻겠어요? 저도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중인데 하루 종일 누가 제 머리를 치고 있는 것 같다고요.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요? 아이들이 갑자기 뛰는 것까지 못 막아도 이렇게 몇 시간씩 뛰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때의 나를 날 것 그대로 표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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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신처럼 웃으며 그쵸, 갈 곳이 없죠?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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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손님들이 왔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코로나로 나갈 수는 없지만 집합 금지여도, 집으로 손님들을 초대해서 밤까지 계속 노는 거였구나. 아이 친구들이 이사한 집에 와보고 싶어 해서 놀러를 오는데 남의 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렇구나, 나갈 수가 없어서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노는 거구나. 본인 아이들에게도 뛰지 말라고 안 하는 것 같은데.. 아아- 그렇구나.


그때였다. 다시 되돌려야 할 결정적 한 장면! 윗집 아이 엄마가 핸드폰을 내밀어왔다.


당장 그 손을 내려쳐. 너 바보야? 병신이야? 지금 웃으면서 그 핸드폰을 왜 잡아 들어! 아니야 아니라고.

너 그게 때문에 나중에 어떤 꼴을 당하려고!!




과거의 나에게 소리쳐 봤자였다. 소음이 힘드시면 관리실 말고 직접 연락을 주세요. 웃으며 핸드폰을 내밀어 번호를 알려 달라는 제안에 나는 따라 눈웃음을 지으며 꾹꾹- 번호를 눌러줬다.


이렇게 문제가 잘 해결됐다 생각했다. 남편에게 윗집에 유치원생 정도의 남자아이 두 명이 있지만 앞으로 힘들면 바로바로 주의를 주겠다고 했다고 자랑스럽게 후기를 공유했다. 남편도 역시 먼저 인사하길 잘했다 나를 칭찬했다. (이 구역의 병신 두 명이 여기 있어요)



그날부터였다.


카톡! 카톡! 카톡!


내가 이사 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 걸까? 친구라고 생각해서 알려주는 건가? 아닌가? 그럼 이건 뭐지..?

머릿속에 물음표 살인마가 들어온 기분이다. 처음에는 나에게 윗집 본인들의 일상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저희 30분 있다가 나가요. 저희 10분 있다가 아이들 재울 거예요. 저희 지금 나갔다가 7시에 들어가요. 저희 아이가 자다가 깨서 거실에 나갔다가 아이 아빠가 아이에게 소리를 쳤고 다시 자요. 묻지 않은 일상을 먼저 나에게 보고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 보고자는 내게 너도 보고를 해야지? 강요해왔다.


[언제 집에 들어오세요?]

[나가시면 알려주세요!]

[주말에 집 비우실 때는 알려주세요]

[연휴에 나가시는 날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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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 정신과 생활을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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