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지, 2020년에 역병(疫病)이라니
2020년은 뭔가 사이버펑크 틱한 숫자였다.
매년 4월 과학의 달, 초딩인 나는 으레 2020년을 상상하며 과학 상상 그리기 대회, 과학 상상 글짓기 대회 등에서 그런 상상을 했다.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출근을 하고,
심지어 행성과 행성 사이를 다닐 수 있는....
은 무슨....
실제 마주한 2020년은 역병(疫病)이 테마다.
설 연휴가 끝나가는 1월 말,
한국에 계신 엄마가 2월 말 한국행을 앞둔 내게 한국행 취소를 권유하셨다.
그때는 노르웨이는 물론이고 유럽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오로지 나의 안전을 위해 한국행을 취소했더랬다.
어렵게 맞춘 휴가였기에, 나와 남편은 노르웨이에서라도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그랬는데....
3월 2일,
스타방에르에서 첫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사례가 확인됐다.
하필 2월 말 3월 초는 노르웨이 전역이 겨울방학(Vinterferie) 기간이어서,
이때 너무나 많은 노르웨이인들이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등지로 스키 여행을 다녀왔고,
그곳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온 사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 정부는 안일하게 행동했다.
매일매일 뉴스를 볼 때마다, 어찌나 당황스러운지.
정부가 그때 내놓은 방침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코로나 주 위험 지역에 다녀온 사람들은 자가 격리해라.
뭐 이 정도.....?
그러더니 오슬로의 한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 음성 확인을 받고 정상 출근해 병원에서 근무하던 도중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노르웨이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이를 기점으로 노르웨이 전역에서 확진자들이 속출했고,
우리의 휴가가 끝나가는 무렵이던 3월 12일,
노르웨이 총리인 에르나 솔베르그(Erna Solberg)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이 프레스컨을 열고
향후 2주간 모든 유치원과 학교 휴교령,
필수산업을 제외한 산업은 재택근무 권고
를 발표했다.
본격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나오는 보도는 비관적이었다.
노르웨이의 보건부와 같은 FHI에서는 대략 노르웨이 인구의 절반인 220만 명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어놓았다.
휴교령이 떨어지던 그날,
사람들은 미친 듯이 마트로 달려갔고.
우리의 목표는
일단 두루마리 휴지다.
미친 듯이 두루마리 휴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대체.... 두루마리를 그렇게 사재기해야 하는 포인트가 무엇일까.
공산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노르웨이였기에 공산품 수입이 끊겨 수급이 안될까 그랬던 걸까...
노르웨이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사재기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고, TV에서는 갑자기 여러 마트 광고가 나오면서, 충분한 재고가 있다며 모두를 안정시켰다.
2주간의 시간이 지남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정부는 끊임없이, 사람 간격 최소 거리 1m를 권유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그 주말,
에르나 솔베르그 총리는 하늘길과 바닷길의 인적 교류, 정확히는 노르웨이로의 외국인 입국을 막기 시작했다.
그 외 노르웨이에 거주하고 있는 관광비자 등의 체류 외국인은 본국 귀국을 권유하기도 했다.
원래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기로 했던 3월 26일을 앞두고
노르웨이 정부는 다시 한번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부활절 이후(4월 13일)로 연장했다.
노르웨이 정부의 권고사항은 한 층 더 강화되었다.
5명 이상의 모임은 전격 금지,
산책은 가능하지만, 축구 등 함께 해야 하는 운동은 금지.
마트 쇼핑은 가족 중 1인만 할 것 등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된 노르웨이에는 이 밖에도 많은 근로자들이 임시 해고를 당하기 시작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긴급 재정을 하며 실업 급여 지원금을 대폭 늘리며 사회적 안정을 위해 여러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보는 나는 그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고들 있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무려 두 달이라는 시간을 앞두고 이들은 무엇을 대비한 것일까.
아무것도 대비하지 않은 이들의 나이브함, 이제야 부랴부랴 발등에 불 떨어진 이들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다.
처음 아시아에서 코로나가 터졌을 때,
노르웨이의 한 신문에서는 아시아 사람들의 마스크를 쓰는 행동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Det er en kulturell greie i deler av Asia at man bruker mye munnbind når det går ulike virus som influensa. Men det er ingen gode holdepunkter for at det har noe for seg.
인플루엔자 같은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 아시아에서는 마스크를 흔히들 사용하는 데 이는 문화적 특징 같은 것이다. 그러나 마스크를 쓴다고 해서 예방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출처 vg.no)
뭐라는지.
우리가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누가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마스크도 없이 거리를 활보하며 이것저것 만져대고 침 튀며 수다 떨고, 심지어 볼 뽀뽀까지 하는 누군지 모를 바이러스 보균자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정말 모르는 거니?
다들 그렇게 안일하게 마스크 무용론을 떠들어대더니, 3월 12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발표된 노르웨이에서는 손 세정제는 물론이고 마스크 품절 사태가 일어났다.
1월 말, 한참 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일 때
나와 남편은 이미 마스크를 잔뜩 사두었고, 지금도 마트를 갈 때면 무조건 마스크를 쓰고 나간다.
그럴 때면, 마치 나를 보균자 보듯 홍해 갈라지듯 나를 중심으로 거리를 두는 이들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고는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부디 노르웨이에 제대로 된 위생관념이 박히길 바라본다.
노르웨이 보건복지부에서는 이 상황이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18개월 간 유지될 수 있다는 황망한 예측을 내어놓았다. 대체 언제쯤 일상을 찾을 수 있을까.
소소한 일상이 너무 그리운 요즘이다.
(이글은 본인의 네이버 블로그 글에서 붙여넣기 한 글입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chungsauce/22187535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