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미술관
이 그림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화가는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그렸을까. 나는 미술 작품 앞에서 매번 그런 고민을 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나보다 작품을 그린 화가를 늘 먼저 생각한다.
난 미술이 어렵다. 영화나 음악을 시청한 후에는 감상을 줄줄 잘도 쏟아내는데, 미술 작품을 보고 나면 한마디의 감상조차 뱉지 못한다. 미술에는 정답이 있는 것만 같다. 화가의 창작 의도를 발견하고자 초조하게 그림을 들여다본다. 정작 나의 감상을 물어보면, 미술에 무지하다고 내빼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답한다.
사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게 아니다. 차라리 백지인 상태가 낫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대답한다. 어떤 작품을 향해 내가 ‘기괴하다’라고 표현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만약 그 작품이 사회를 향한 굉장한 비판을 담은 역작이라면, 섣불리 뱉은 나의 감상은 다소 머쓱해진다.
고전 미술 작품일수록 감상을 남기기가 더욱 어렵다. 오래된 작품일수록 수 세기 동안 수많은 평론가와 역사가가 분석한 결과들이 차고 넘친다. 완벽히 분석된 미술 작품은 작품의 감상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내 추측과 감상이 그들의 분석과 일치하는지를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진다. 틀린 답을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앵무새처럼 그대로 말을 옮기기를 선택할 때도 있다.
틀린 답을 말할까 두려운 마음을 품고서도 종종 미술관 입구를 서성인다. 미술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감정이 여전히 궁금하다. 그래서 나의 첫 번째 미술관 가이드로서 <기묘한 미술관>을 읽어보았다.
캔버스에 유화, 130.5x191cm, 1865년, 오르세 미술관
1863년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유화이다. 1865년 프랑스 살롱전에 등장한 이 작품은 언론과 대중에게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 기존에 나체의 여성을 그린 작품들은 여러 오브제로 그가 여신 등의 신성한 존재임을 암시했다. 그러나 <올랭피아>는 피사체를 전혀 다르게 표현했다.
전통적인 누드 미술 작품인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비교하면 이해가 더욱 쉽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에 등장하는 여성 피사체의 발밑에는 전통적 정절의 상징인 개가 있다. 반면, <올랭피아>에 등장하는 여성의 발밑에는 음란함의 상징이었던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인물의 시선도 특이하다. <올랭피아> 속 여성은 그림 밖 감상자를 빤히 쳐다본다.
당시 그림을 본 사람들은 마네가 성매매 여성을 그렸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동시에 곤란함을 감추지 못했다. <올랭피아>처럼 어린 소녀에게 성적 충동을 해소했던 저급한 귀족들은 그림을 보고 자신들의 경험을 떠올렸다. 이 작품이 본인이 경험한 장면을 떠올린다고 말했다가는 체면과 위상을 구길 터였다.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살롱전이 선정한 그림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하면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이 됐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자신의 감상을 특별히 덧붙이기지 않고 비평가의 비난에 편승하여 ‘이 그림은 포르노그래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혀를 찼다.
패널에 유화, 77x53cm, 1503~1506년
1911년의 어느 날,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던 <모나리자>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이 시기만 해도 <모나리자>는 현재의 위상과 가치에 한참 못 미치는 그림이었다.
1849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의 가격 추정 기록에 의하면 라파엘로의 아틀리에에서 그려진 <성 가정>이 60만 프랑으로 가장 고가의 작품이다. 반면 <모나리자>는 9만 프랑으로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위상에 비해 적은 금액인 것은 틀림없다. P. 80
그래서인지 <모나리자>가 제자리에 없다는 문의에도 파리 경찰은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미술 작품이 도난되었다는 소식이 알음알음 유럽과 미국 전역에 퍼졌다. 경찰이 뒤늦게 박물관의 모든 관계자를 조사했으나 특별한 용의자를 찾지 못했고, <모나리자>의 실종 소식은 연일 퍼져나간다.
2년이 지난 1913년 12월, 피렌체의 한 허름한 여관에서 <모나리자>가 발견된다. 당시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리 교체 일을 하던 작업자가 범인이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이 도난 사건으로 급격히 유명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40조 원에 달하는 현재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모나리자>는 다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이나 대기 원근법, 콘트라포스토 자세가 사용된 특별한 작품이다. 더불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그녀의 편안한 자세와 모호하고 신비로운 미소가 인상적이다. 이렇듯 <모나리자>는 분명 대단한 작품이지만, 현재의 유명세와 가치는 오로지 그림에서만 비롯한 게 아니었다.
