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7
회사 생활 중 짧은 기간 아시아 관련 부서에 근무를 했고, 싱가포르에서 1년간 주재를 하였다.
그 시절 관할 국가 중 하나가 인도였다.
그 당시 나는 새로운 지역이나 국가를 담당하게 되면 그 지역 언어나 문화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관련 책을 사서 읽었다. 이번에는 인도 주재를 나가려고 준비했던 선배가 갑자기 발령이 취소되어
본인이 읽으려고 사뒀던 책 몇 권을 내게 주었다. 그중 한 권이 지금도 기억나는 제목 "맛살라 인디아"였다.
본사 근무 시절부터 인도 담당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내가 직접 사업을 하지는 않지만
지원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입이 짧은 나는 다행히 서양식에는 익숙했지만,
동남아나 향료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은 그때까지 즐기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인도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여름이었고 밤 10시경 도착한 델리 공항 내부는 나라마다 다른 독특한 향이 났지만 여느 공항 내부와
다르지 않았다. 예약한 숙소에서 공항에 내 이름을 적은 팻말을 들고 기다리로 했는데 건물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나를 찾는 팻말이 없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점점 자동으로 움직이는 출입구 쪽으로 나가는데
자동문이 열리는 바깥에 내 이름을 적은 팻말을 든 사람이 보여 다행히 그를 만나 숙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숙소에서는 공항 건물 내부에 들어가 기다리도록 돈을 줬지만 그 직원이 그 돈을 챙기려고
나름 머리를 써서 출구 옆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공항에서 회사 근처의 숙소에 도착하여 몇 가지 주의 사항 중에 샤워기를 처음 틀 때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소리 인지했다. 샤워기를 그냥 틀었는데 엄청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뜨거운 낮동안 달궈진
물이 온수를 튼 것도 아닌데 처음에 거의 데일 정도의 온도로 나왔다. 어느 정도 흐르고 나니 정상 온도의 물이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 각 자리마다 엄청 냉장이 잘 된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 사람이 먹는 물과 현지인 먹는 물의 브랜드가 달랐다.
한국 사람들이 위생도 더 따지기도 하지만, 물 때문에 배탈 나는 경우가 있어 비싼 브랜드의
물을 주문한다고 했다. 이것도 회사애서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월 단위로 정산을 한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사무실 구석에 하얀 셔츠와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서서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 손을 들면 그 사람에게 차나 커피를 제공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빵이나 과자를 굽는 직업이 속하는 낮은 계급의 카스트 속한다고 했다.
또 며칠을 사무실에 출근을 하다 보니 신기한 모습 하나가 있었다.
어느 현지 신입 직원이 있었는데 이 직원이 들어오기 전에 누군가가 헐레벌떡 들어와 그 신입 직원 자리에
가방을 놓고 나갔다. 퇴근 시간이 되면 그 직원은 그냥 나가고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그 직원의 가방을 들고
나갔다. 알고 보니 이 신입 직원의 카스트가 높아서 기사를 부리는데 기사가 가방을 챙겨 다닌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카스트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회사 직급으로 일하지만 업무를 떠나면 철저히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미팅을 위해 거래처 사무실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쪽에서 우리에게 아주 시원하게 냉장 보관된 켄 콜라를
주었다. 나중에 거래처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캔 콜라를 주게 된 이유를 듣게 되었는데 인도에는 워낙 가짜가
많아서 병 콜라는 뚜껑을 가짜로 만들어서 내용물이 진짜인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당시에는
캔 콜라는 가짜를 못 만들기 때문에 다른 음료 대신 시원한 캔 콜라를 제공하는 게 한국 회사 방문자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그날 몇 군데 방문한 거래처에서 하나같이 시원한 캔 콜라를 제공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출장 기간이 다 되어 복귀하는 날이 되었다. 저녁 비행기여서 오전에 출근하여 업무를 보느라
물 한 병을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뚜껑을 열었는데 조금 이상했다. 물이 뚜껑 위치까지 가득 차 있었다.
뭔가 깨림찍했지만 너무 차가워서 물 맛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낮 동안 업무를 보고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을 들어가려면 비행기표를 보여줘야 들어갈 수 있었다. 공항 밖에는 무엇을 하러 온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공항에 들어가니 입국장을 통해 도착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한국이나 일본에서 도착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보였다.
정말 궁금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낯설고 불편한 이 나라에 저렇게 미소를 띠며 오게 만들었는지...
공항 체크인을 하고 심야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일부 화려한 의상을 입은 현지인 일행들을 보게 되었다.
의상에 화려한 금장으로 장식된 무리였다. 알고 보니 결혼식에 참석한 일행이라고 한다. 소속 카스트에 따라
결혼식 의상을 장식할 수 있는데 높은 카스트이어야 금을 많이 쓴 화려한 의상을 입을 수 있고, 낮은 카스트의 경우에는 아예 금장을 넣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심야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을 했다. 집에 도착해서 여행 가방을 열어보니 어쩐 일인지 아침에 받은 물병을 가지고 공항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하여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었다.
혹시나 하고 이제는 미지근한 물을 맛보았다. 그리고 기억이 났다 그날 아침 물 맛이.
그것은 누군가 입을 댄 후의 물 맛이었다.
화려한 광고의 Incredible India가 아닌 내가 과거에 직접 경험한 Incredible India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