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을 위한 16인의 외침, <무민은 채식주의자>를 읽고
어느 날은 혼자 길을 걸어가다가 ‘고깃집’이라고 적힌 간판을 보았다. 아무런 형용어도 없이 그냥 ‘고깃집’이었다. 이름이 참 폭력적이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내 몸은 쇳가루가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움직였다. P.125
영화 ‘옥자’를 본 건 우연이었다.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시험이 끝난 어느 날 선생님은 학생들의 부탁에 흔쾌히 천장에 달린 스크린을 내려주셨다. 최근에 개봉한 유명 감독의 영화라며 ‘옥자’를 재생해주셨다. 시험을 막 끝낸 나는 그저 피곤했고, 봉준호 감독이 누군지도 잘 몰랐기에 따분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시청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시간이 흘러 영화가 끝날 즈음, 나는 생각했다. “아, 다시는 이전처럼 고기를 먹지 못하겠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저녁 반찬이었던 고기를 한 입 더 먹을걸. 하지만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이미 내 머릿속의 모든 고기는 그저 ‘살덩어리’로 변해있었다.
살덩어리를 기분 좋게 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나는 동물권에 대해 아는 게 많지도 않았다. 식판에 얹힌 고기 메뉴를 내려다볼 때 내가 느낀 건 죽은 동물을 대신한 분노보다는 단순한 역겨움이었다. 걷고 뛰는 삶을 누리지 못한 동물들이 내 식판 위에 놓여있었다. 살덩어리네. 살덩어리야. 물렁거리는 걸 바라보며 토기를 느꼈다.
그래서 몇 달은 고기를 거의 먹지 못했다. 입에 살을 넣을 때마다 그게 움직여대는 것 같았다. 급식실에 앉아 고기에는 손을 대지 않고 감자 따위를 씹었다. 집에서는 엄마의 성의를 생각해 고기를 입안에 넣어본 적이 있는데, 물렁거리는 식감에 당장 화장실로 달려갔었다.
그 날 엄마에게 더 이상 고기를 먹을 때 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옥자’를 본 후 내게 생긴 변화를 처음 입 밖으로 내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저 살을 씹는 게 불쾌했을 뿐인데, 그 한 마디로 돌연 채식주의자 선언을 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동물권과 채식에 대해 공부했다. 알면 알아갈수록 끔찍했다. 동물들은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기 위해 꼬챙이에 꿰뚫리고, 산채로 피부가 뜯기고, 아주 작은 케이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무참히 살해당한다. 더는 소, 돼지, 닭, 양을 비롯한 수많은 빨간 덩어리를 먹고 싶지 않아졌다.
개돼지가 짐승이지 사람이냐? 사람도 짐승처럼 사는 마당에. (중략) 짐승은 짐승처럼 살다 가는 게 순리야. 까놓고 말해서, 너는 고기 안 먹어? 적당히 하자, 적당히. (중략) 인간을 도와. 인간을. R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P.101
채식에도 단계가 있다. 나는 그중에서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되기로 했다. 어떤 종류든 채식을 선언하는 이들에게 꼭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그럼 생선이나 풀, 과일은 안 불쌍한가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문장 속 존재들을 딱하게 여기는 게 아니다. 그들은 채식주의자의 선언을 유난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자신과 똑같은 사고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싶어 한다. 아쉽게도 나의 경험과 공감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우선은 나와 몸을 구성하는 게 비슷한 존재들에게 이입해 페스코까지의 경계를 정했다.
홀로 내린 결론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의 채식 정체성을 몰래 품에 껴안고 고기를 좋아하는 척 살았다. 그러니까, 유난스럽게 보이지 않기 위해 플렉시테리언이 되었다.
*플렉시테리언은 때로는 고기를 먹으며 유동적으로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딱 한 번, 페스코 지향 플렉시테리언임을 명확히 고백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반 만에 만난 Y는 마지막으로 인사했던 날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서로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있었다. 메뉴를 정하다가 나온 채식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불쑥 나의 채식 정체성을 말했다.
그때 Y는 나의 말에 크게 공감해주었지만,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조금 뿌듯했지만, 동시에 크게 부끄러웠다. 그동안 그리 채식주의자답지 않게 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옥자’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서서히 잊고, 채식 지향이라는 허울만 남은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냉장실 상단에는 안심, 등심, 뱃살이 순서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중략) 과연, 발간 속살에 지방이 적절한 간격으로 겹과 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마블링이라고나 할까. P.127
인정한다. 시간이 흘러 나는 고기를 씹을 때 2017년만큼의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 감촉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이 소고기의 출신이 어딘지, 등급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상에 놓인 걸 한 점 집어 씹어댄다.
이따금 맛있다는 말도 한다. 보통 고기를 대접해준 사람은 그런 대답을 바라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 애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적절한 감사와 기쁨을 드러내고 싶어 쉽게 ‘맛있다’라는 말을 고른다. 단언하건대 감사의 마음이 거짓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소속된 공동체에서 자연스러운 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나는 자주 내 접시에 놓일 한 마리의 동물을 지키기보다는 내 앞에 있는 이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겁쟁이의 선택을 했다.
고기와 관련된 또 다른 거짓말을 했다. 스테이크나 돈가스를 먹을 때 부위를 신중하게 고르는 척하지만, 사실 난 각 부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른다. 고기의 부위나 등급 같은 정보를 뇌에 저장하고 싶지 않아 듣는 족족 한 귀로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그냥, 이상하다. 짐승의 몸 위에 점선을 그려 구역을 나누고, 각 부분에 다른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이 말이다. ‘안심’이나 ‘등심’ 같은 용어는 오로지 식재료로서의 개념이다. 어떤 부위는 양이 적어 비싸고, 어떤 부위는 쫄깃하다. 고기의 식감 자체보다 이런 파편화와 품평에서 역겨움을 더 크게 느낄 때가 있다.
여전히 육식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보면 다시 2017년의 깨달음이 떠오른다. “아, 다시는 이전처럼 고기를 먹지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지 5년이 지났고, 나는 아직도 고기를 맛있게 느끼지 못한다.
당장 완전무결한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육식으로의 퇴보를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앞으로도 식단에서 육류의 비율을 꾸준히 낮출 계획이다. 누군가의 마음에는 차지 않을 만큼 느릴 수 있지만, 차차 환경을 만들어나가며 용기를 쌓아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