캔버스에 유화, 92x73cm, 1923년, 오랑주리 미술관
로랑생은 20세기 초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 화가이다. 1923년, 로랑생은 세르게이 댜길레프의 공연 <암사슴들>의 의상과 무대 작업을 맡는다. 그리고 이때 같은 시기 공연한 <푸른 기차>의 의상을 담당한 가브리엘 샤넬과 인연을 맺는다.
샤넬은 로랑생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한다. 그러나 완성된 작품을 확인한 샤넬은 그대로 그림을 로랑생에게 돌려보낸다.
로랑생이 그린 샤넬의 초상화에는 우울감이 묻어있다. 로랑생 특유의 그림체와 함께 청록, 분홍, 하늘색이 어우러진 맑고 몽환적인 색채를 사용했으나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마냥 밝지 않다.
로랑생은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화>와 달리 훗날 의뢰받은 <폴 기욤 부인의 초상화>를 비롯한 다른 여성들의 초상에는 주로 온화한 표정을 표현했다. 그런 그가 왜 샤넬의 초상화에만 고단하고 우울한 흔적을 남겼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같은 여성이자 동년배로서 쉽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동질감과 남성이 주류인 사회에서 성공을 향해 쉼 없이 달리던 샤넬의 감춰진 외로움을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로랑생 역시 남성주의 예술계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P. 127
캔버스에 유화, 55.5x66cm, 1857~1859년, 오르세 미술관
붉은 저녁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멀리 성당에서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일하던 젊은 부부는 오늘의 감자 수확에 감사하며 손을 모아 기도한다.
<만종>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는 노르망디 시골 출신이다. 서른 중반 즈음 파리 근교 바르비종으로 이주한 그는 그곳의 풍경보다는 농민들의 자연스럽고 소박한 삶을 즐겨 그렸다. <이삭 줍는 여인들>이나 <씨 뿌리는 사람> 등이 이 시기 밀레가 그린 작품이다.
밀레가 그린 건 역사화도 아니었으며, 사회 비판적인 의도를 숨긴 그림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들판에서 노동하는 이들을 경건하게 그림에 담았을 뿐이다. 하지만 당시 사회주의자들은 밀레의 그림을 정치 편향적인 시각으로 이해하며 가난한 이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음에 열광했다.
<만종>을 향한 비약적인 비평은 끝나지 않는다. 훗날 살바도르 달리는 <만종>에 죽음을 암시하는 은유적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후로도 <만종>에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한 집착은 이어진다.
<만종>과 관련해 밀레가 친구에게 쓴 편지가 있다. “어릴 적 할머니가 저녁 종이 울리면 언제나 잊지 않고 우리와 함께 기도를 드리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이 그림에서 무얼 보고자 했든, 밀레는 그저 묵묵히 농부의 숭고한 노동과 자연의 삶을 그렸다.
<올랭피아>를 본 사람들은 체면을 차리느라 솔직한 감상을 말하지 못했다. <모나리자>의 유명세는 도난 사건의 화제성에 상당 부분 기인하였고, <만종>은 그림에 특정한 사상을 반영하고자 하는 이들 때문에 의미가 퇴색될 위기를 겪었다.
21세기 사람들이 현대 미술을 상당히 모호하고 편향된 기준으로 판단하듯이, 당시의 사람들도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와 의미를 정해두고, 어느 정도 작품을 그 틀에 끼워 넣은 역사가 상당하다.
미술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부여받은 시각과 통찰력, 그리고 지식을 통해 그림을 완벽하게 분석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역사 그 어디에도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미술 비평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미술 작품을 향해 다양한 분석을 하고 여러 논쟁거리를 던진다. 화가가 살아 돌아와 그림의 의미를 전달해주지 않는 이상 누가 맞는지 답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제 그림을 바라보며 답이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 나름의 미술 감상을 하기로 했다.
역사의 맥락에 나의 사유를 잘 섞어 두려움 없이 기쁘게 그림을 바라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