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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Oct 27. 2020

선생님, 저 퇴사해도 될까요? 심리상담을 받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스위치를 끄자

출처. 픽사베이

많은 고민 끝에 결국 상담을 받았다. 정신과 약물 처방도, 심리상담도 받았다. 내 퇴사 결정에 도장을 찍어준 심리상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날은 날이 흐렸다. 내 눈도 안개가 낀 듯 뿌연 느낌이었다.  점심시간을 틈 타 급하게 상담센터가 있는 광화문으로 향했다.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불안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게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솔직한 생각들을 털어놓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던 걸까?


고요한 적막 속 10여 분의 기다림 끝에 상담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내게 "무슨 일로 왔어요?"라고 물었다. 차근차근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회사는 나를 좀먹고 퇴사하고 싶지만 용기는 안 나고 앞으로 망할까 봐 두렵다는 말들을. 처음에는 애써 나를 누르며 말을 이어갔지만 점점 울음을 참을 수 없어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공간은 여기뿐인 것 같았다. 그 안에서 숨 쉬는 생물은 나와 선생님 두 사람뿐이었다. 결국 나조차도 몰랐던 마음들이 쏟아져 나왔고, 애써 모른 척 해왔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더 깊은 질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꼈나요? 나 혼자서는 도저히 꺼내볼 용기가 없었던 마음을 직면하도록 도와줬다. 나는 무서웠던 거다. 퇴사 후 내 인생이 잘못될까 봐, 영원히 일을 시작하지 못할까 봐, 더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할까 봐, 실패할까 봐. 차라리 지금 회사를 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매여있으면서도 일할 때마다 고통받는 나 자신이 싫어서. 


두서없는 내 말을 차분히 듣던 선생님은 이렇게 정리했다. 


"당신은 굉장히 많은 걸 가진 사람이에요."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내 스스로 대단한 성공을 거머쥔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어린 나이에 이만큼 경력을 가졌어요. 20살 때부터 크게 실패한 적이 없었을 거예요. 청민님이 현재 겪고 있는 불안감은 모든 사람이 거치는 과정이에요. 이걸 겪어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요."


누구나 다 겪는 일...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고 해도 나는 힘들다고!'라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왠지 안심이 됐다. 누구나 그랬듯, 언젠가 이 고통도 끝날 거라는 거니까. 그렇다면 이 불안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더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마음이 불안할 때 몸을 움직여 생각을 차단하라고 조언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막는 3단계

1. 머릿속 스위치를 끄자. 실제로 머리를 탁 치든, 손뼉을 치든. 그리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위에서 바라보자. (메타인지. 내가 회사를 나가면 망할까 봐 불안해하고 있구나 스스로 인지하기.)

2. 손을 씻거나 세수를 해 주의를 환기하자.

3. 할 일을 시작하자. 

출처. 픽사 베이


선생님은 "감정과 생각은 다릅니다. 감정은 자연재해 같은 거라 통제가 힘들어요. 내가 통제해야 할 것은 생각이에요.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부정적인 감정이 나타나므로 생각을 그만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라면서 이 3단계를 알려주셨다.


이 3단계는 아직도 유용하게 쓰인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나 거지 같은 기분이 몰려오면 일단 내 이마를 탁, 친다. 그럼 조금 나아진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단점은 보완시키고, 장점은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가 불안한 이유를 명확히 알면 그 불안을 없앨 방도도 구할 수 있다. 


재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심한 내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의 불안감은 너무 앞선 미래에 대한 것이에요. 이보다 조금 앞선 고민들이 필요해요. 어떤 공부를 할지 어떤 회사를 갈지 등의 실질적인 것들이요." 


맞다.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 나 자신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에 대한 전략을 짜는 것이 나의 무근본 불안을 대처할 무기인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상담을 마치고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구구절절 맞았고, 나의 넥스트스텝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퇴사하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지금 퇴사 안 하면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올 거 같다! 쉬자! 6월의 흐린 날, 나의 퇴사는 그렇게 결정됐다. (그리고 퇴사 후 수개월이 지난 현재, 프리랜서로 나쁘지 않게 돈을 벌고 있다.) 


퇴사 후 취업도 안 되고 망할까 봐 무작정 걱정되는 분들께 선생님의 주옥같은 한 말씀을 바친다. 


"취직도 안 되고 인생 망하는 건 확률적으로 낮아요. 당신 앞에 정말 다양한 길이 있는데, 그중 딱 하나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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