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33일간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by Old Bamboo 노죽


25년 5월 12일 드디어 33일간에 걸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코스를 마쳤다.

중간에 하루도 쉬지 않고 꾸역꾸역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 매일 20~28km를 걸었다.

시작할 때 언제 이 길을 다 걷는지 생각했는데, 약 800 km가 걸어지는 게 신비로웠다.


프랑스 출발지에 도착해서 수많은 배낭 맨 사람들을 순례자 등록 사무소에서 보면서

내가 드디어 이 길에 왔구나 하는 생각과 무사히 잘 걸어야 될 텐데 하는 걱정이 교차했다.

설렘과 시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3~4시부터 깨서 움직이는 사람들 때문에

덩달아 일어나 출발을 서두르기도 하였다.


사전에 그렇게 열심히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통해서 알아봤지만 실제로 부딪치는 상황은

머리로 예습한 것과 달리 내 몸으로 그리고 그 순간 같이 걸었던 까미노 친구들과 함께 서로 응원하며

넘어갔던 것 같다.


몇 번씩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걷겠다고 나섰는지 스스로 묻기도 했고,

이미 나선 길 후회 없이 잘 걷고 돌아가자고 위로하기도 했다.


멀리서 온 나처럼 한 번에 이 길을 다 걷고 끝내가도 하고, 가까운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몇 년에 걸쳐서

자기들 시간에 따라 걷기도 했다. 혼자서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부부, 가족이나 친구들과

오기도 하고, 여행사를 통해 15~25명 단체로도 온다.


이렇게 걷는 계기도, 인원도, 방법도 모두 다 각자의 방법으로 걷는 길이 이 까미노 순례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방법이 옳다고 강요하지 않고, 컨디션이 좋으면 더 길게 멀리 걷고, 힘들거나 아프거나 하면 갈 수 있는 만큼 가는 것이다.

우리는 며칠 만에 완주하는지 경쟁하지 않았다. 계획대로 중간에 마치는 사람도, 전년에 이어 중간에서 시작하는 사람도 그 길 위의 까미노 친구들일뿐이다.


처음 시작할 때 적었던 것처럼 평생 처음으로 이렇게 긴 사간을 나 혼자서 일이 아닌 여행으로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며 보낸 적이 없었다.


저 넓은 우주 속에 티끌같이 미세한 개체이지만, 이 지구상에서 태어나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부모, 형제, 부부, 자식으로 연결되고, 사회에서 학교, 회사에서 연을 만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왔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보니 다들 사는 게 비슷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만일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고, 이 길이 끝나는 순간 이후

다시 볼 수 없는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서 나의 삶이 결코 다른 사람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만의 경험, 나만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결코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길이 끝나서 일상으로 돌아가면,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되지 않을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앞으로 일상의 삶을 즐기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추구하면서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이 길을 걷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내 마음을 오랫동안 차지할 정신적 여유를 충분히 얻고

이 길을 마친 것 같아서 스스로 칭찬한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독일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We are much stronger than we think.”


산티아고 길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묵묵히 들어주고, 가겠다고 나섰을 때, 말없이 승낙하고 응원해 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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