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합류하게 된 팀은 아주 작았다.
사장인 L이 주축이었고, 내 위로 시니어가 한 명 그리고 나, 총 세 명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對) 중국 무역 컨설팅이었고, 주 고객은 노르웨이의 SMEs(Small and Medium Enterprises)들이었다.
시기가 좋았다. 때 마침 중국과 노르웨이가 외교 관계를 회복했고, 노르웨이 총리는 물론이고, 노르웨이 국왕까지 중국 방문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노르웨이 정부도 그동안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 밀려 활성화되지 못했던 대중국 비즈니스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었고, 스타트업들을 시작으로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기를 격려하고 있었다.
사장은 혼자 움직이던 사업체를 의욕적으로 확장해 팀을 꾸리고, 로컬 SMEs들을 상대로 컨설팅을 시작했고, 내가 그 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3개월은 프로베이션(수습) 기간이라며, 계약서를 앞에 둔 사장은 내게 말했다.
너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야.
네가 노르웨이인처럼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단숨에 그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일을 할 때는 효율적이지만, 정말 강한 노동법으로 피고용인의 권리를 최대한 잘 누리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의사의 처방전 없이 쓸 수 있는 병가를 매달 쓰는 사람, 윗사람과 다투고 주치의를 찾아가 스트레스로 일할 수 없다고 병가를 받아가는 사람, 등등.
노르웨이에 살면서 그렇게 누리고만 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노르웨이 사람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엄청난 사치였다.
비 노르웨이인인 사장이 비 노르웨이인인 내게 대놓고 말하는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의 바람대로, 나는 노르웨이에서 다시 한국인의 태도로 열심히 근무했다.
수습 기간에는 프로젝트 기안서를 갑자기 제출해달라고 하질 않나, 사전 노티스 없이 아무런 정보 없이 외부 미팅에 참석하질 않나, L은 수습 기간 내내 나를 혹독하게 테스트하는 느낌이었다.
노동법이 강한 노르웨이에서는 보통 3개월 수습 기간이 필수로 포함되는 데, 이 기간 내에는 짧은 노티스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물론 그 이후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1년 계약에 3개월 수습이었던 나는, 어렵게 잡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장도 노르웨이인이 아닌 만큼, 마음만 먹으면 그가 나를 쉽게 내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에서보다, 홍콩에서보다, 더 필사적으로 일했다.
거의 24/7 대기한다는 마음으로, 중국에서 오는 메일도 중국 시차로 답을 하고, 노르웨이에서 오는 메일도 노르웨이 시차로 답을 하며 3개월을 보냈다.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갈 때 즈음해서, 사장 L이 다시 나를 불러 앉혔다.
그동안 수고했고,
로 시작한 그의 말에,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심장이 철렁했다.
이어 그가 말했다.
프로베이션이 끝난 기념으로, 이번 중국 출장은 네가 다녀왔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그는 프로베이션을 잘 끝낸 기념으로 인센티브와 함께 명함을 새로 준비해주었다.
프로베이션을 무사히 통과한 것만으로도 신났는데, 중국이라니!
얼마만의 중국인가!
갑자기 마음이 날개를 달고 중국으로 날아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