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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Sep 25. 2021

평생의 운을 다 쓴 건 아니겠지?

실화 에세이/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1편

 

행운이었다. 행운이라는 단어가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대운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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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양가의 도움 없이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느 예비부부들이 그렇듯, 결혼 준비에 있어서 내 집 마련하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회식을 마치고 (때는 바야흐로 4년 전, 코로나가 뭔가요? 매일 저녁 회식 자리가 이어졌던 그 시절) 술에 취했던 구남친이(현남편)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자그마한 핸드폰 화면에 의지해 청약 홈을 뒤적거리다 지원 가능 지역의 버튼을 다 누르곤 잠을 청했던 그날, 그 손가락에 의해 우리는 가장 큰 고민이었던 집이 해결되었다.



부동산 광풍이 불기 직전, 청약 열풍의 서막에서 우리는 말도 안 되는 낮은 점수로 거주 사다리의 막차를 올라타고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모든 고민이 사라졌다. 결혼 준비는 순조로웠고, 싸울 일이 없었다. 아직 입주까지 3년이 남은 시점에서 입주예정자 카페에는 매일매일 분양권 값이 오르고 있다는 희망찬 (사행성 느낌이 낭낭한) 글들이 올라왔다.


로또다! 이건 인생에서 한 번 만날 수 있는 로또를 만난 거다. 우리 부부는 마음이 힘든 일이 생겨도 입주할 아파트 이야기를 시작하면 바로 싱글벙글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고, 좋은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다며 서로를 다독였고, 실제로 금전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로또를 만났다는 건 지금도 변함이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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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돈이 모든 걸 보상해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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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기다렸다. 그 사이 우리는 결혼을 했고, 첫 번째 신혼집을 거쳐 새 아파트에 입주를 했다. 층간소음 방지를 위해 흡음재를 기존 아파트보다 두껍게 설계했다더니 그래서인지 사전점검을 할 때도, 입주 후에도 매일매일 고요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요즘 아파트는 참 잘 짓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우리 집은 다른 세대보다 하자도 없고 동 호수 뽑기를 참 잘 뽑았다 남편을 칭찬했다.


지 이이이이 잉- 이른 아침,  기다란 사다리가 창문 한가운데를 통과해 위층 짐들을 올리기 전 날 까지는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쿵! 쿵! 다다다다 쿵! 크고 작은 파열음과 진동이 벽을 타고 내려와 그릇장 속의 그릇들을 흔들고,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을 울렸다.


이사 온 날이어서 집 정리한다고 바쁘신가 보다.. 아직 정리할게 많겠지?.. 이렇게 계속 걷지 않고 뛰어다닌다고? 이렇게 쿵쿵 걸으면 발바닥 아픈 거 아닌가? 왜 성인이 매일 뛰듯이 걷지? 슬리퍼라도 신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머릿속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 나갔다. 나는 어리석게도 윗집 역시 우리와 같은 가족 구성원일 것이라 지레짐작을 했다. 윗집이 이사 온 지 삼일 째, 소음을 참지 못하고 산책을 나갔다 문득 올려다본 윗집 거실 창 문 앞으로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가 쉴 새 없이 공을 잡으러 뛰어 오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하기 전까지 말이다. 아! 윗집 아이가 뛰는 소리였구나.



정확히 열흘 후, 남편은 거실에 앉아 있으면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며 어지러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귓속 달팽이 관이 잘못된 건 아닌지, 어설픈 기억력으로 생물 시간의 배움을 되짚어 이것저것 병명을 찾아보다 이비인후과에 방문을 했다. 남편은 살면서 이비인후과에 간 건 처음이라 어디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며 진료실 앞 대기 의자에 앉아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그 걱정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이석증.


남편이 받아온 병명은 이석증이었다. 의사는 남편이 언제 이 증상을 겪는지를 듣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고 한다. '층간소음 때문이네요. 요즘 그것 때문에 오는 환자들 정말 많아요. 다들 이명현상 겪고 그래요.'

그리고 덧붙인 한 마디. '약이 잠깐 도움이 될 뿐, 원인이 안 고쳐지면 계속 병원에 오게 될 거예요'



"의사인 나도 윗집 때문에 계속 이 병을 못 고치고 약을 먹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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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에 들어왔다. 'welcome to the hell'이라는 문구가 달린 기차를 타고 긴 터널 속을 불 빛도 없이 달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핑크빛 까지는 아니어도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파아란 하늘빛 미래를 그렸던 삶이 잿빛이 되어 온 정신을 집어삼켜 버렸다.


이사 온 지 9개월. 나는 혹시 내 평생의 운을 다 쓴 건 아닐지 무속신앙에 의지를 해봐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평생을 큰 고민 없이 살아왔고, 내 결정에 항상 확신이 있었고, 남들이 보기에 우와! 까지는 아니지만 꽤 괜찮은 인생인데?라는 생각이 들만큼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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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이곳에서 나는 공황장애 초기 판정과 한 번의 유산을 하고 나를 잃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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