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참견시점’ 지석진 편
가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참 ‘통일’을 좋아한다. 식사 때마다 식당으로 우르르, 메뉴는 당연히 통일. 요즘은 이 경향이 덜해졌다고는 하지만, 더치페이 문화가 정착한 지도 오래되지 않은 이 나라에서 개인플레이는 여전히 쉽지 않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게 멋지다는 인식이 생겨 무조건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강제성은 줄어들었으나, 한국 사회에서 과하게 눈에 띄는 행동은 여전히 금물이다.
개그맨 지석진은 최근 ‘전지적참견시점’에 출연해 소셜미디어에서 유명한 카페를 여럿 방문했다. 첫 방송에서는 인테리어와 디저트가 모두 분홍빛인 아기자기한 카페에 방문했다. 그는 디저트가 잔뜩 담긴 트레이를 들고 흐뭇하게 입꼬리를 올려 사진을 찍었다. 친구인 김수용과 카메라를 주고받으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디저트가 맛있다며 대화를 나누고 분위기를 즐겼다. 멋진 카페에 방문해 누구나 할 법한 행동들이었다.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지석진의 카페 방문기는 방송 이후 큰 관심을 끌었다. 대중이 그 장소에 있는 ‘사람’을 흔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석진과 김수용은 모두 50대 남성이다. 지나치며 보아도 중년의 남성임이 틀림없는 이들이 20대 정도로 젊은 손님들 사이에서 디저트를 즐기는 광경은 분명 생소했다.
방송을 보고 생각해보니 흔히 ‘감성 카페’나 ‘인스타용 카페’라고 불리는 장소에 중년 남성이 앉아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동네의 분위기에 따라 30대 남성이 앉아있는 모습 정도는 자주 보았음에도, 왜 중년 이상의 남성은 거의 본 적이 없었을까.
방문할 장소를 고르는 데에는 당연히 개인의 선호도나 취향이 먼저 반영된다. 디저트의 가격이 비싸다고 느껴지거나, 대단하지도 않은 커피를 마시러 굳이 멀리 이동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 호감을 느끼고 방문하고 싶은 이들도 분명히 있을 테다. 혹은 길을 지나다가 멋진 디저트가 가득한, 고소한 커피 향이 나는 카페를 문득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장소에 들어서기 전 자신의 나이나 행색 탓에 위축되어 쉽게 그 장소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공간에 들어설 때는 누구나 긴장한다. 시니어급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신입사원이나, 교무실에 들어서야 하는 학생이나, 어른들이 가득한 슈퍼로 심부름을 가야 하는 유치원생의 상황을 상상해보자. 누군가의 배려 섞인 질문에도 잔뜩 긴장한 채 떨며 대답할 게 분명하다. 충분한 사회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공간 혹은 조직에서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하다. 찰나의 시선조차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카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공간을 보고 방문 자체를 포기하는 중년이 많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 문턱을 넘지 못하게 만드는 첫 번째 장애물은 개인의 심리이다. 지석진의 카페 방문기는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는 저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며 단념했던 어떤 중년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송인 것이다. “나도 단 거 좋아하는데 한 번 가볼까.” 단순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용기이기도 한 한 마디이다. 실제로 해당 방송 이후 소셜미디어에 부모님의 변화를 공유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석진은 이 방송 이후로도 놀이공원을 방문하고, 다른 카페를 방문하는 등 친구와 함께 하는 새로운 취미 생활을 본인의 소셜미디어 채널에 수차례 공유했다. 그리고 그는 인기에 힘입어 ‘전지적참견시점’에 같은 주제로 재출연했다.
이번에도 지석진과 김수용은 넓고 멋진 카페에 방문했다. 신중하게 디저트를 고르고, 가장 화려하고 인기 많은 음료도 주문했다. 음료는 손대기 영 곤란한 모양이었지만, 건너편에 앉은 손님에게 먹는 법을 묻고 난관을 헤쳤다. 디저트가 맛있다며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포장해갈지 묻기도 했다.
아주 즐거워 보였지만, 스튜디오의 반응은 조롱에 가까웠다. 지석진이 입은 옷을 보며 저건 다시는 안 입겠다며 농담에 시동을 걸더니 한 출연자는 ‘별명이 유행 저승사자라면서요’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패널 대부분이 지석진의 영상을 보는 내내 ‘저건 유행이 끝났다’라며 놀리는 투로 반응했다.
이 방송은 당연히 ‘예능’이다. 출연진들의 말은 모두 농담일 거고, 방송이 끝나면 오히려 지석진의 취미 생활을 격려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청자의 눈에 보이는 건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갔다며 방송 내내 놀림을 받는 중년의 모습이 전부이다. 이 방송을 보고 다시 당신의 작은 꿈을 접어두었을 중년들이 안쓰러웠다.
개인의 심리적인 장벽은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사회의 메시지로 더욱 견고해진다. 이상해 보인다는 부정적 시선을 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석진의 행복에 몰입하고 있던 이들은 그가 지적을 받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얼굴이 붉어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농담거리가 이렇게 많은데, 굳이 누군가의 행복을 지적하는 모습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또 다른 방송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프로듀서 코드 쿤스트는 ‘나혼자산다’에 출연해 친구들과 함께 짜장면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패널들은 그가 ‘면치기’를 하지 않고 면을 뚝 끊어먹는다며 탄식했다. 또 저건 제대로 먹는 게 아니라며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꼭 다 같이 면치기를 하며 먹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식당에 앉은 모든 사람이 면을 소리 내어 후루룩 빨아들이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그리 식욕이 생기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사실 조용히 먹는 쪽이 식사 예절에 가깝지 않은가. 면치기는 한 테이블에 절반 인원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누군가는 후루룩 먹고, 누군가는 면을 뚝 끊어서 먹고.
보통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이는 당연히 눈에 띈다. 하지만 공공질서를 거스르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라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타인의 행동에 일일이 관심을 둘만큼 시간이 많고 다정함이 충분하다면, 그 공간의 이방인을 오히려 도와보자. 우리나라의 공동체 의식은 괜한 눈총보다는 의미 있는 눈치로 쓰일 필요가 있다.
단체 행동은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조금 징그럽다. 중년이 되면 국밥집만 들락거리고, 중국집에서는 모두 큰소리로 면을 빨아들이는 세상이라니. 끔찍할뿐더러 재미도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고 살자. 그게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게 모두에게 더 다정한 세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