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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쏘쓰 Jun 15. 2022

15. 오늘 유아차 산책 나갔나요?

부모와 아기가 모두 행복한 시간


거의 상전 수준이었던 우리 아들. (지금도 상전임) 생후 한 달도 안 되어서 맨날 산책을 나갔다. 

혼합 수유를 하면서 나는 한 고비를 넘었다.

이때가 벌써 아기의 백일이 지날 즈음이었으니, 아기가 태어나서 3개월을 고생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개고생이 눈앞에 훤하게 그려져 눈물이 날 정도이다.


계획적인 하루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아기의 수유 텀, 낮잠 자는 텀, 노는 텀 등이 맞춰지니 한결 살만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했던 것이 유아차 산책이었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유아차 산책이 굉장히 일반적이다.


출산 후 삼칠일은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은 꿈도 못 꾸는 한국적 상식으로는 굉장히 뜨악한 일이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출산 후부터 천천히 걷는 연습을 권장하며 사흘 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틈날 때마다 아기에게도 선선한 바람을 쐬어주고 산모도 산책을 해야 한다고 권유해 줄 정도였다.


여름에 아기를 낳았던 나는, 제법 날씨가 좋았기에 수유 틈틈이 집 주변을 산책했다. 혼합 수유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거의 멘붕의 유축과 직수의 틈바구니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음에도 산책은 빼놓지 않고 했다.


나도 믿기 힘들지만 모두 다른 날의 사진. 주로 아침이나 점심께에 산책을 나와 이렇게 커피와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에 기분도 조금 전환되었고, 아기도 유아차 안에서 더 잘 잤기에 수유 마치고 나면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산책을 나갔다.


혼합 수유를 하면서부터는 수유 텀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처 없이 동네방네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 유아차 산책이 시작되었다.



노르웨이의 흔한 수유실, 모든 쇼핑몰에 수유실이 잘 갖춰져 있어 산책을 하다가도 수유 시간에 맞춰 수유를 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날에는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아기 분유와 기저귀 등등을 챙겨 산책을 즐기고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돌아오기도 했을 정도이다.


친정 엄마는 핏덩이를 데리고, 몸도 성치 않은 산모가 도대체 어디를 가느냐 경악하였고, 한국의 친구들도 그러다 뼈에 바람 들고 아기도 아플 수 있다며 굉장히 걱정을 해줬다.


그런데 나로서는 밖으로 나가야 끼니도 챙겨 먹고 (주로 외식), 아기도 유아차 안에서 훨씬 잘 자니, 유아차 산책은 거의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산책으로 시댁까지 걸어가서 남편 퇴근 시간까지 존버(?)하며 개기기도 했다.


비오던 가을날, 레인커버를 씌워서 또 산책, 크리스마스 준비로 여념 없는 겨울에도 또 산책 

비가 오는 날도 어김없었고, 가을이 와도, 겨울이 와도 유아차 산책은 변함이 없었다. 


한 겨울에도 나뿐 아니라 아기를 유아차에 데리고 산책하는 부모들을 흔히 볼 수 있고, 카페에서는 카페 밖 테라스에 아기를 재워두고 한 숨 돌리며 커피 마시는 부모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기에게 신선한 공기를 쐬여주는 것이 면역력을 길러주는 데 있어 제법 중요하다 생각하는 노르웨이에서는 너무나 흔한 풍경이다.


노르웨이의 미드와이프 센터에서는 출산 시기가 비슷한 한 동네 부모들을 모아 그룹핑해주는 Barselgruppe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리원 동기랑 비슷한 느낌인데, 이때 만들어진 그룹 단체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오늘 OO공원에서 같이 유아차 산책하실 분?


같은 포스팅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이나 지역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곳에서의 또 하나의 육아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친구도 있었고, 우리 동네는 아니었지만 오슬로에도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친구가 있어 유아차 산책 틈틈이 수다도 떨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유아차에서 너무 잘자는 아들, 이러니 또 안나갈 수가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기와 함께하는 산책의 시간

나의 육아휴직 기간의 대부분은 유아차 산책으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의 관점으로 보면, 정말 뜨악할 일이겠지만, 여기서는 너무나 보편화된 문화라 나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었다. 그 덕분에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보기도 했고, 아기가 자라면서 뛰어놀 수 있는 공원이나 놀이터도 찾게 되었다.

또 겨울에는 이렇게 그림처럼 꿀잠 자는 아들을 데리고 꽁꽁 언 호수를 걸어보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몇 년 만에 호수가 얼어서 모두가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탈 때, 우린 산책을 했지.
지금 봐도 너무 신기한 장면들

계절이 바뀌고 다시 봄이 올 때에도 유아차 산책은 계속됐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 육아 휴직이 지나고, 남편의 육아 휴직을 거쳐 아들이 돌이 될 무렵까지는 거의 매일 유아차 산책을 했던 것 같다. 

북유럽에서는 흔히 어디서든 만나볼 수 있는 유아차들

아기가 어느 정도 커서는 유아차 산책이 본인에게도 일상처럼 느껴졌는지, 뭉그적거리는 엄마 아빠를 보채기도 했다. 


돌까지의 아기 육아는 정말 유아차 산책이 다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간식도 유아차에서 먹을 정도로 아기는 유아차에서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느꼈나 보다. 

그렇게 아기는 유아차를 벗 삼아(?) 산책을 일상으로 삼아(?) 무럭무럭 커 주었고, 유아차를 밀며 걸음마 연습도 하고, 동네를 종횡무진하는 아기로 커주었다. 


이제 두 돌을 바라보는 아기는 이제 유아차는 거들떠도 안 보고 뛰기 바쁘지만, 유아차 산책 덕분에 나도, 남편도, 아기도 한결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유아차 산책이 신생아 때부터 돌까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엄마들에게 큰 쉼이 되어주는데, 한국에서는 미세먼지와 공해 등으로 유아차 산책이 여기만큼은 권장되는 것 같진 않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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