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녀는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삶 여행자
글 쓰는 일이 좋아 무작정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을 공부했으나, 뒤늦은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겪고 자칭 '삶 여행자'로 살기로 했다. 초기에는 '삶'을 '여행'으로 여기며 한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요즘은 그 여행의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세상에는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여행도 있고 한 곳에 머물며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여행도 있다. 삶의 여행자가 된 후부터 인생이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지난 6월, 13명의 저자들과 함께 이우학교 졸업생의 성장분투기 <이우학교를 나오니 이우학교가 보였다>를 출간했다.
클럽메드바캉스(ClubMed) 라는 외국계 리조트 회사의 현지 상주 직원, 일명 G.O (Gentle Organizer)로 말레이시아에서 근무하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리조트가 문을 닫아 지난 6월 초, 한국에 귀국했다. 리조트에 오는 모든 한국인 고객들과 VIP고객을 보살피는 PR(Public Relation)로 약 2년을 일했다. 회사의 특성 상 단순히 숙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마다 이벤트와 공연을 하기 때문에 무대에 올라 통역을 하거나 공연을 하기도 하고 손님들의 이벤트 참여를 돕기도 한다. 1년마다 발령지가 바뀌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빈탄'이라는 작은 섬을 시작으로, 일본 홋카이도의 토마무, 그리고 올해 말레이시아의 체러팅에서 근무를 마쳤다.
1.
대학교 때는 연극과 글쓰기에 빠져 살았다. 먼지냄새나는 소극장에서 먹고 자며 공연을 준비하고 미국에서 잠시 지내던 때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모든 뮤지컬을 보겠노라, 다짐하기도 했다. 43번가 극장가 옆, 작은 아파트에 방을 구해 6명의 하우스 메이트와 함께 생활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더 저렴한 표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기도 하고 4달러짜리 케밥으로 하루를 버티며 모은 돈으로 연극 아카데미에 지원하기도 했다. 국제 연극축제가 열린다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아비뇽으로 부모님 몰래 떠나기도 하고 (기념품으로 라벤더 비누와 오일을 사와 머쓱하게 내밀었을 때의 두 분의 표정을 잊을수가 없다.) 졸업소설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떠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나름 구구절절한 사랑을 겪고 항구도시 말라가에 정착해 살기도 했다.
물론 늘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었다. 연극을 함께 하던 동기들이 취업 준비를 위해 하나 둘씩 곁을 떠났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확신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른 아침, 토익 스피킹 교재를 들고 강남으로 향하는 지하털을 타기도 하고 써지지 않는 자기소개서를 붙잡고 앉아 있다가 애꿏은 커피 값만 여러 번 내기도 했다. 결국 다른 국문학과 동기들과 다르게 '2년씩이나' 늦은 졸업을 했다.
2.
28년의 짧은 여정에서 배운 것은 첫 째, 선택. 그 순간,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명확하게 살펴보아야한다. 그 선택이 본인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주변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자신만만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매 순간 '선택'을 하며 확실히 배웠다. 둘째, '끝'이 '또 다른 시작'이 되기 위해서는 왜? 라는 질문과 답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과 답을 하는 과정은 지난 일과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과 주인의식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무작정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왜 하고 있는지 한번쯤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어느정도 경험이 쌓였다면 그 경험들을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갈지 '구조'를 짜보는 것도 중요하다. 열심히 밟아 온 시간들이 그대로 증발해버리지 않도록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 잘 갖춰진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떻게 계속 이어나가거나 발전 시킬 수 있는지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3.
아! 이 얼마나 뻔한 도입부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나는 단 한번도 호텔서비스분야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고. 이 모호하고 복잡하지만 불확실함이 가져다주는 찬란함의 인생은 나를 어디인지 모르는 곳으로 자꾸만 몰고갔다고. 다만 나는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해낼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진정한 성장'이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문장을 잊을만하면 곁에 가져다두며 이 여정을 걷다보니 어느 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후의 삶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해보지 않은 분야에 계속해서 도전해야 할 지, 한 곳에 자리잡아 꾸준히 한 우물을 파보는 삶도 살아봐야 할 지 끝이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문득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철저하게 세워온 계획들 사이에서도 나는 가끔 길을 잃고 헤맸다. 또 계획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고 그 좌절에서 새롭게 찾아오는 기회들에 기뻐하지 않았는가. 그 어떤 순간도 내 것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4.
15일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방 청소를 하는데 스페인에서 썼던 공책 4권을 발견했다. 컴퓨터를 켜 문서를 살펴보는데 말레이시아 리조트가 문을 닫고 잠정적 실업자로 보낸 두 달의 격리를 포함해 지난 10년의 시간이 가득했다. 타임스퀘어에 앉아 키스하는 두 남자를 바라보며 팝콘을 먹던 나는 세상과 나누고 싶던 말이 얼마나 많았는가. 뜬 눈으로 밤을 새며 적어 내려간 글에 마침표를 찍고 고개를 들었을 때 빌딩숲 너머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훔쳐내었는가. 한 겨울에 달콤한 귤을 까먹으면서도 귤의 '자아'를 논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 순간 다시 도전해야함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이 모든 것을 마치 장독의 김치가 부글부글 익어가듯 삭히고 또 묵혀서,
마침내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