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과 Jul 09. 2022

내가 사랑했던 것들의 촌스러운 컴백

<신동덤>과 ‘썸2’


예상치 못한 컴백 소식은 팬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새 작품이 어떤 모습일지 전혀 모른 채로, 그저 사랑하던 것의 후속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순순히 예매 버튼을 누른다.


어떤 컴백은 혹평이 예견되어있다. 이전 작품의 명성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그렇다. 팬들은 컴백 소식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매를 하지만, 작품을 낙관적으로만 예측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전 작품을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단한 작품성을 기대하기보다는 순수한 애정과 의리로 컴백을 기다리는 것이다.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을 예매하고 영화관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정확히 그랬다. <신동덤>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프리퀄인 <신동사> 시리즈의 3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원작의 속편의 후속작인 셈이다.


난 어릴 적부터 <해리포터> 시리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종이가 낡을 정도로 책을 반복해 읽으며 세계관을 공부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세계관은 나름 완벽한 편이다. 그러나 그 세계관은 후속작이 이어질수록 작가에 의해 여러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완결 후에도 기존 세계관에 이야기를 덧대고 덧대 연달아 새 작품을 공개했다. 그러나 급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낸 탓인지 기존의 설정과 충돌하는 여러 설정이 등장했다. 기존 시리즈의 팬들이 불만을 표현할 수준이다.


작가의 허술함은 <신동사>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드러난다. <신동덤>은 공개 전부터 불안한 점이 많았다. 주연이었던 조니 뎁의 가정 폭력 사실이 드러나 뒤늦게 배우를 교체하고 재촬영에 돌입했다. 주연 배우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작품의 분위기도 달라질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공개된 <신동덤>에서 해당 캐릭터의 성격은 이전 작품과 매우 달랐다. 날카로운 성격과 뛰어난 마법 능력을 강조하던 기존의 그린델왈드와 달리, <신동덤>의 그린델왈드는 부드러운 화술로 상대를 쉽게 통제했다. 잔인하고 강력한 마법 기술의 사용도 드물었다.



막상 영화를 보니 그린델왈드의 성격 변화를 비롯한 여러 부분이 기대한 바와는 달랐다. 딱히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닌데도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화려하게 새로운 마법을 사용하는 장면이 적고, 긴 대화 장면이 많아 지루했다. 이전 작품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던 크레덴스는 이도 저도 아닌 위치에서 작품에 얹혀 있었고, 티나와 퀴니의 서사는 부족했다.


여러 번 집중력을 잃으며 애매한 기분으로 142분간 영화를 봤다. ‘와! 진짜 별로다.’ 영화관을 나서며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나의 표정은 그야말로 싱글벙글이었다.


황당하게도, 나의 기분이 바뀐 건 단 한 장면 때문이었다. 뉴트의 일행은 덤블도어를 만나기 위해 호그와트로 향한다. 호그와트의 전경과 대강당의 모습을 보여주며 <해리포터> 시리즈의 메인 OST가 재생된다. 그 익숙한 공간과 음악에 주먹을 꾹 쥐고 속으로 환희했다. 마치 집에 돌아온 듯 안정적인 기분에 이 장면만을 반복해서 보고 싶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프리퀄이 준비되지 않았더라면 새 영화에서 새로운 호그와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테다. 그 사실만으로 <신동사> 시리즈의 쓸모는 다 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컴백이 있었다. ‘요즘 따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라는 가사를 온 국민이 부르게 한 ‘썸’의 주인공 소유가 솔로 앨범을 냈다. ‘썸’ 활동 당시 음악 방송에서 라이브까지 들었던 터라 그가 새 앨범 수록곡으로 ‘썸2’를 준비했다는 소식에 추억에 잠겼다.


‘썸’은 모름지기 듀엣으로 불러야 하는 법이다. 소유의 두 번째 듀엣 상대는 씨엔블루의 정용화였다. 비슷한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두 사람이라 당시의 감성을 잘 상기시킬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오리지널 ‘썸’의 중독성과 화제성이 너무 강력했던 탓이었을까, 해당 컴백 역시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요즘 분위기와 추억의 멜로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심심한 곡이 탄생했다. 2010년대에 유행하던 곡 분위기와 어울리는 정용화의 보컬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고, 후렴은 몇 번을 들어도 귀에 감기지 않았다.


처음 듣자마자 안타까움의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이번에도 우습게도 미소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소유와 정용화의 목소리를 듣는 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학창 시절 가장 열심히 듣던 노래와 목소리들은 시간이 지나도 나만의 행복 버튼이 되었다. ‘썸2’는 ‘썸’의 중독성에는 한참 못 미치기는 해도 절대 듣기 나쁜 곡은 아니다. 발매 당일 이 곡을 반복재생 해두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거리를 걸었다.



수많은 팬을 만든 작품에는 일종의 책임이 있다. 최선을 다해 팬들을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줄 책임 말이다. 반대로 팬들 역시 사랑했던 작품이 돌아올 때마다 자발적으로 책임을 지려고 한다. 당시 얻었던 행복을 갚아주겠다는 듯 돌아온 작품을 조건 없이 사랑한다.


그 사랑에는 약간의 희생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말했다시피, 좋은 작품일수록 후속작이 완벽하기는 어렵다. 새 작품의 부족함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기억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후속작을 응원하는 마음은 추억을 훼손당해도 좋다는 의리 섞인 각오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행복을 받았던 대가로 현재의 행복을 기꺼이 떼어준다.


누구나 과거의 영광을 추억한다. 유명한 작품의 제작자가 화려한 컴백을 꿈꾸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돌아온다. 그 컴백은 높은 확률로 촌스럽고 실망스러울 테지만, 팬이라면 이런 복귀를 완전히 모른 체할 수 없을 거다. 마음 한 편에 남은 애정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난 오늘도 여전히 어떤 것의 컴백을 기다린다. 행복을 담보로 다시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