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할미 Sep 12. 2024

60대 마지막 해의 당면과제


 나이 70이 코앞인 친구들과 디카페인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현안들이 튀어나온다. 대부분 꼽는 최우선순위는 쌍꺼풀 수술. 피부 탄력 저하로 눈꺼풀이 늘어져 시야를 좁히기 때문이다. 노화로 침침해진 눈에 시야 협착까지 발생해 갈수록 불편하다. 운이 나쁘면 접힌 눈꺼풀에 진물과 염증이 발생하기도 있다. 이로 인한 우울감도 무시 못할 수준. 한 친구는 최근 쌍꺼풀 수술을 받고 한 달짜리 은둔 중이다. 또 다른 친구는 아들딸에게 70회 생일 선물로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나. 왠지 심술궂어 보이는 눈 밑 지방도 빼고 싶다는 친구,  70년 함께 한 얼굴을 한바탕 갈아엎은 후 새 출발이 간절하단다. 폭풍 공감의 눈빛이 오간다.  

    

 두 번째는 좁아터진 아파트 넓히기. 큰 평수로 이사 가는 게 아니고 집에 쌓인 물건들을 버려 잃어버린 아파트 평수를 최소한 3평 되찾는 작업이다. 결혼 경력 40년을 넘긴 우리들의 집은  거의 창고 수준. 평생 공부꾼은 거실과 안방까지 책 창고가 됐다고 한탄해 왔다. 알뜰 살림꾼은 남부럽잖게 갖춰놓은 가전과 그릇들이 부엌과 다용도실을 넘어 방 하나를 점령했다고 괴로워했다.     


 이번 여름 무더위로 인한 집콕 중 공부꾼은 서가 다섯 개 분량의 책을 내다 버렸다고 한다. “이제 남은 건 서가 세 개 분량이야. 이것들도 더 정리해서 두 개만 남길 작정이야.” 거실이 커졌다며 기뻐한다. “앨범 속 사진들은 일부 스캔해서 남기면 되더라. 아이들이 썼던 낡은 교과서들도 최소한의 분량만 기념으로 남길 거야. 이젠 절간처럼 비우는 게 목표가 됐어.”     

 

 로열 코펜하겐이나 보타닉 가든류의 그릇들을 수집했던 살림꾼은 얼마 전 그 중 일부를 당근 거래로 넘겼다. 나머지는 동네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대방출 커피 모임을 주최했단다. 이제 남은 건 최애 한 세트 분량.   

    

 “그 그릇들을 사려고 매달 돈을 모았던 젊은 날을 생각하면 쬐끔 아깝지만 오래 끼고 살았으니까 헤어질 때도 됐어. 홀가분해. 신혼 때 사들인 낡은 식탁과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더라. 밥 먹으면서 남편하고 많이 싸웠던 기억이 애틋해서였나봐. 떨어져나간 식탁 귀퉁이를 어루만지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내보냈어.” 멋진 이별이다.      


 내친 김에 외국 여행 갈 때마다 수집해온 티스푼도 원하는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보내고 정리했다.  “30년 컬렉션을 싹 비웠더니 덕분에 거실 장식장마저 버릴 수 있게 됐어. 집이 넓어져서 좋고 꽃무늬 그릇들 때문에 어지럽다고 툴툴대던 남편이 엄청 좋아해.” 함께 박장대소!


 제일 힘든 건 옷장 정리. 한 친구가 말한다. “옷장 속 바지를 한번 세어 봤어. 외출용만 계절 별로 7개나 8개씩 있더라고. 죽을 때까지 입고도 남을 거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내 처지라고 다를까. 옷장 속에 걸려있거나 바닥에 놓여있는 옷가지들의 분류가 제대로 안된 탓에 겹치는 아이템들이 여럿이다. 홈쇼핑에 홀려, 때론 안 사면 손해일 것만 같이 저렴한 인터넷  의류 세트 상품들을 입지 않고 쳐박아 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책장 정리 후 여세를 몰아 30 킬로그램 분량의 옷가지를 처리한 친구가 우리에게 중고의류 리사이클링 앱을 소개한다. “앱에 접속하면 커다란 비닐 봉지를 보내주더라고. 거기에다 옷들을 담아 문 앞에 놓아두면 수거해 가니까 완전 편리했어. 물론 그들이 가장 원하는 건 명품 중고 아이템이지만 나는 몇 번 안 입은 정장류 위주로 보냈어.”      


 나도 별로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들을 조만간 대폭 정리해서 중고 의류 앱이나 의류 수집함에 집어넣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버리지 않으려면 덜 사고 덜 쓰는 게 최선이다. 퇴직 이후 소비생활 전반의 다운사이징은  극히 자연스러운 변화. 요즘 중고의류가게는 가끔 드나든다. 굿윌가게나 명동성당 재활용 샵에서 티셔츠를 산다. 재작년에 아름다운 가게 안국역점에서 산 8,000원 짜리 모직 코트는 구김 투성이였다. 5,000원을 투자해 세탁소 다림질을 맡겼더니 환골탈퇴 수준으로 거듭나 내 최애 겨울 외투가 됐다. 역시 거의 70년을 써온 낡은 몸에는 새 옷보다 좀 낡은 옷이 어울리는 것 같다.        


 또 다른 현안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이다. 이제 우리 앞의 날들은 죽음을 향한 여정임을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아달라는 의향서. 작년에 건강보험공단 DB에 등록한 나는 얼마 전 아들에게 보여주며 내 뜻을 존중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생의 남은 날들 동안 우리의 봇짐이 가벼울수록 내딛는 발걸음은 경쾌해질 것이다. 물건 하나를 살 때 이제는 세 번 씩 생각하자고 친구들과 약속한다. 날마다 자잘한 물건 세 개씩 버리기를 외치는 친구도 있다. 살림살이를 미리 미리 정리해가며 단순하게 살아가기, 노년의 일상을 명랑하게 해줄 생활의 지혜일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