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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Jan 08. 2023

불어라, 춤바람!

 


누군가 말했다. 5천만이 ‘나이 보너스’를 받은 것 같다고. 작년 나이로 한 번 더 살게 된 한 해라니, 영화 속 마법 같지 않은가. 지금까지도 법적으로는 만 나이가 표준이었다. 하지만 한국식 나이 계산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게 현실. 두 개의 나이를 안고 평생 헷갈리며 사는 게 한국인의 운명인 줄 알던 터, 일종의 횡재랄까.   

   

 그래서 우린 바빠졌다. 공평하게 일 년씩 젊어진 것 같은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하지? 뭔가 남부럽지 않게 멋진 일을 벌여야겠다고 쑥덕쑥덕. 하지만 들뜬 환호는 잠시일 뿐. 한 살 더 먹은 몸의 현실은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지 않음을 증거한다.      


 정초에 어지럼증으로 대학병원을 찾은 친구 하나, 뇌혈관 협착으로 수술날짜를 잡아야 한단다. 채팅방엔 친구들의 온갖 병명이 올라온다. 족저근막염이나 무지외반증 때문에 걷는 게  고통스러워졌다는 하소연은 약과다. 오랜 당뇨병으로 잇몸이 약해진 까닭에 빠진 6개의 이빨을 임플란트 해야 하는 친구에겐 치과 치료가 스트레스다. 나 혼자만 아픈 게  아니라는 사실이 유일한 위로라는 누군가의 말에 빵 터진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의 딱딱한 스테인리스 의자가 너나없이 불편해진 건 엉덩이 근육이 줄어든 때문이다. 등허리 근육도 많이 빠졌는지 서로 좋은 매트리스나 토퍼를 추천하기 바쁘다. 백내장, 녹내장이나 황반변성 같은 안과 질환도 부쩍 늘었다.     


 고도 근시인 나는 점점 심해지는 저시력 증세가 고민이다. 겨울밤,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읽는 재미를 이대로 뺏겨야 하나. 침침한 눈을 감고 3분 후 떠서 계속 읽는다. 다시 침침해지면 3분 눈 감기를 되풀이한다. 눈을 아껴 쓰지 않은 내 업보일까? 아님 평생 읽어야 할 책의 총량 법칙이라도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육안 대신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심오한 계시? 뭐든 과도한 의욕을 불태우지 말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나이 들고 있다는 자각증세 중 하나는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듣기 좋아지는 거다. 사실은 이미 젊지 않기에 젊어보일 뿐인 데. 약간의 연민이 실린 립 서비스지만 때론 팩트 폭행에 가깝다. 한 친구가 우리를 선동한다. “얘들아, 비굴하게 젊어 보이려 애쓰지 말자. 매력 있는 할머니 클럽, 뭐 이런 거 하나 만들어 보는 게 어때? 각자 시그니처 매력 하나씩 발굴해 오기, 이거 숙제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서글픈 표정이다. 누군가 불쑥 통영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 맞다. 봄맞이 행사로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이나 도다리쑥국 브런치 만한 게 없지. 내친 김에 혼자서든 둘이서든 작은 도시나 섬  한달살이를 올 봄에 밀어 붙이는 것도 좋겠지. 여행 이야기에 활기가 되살아난다.     


 나도 신년 포부를 밝힌다. ‘진주교방 굿거리춤’을 다시 배우려는 계획이다. 몇해 전, 발목 인대 파열로 구민회관 춤 강좌를 끊은 후 시도 때도 없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는 숙제랄까. 얼마 전부터 <한국무용배우기>라는 유튜브 채널 속 춤동작을 따라 나홀로 거실 춤판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걸로는 성에 안 찬다.   

              

 왜 하필 진주교방 굿거리춤에 꽂혔냐고? 진주 교방은 조선 시대 평양 교방과 쌍벽을 이루던 기생 아카데미였다. 일제 강점기엔 진주 권번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김수악 선생 (1926-2009)은 진주교방이 낳은 천재 댄서. 얼치기로 5년 여 한국춤을 배웠던 내 눈을 번쩍 뜨게 한 게 바로 그녀의 중독성 있는 구음에 실린 진주교방굿거리춤이었다.      


 이건 한 마디로 유혹의 춤이다. 오른 팔 하나만 들어도 교태가 자르르 흐른다. 섬세한 어깨 움직임과 자유분방한 손목 놀림이 그대로 댄서의 언어다. 내딛는 버선 발동작에 실린 은은한 교태까지. 노골적으로 벗어 제치는 유혹보다 더 아찔하다. 우리 춤이 이룩한 매혹의 품격이 궁금한 이들에게 유튜브 동영상들을 강추한다.      

 60대 후반에 춤바람이 도졌느냐며 친구들이 비웃는다. “기생이라도 퇴직할 나이가 지났다”고 놀려댄다. 사나흘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폭풍검색을 시작한다. 광진구통합예약시스템에 뜬 강좌가 보인다. 겨울학기가 작년 12월에 이미 개강해 2월까지 3개월 코스다. 광진문화예술회관은 지하철로 한번 환승하면 되는 편도 1시간 거리. 당장 청강부터 신청하고 봄 학기엔 정식 등록을 할 생각이다.     

 근데 조금만 뛰어도 시큰거리는 내 발목이 협조해 줄까? 뱅그르르 도는 춤사위를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해보기 전엔 알 수 없지. 꼭 잘 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가다가 못 가면 그만이다. 또 한 가지, 20대의 몸과 마음으로 추는 춤이 있다면 60대, 70대의 몸과 마음으로 추는 춤이 있을 것이다. 춤에는 댄서의 지나온 삶과 생각이 실리게 마련이니까.   

     

 한국인을 오늘도 짓누르고 있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강박은 어느덧 내게서 사라진 모양이다. 대충 재밌게 살기로, 훌륭하지 않아도 괜찮기로 인생관을 바꾼 덕분이겠다.  

    

 집밖으로 나온다. 싸늘한 공기가 마스크를 벗어 제친 코끝에 상쾌하다. 내 발로 걷는 기쁨이 샘솟는다. 그래, 이렇게 계속 걷는 거야. 내 목표는 넘어지고 코 깨져도 이번 생을 완주하는 거잖아. 이왕 갈 거면 최대한 명랑하게 가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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