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음식 이야기-5

by Old Bamboo 노죽

어릴 적 3~4살 무렵 이유 없이 아팠다. 그때는 아프면 증상에 따라 민간 방식의 치료법으로

대처를 했는데 소화를 잘 못하는 것으로 판단한 어머니는 체를 내는 곳에 나를 데려가셨다.

내 기억에 배를 살살 문지르고 무슨 가루 약을 물에 타서 마시게 하더니 갑자기 등을 때리더니

입에서 작은 고기 덩어리가 나왔다,

어린 내게는 그 기억이 너무 뚜렷해서 육고기는 거의 입에 대지 않고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생선이나 소고기 장조림 정도가 내가 먹는 고기류였다.

그때는 그래도 도시락 싸서 학교 가는데 문제가 없었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조를 나눠서 회식을 하는데 우리 조는 닭볶음탕 집으로 가게 되었다.

같은 조의 선배들과 동기들은 아무 거리낌 없었으나 나는 그냥 술만 마시고 있는데 한 선배가

내가 닭볶음탕에는 손도 되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 너 이거 안 먹니 물어보면서 내 음식 취향이

드러나게 되었다. 다행히 나를 위해 손두부를 시켜주면서 그날은 다른 문제 없이 지나갔다.


80년대 끝자락의 대학 1학년때는 고기 먹을 기회도 많지 않고 그럴 기회가 있어도 너무나 잘 먹는 동기들

옆에 있으면 나 한 사람 안 먹는 것은 티 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때는 우리 모두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술자리는 그렇게 흔한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음식 취향은 2학년 중반까지 딱히 드러나지 않고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2학년 겨울 즈음에 4학년 친한 선배가 몇 명의 후배들만 불러서 술 한잔을 사주겠다고 했다.

모임 장소가 고깃집이었고 선배와 나를 포함한 3 명의 후배는 선배가 주문한 삼겹살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면서 그 학년을 마무리해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다들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그 선배가

내가 고기를 전혀 안 먹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왜 너는 삼겹살을 안 먹느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특별히 아끼는 후배들만 모아놓고 한 턱 쏘는

자리였는데 선배가 내가 그 자리 분위기를 흩트리는 거 아니냐는 듯 얘기를 했다.


한참 동안 고기와 그날 모임의 의미에 대한 설교를 들은 후 결론은 삼겹살을 먹어보라는

압력이 이어졌다. 다들 배가 불렀는지 이작 굽지 않은 생삼겹살도 있었고, 불판에 많이 구워진

바삭한 조각들도 많이 있었다.


마지못한 듯 참석한 인원의 시선을 받으며 그 바싹 익은 삼겹살을 한 입 먹었다.

알다시피 삼겹살이 바싹 튀기듯이 익는 냄새는 맛있어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튀김 종류였기 때문에 실패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렇게 삼겹살이 내 인생에 깊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 대학교 2학년 겨울에 삼겹살을 먹지 않았다면 오랜 회사 생활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싶다.

닭을 여전히 안 먹는 나는 치맥은 포기하고, 그냥 맥주에 마른안주나 땅콩으로 버틸 수 있지만

삼겹살마저 안 먹었는 회사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다.

오랜 해외 근무 중에도 여러 나라에서 한국 음식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삼겹살이었다.


지난주 올해의 마지막 송년회를 고깃집에서 하면서 나의 삼겹살을 시작했던 스토리를 회상하며

다양한 고기 종류와 반찬을 먹으며 옛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아직도 만나고 있는 내게 처음 고기를 강요한 선배에게 조만간 삼겹살을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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