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고해성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생각-2

by Old Bamboo 노죽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10일 차를 마쳤다.

200km 이상 걸은 것 같다.


같은 날 프랑스 생장을 출발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과 만나서

하루 밤을 보낸 다음 날 새벽 드디어 기대했던 Camino 프랑스 길을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들 조금 긴장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자제하는 듯하다.


첫날 시작은 아름다운 피레네 산맥의 경치를 구경하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시작한다.

같이 가기도 앞서다가 뒤쳐지기도 하면서 난코스인 내리막 길을 통과하여 첫 번째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 숙소에 도착한다.


첫날 도착지 주변에는 숙소가 마땅치 않아 대부분 같은 숙소에서 머물고 저녁 식사도 같이 하게 된다.

그 힘들었던 마지막 내리막 길을 거치면서 점차 사람들과 가까워져 간다.

같은 한국인이던 대만, 일본, 유럽, 미국 사람 할 것 없다.

그다음 날부터는 숙소가 엇갈릴 수도 있지만 비슷한 페이스대로 가면 자주 만나는 얼굴들이 그리고 구별 안되던 외국 사람 얼굴도 기억하게 된다.

처음에는 Buen Camino만 외치다가,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이름은 뭔지, 어제 어디서 묶었는지, 내일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물으며 가까워진다.


한국 사람들끼리도 마찬가지다.

서먹했던 첫날과 달리 시간이 가면서 같이 밥 먹고 길에서 간식도 나눠먹고, 숙소에서 혹시 아픈 사람 있으면 가져온 약을 아낌없이 푼다. 숙소 체크인 할 때나, 식당이나 마트에서 주문할 때 주저하는 분이 있으면 꼭 누군가 나서서 도와준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냥 편하게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여길 오게 되었고 등등 얘기가 저절로 시작된다. 듣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맞장구치며 자기 얘기를 꺼낸다. 결론은 여기 Camino 길에서 좋은 기운 받아가라는 취지로 마무리된다. 외국 친구들과도 마찬가지다. 서로 나라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나 궁금했던 것도 물어보고 그러면서 새로운 내용도 알게 된다.


프랑스 중년 여자가 식사 시간에 물어본다. 한국 젊은이들은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이력서에 쓰기 위해서 그러는 거냐고, 북아일랜드에서 온 중년 여자는 남북한이 갈라져 있지만 서로 비자를 받으면 방문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독일 아저씨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5번째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자기는 뉴스를 안 본다고 제일 중요한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는 본인의 철학을 설파한다.


한국의 젊은 남녀 순례자들은 퇴사 후 새로운 일 자리를 찾기 전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 길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 했던 업종과 다른 길에 도전하기도 하고, 회사의 어려운 상황과 겹쳐서 본인도 쉬어 가는 시간을 갖기도 하는 것 같다.


내 또래나 윗 세대는 퇴직 후 버킷 리스트 실행이나 산악 동호회 회원끼리 시간이 맞는 분들이 오신 것을 봤다. 처음에는 날씨 얘기, 내일 루트 얘기로 말문을 트면, 저녁 식사 때 제공되는 와인 한 잔의 힘을 빌어 자식 얘기도 하고 익명이 보장되는 마치 성당에서 신부님께 고해 성사하듯 이런저런 솔솔 한 본인의 얘기들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만의 일정에 따라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아직까지 20여 일 이상의 까미노의 날들이 남아있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좋은 기운을 받아서 돌아가는 날까지 무탈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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