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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쏘쓰 Jan 25. 2023

16. 노르웨이 유치원 실전 편

만 1세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노르웨이

노르웨이에서는 아이가 만 1세가 되면 기본적으로 유치원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행정구역(코뮤네)마다 다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스타방에르에서는 아이들이 출생한 직후부터 학기가 시작하는 8월 학기 몇 달 전까지 유치원 신청을 받는다.

보통 최대 3순위까지 희망 유치원을 써서 낸다. 이 3순위에 최대한 맞춰서 배정해주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만 1세가 넘는 아이들은 무조건 유치원에 배정되기 때문에 순위에서 밀리면 3순위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유치원이 배정되기도 한다.


우리도 처음에는 뜬금없이 희망 유치원에 해당하지 않는 Middle of nowhere 같은 곳에 있는 유치원을 배정받았다.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이런 경우에는 재배정을 요청하는 레터를 보내면 희망하는 유치원에 자리가 남으면 바로 다시 희망 유치원으로 배정받을 수 있다.


우리는 재배정을 요청하자마자 우리가 희망한 2순위 공립 유치원으로 배정되었다.

1순위였던 곳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사립 유치원이고 점심마다 따뜻한 음식이 나온다고 해서 꼭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사립이고 근처에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을 우선순위로 하기 때문에 순위에서 밀렸다.


우리가 배정받은 유치원은 걸어서 10분 거리로,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1순위였던 곳은 최신식 사립 유치원이었던 반면, 2순위로 배정받은 곳은 이 지역에서도 가장 오래된 공립 유치원이다.



1. 입소 전


유치원에 배정받고 공식 레터가 날아오고 나면, 한국의 원장 선생님 격인 선생님이 부모 모두에게 전화를 해준다. 아이가 어떤 반에 배정되었는지, 선생님은 어떤지 반에 아이들은 총 몇 명인지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그러고 나서는 부모에게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 사항, 언어, 아이가 보통 어떻게 지내는지 등을 묻는다.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아이가 노르웨이 아빠,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떤 언어로 이야기하는지, 엄마 아빠의 육아 휴직이 7월 경에 모두 끝나는데, 그렇다면 유치원 입소 한 달까지 어떻게 지낼 계획인지 등까지 상세하게 물어보면서 편안하게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유치원 개학에 맞춰 모든 신입 아이들이 한꺼번에 입소하는 것이 아니고, 각각 순번을 정해서 입소하는 날짜를 서로 다르게 잡는다고 했다. 그리고 첫 일주일은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이 함께 동반해서 유치원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그렇게 처음 입소하는 날짜와 함께 아이가 생활하게 될 유치원 반 선생님의 소개 자료, 유치원에서의 하루 일과 등을 안내받았다.


2. 유치원 준비물


유치원에서 받은 소개 자료 파일에는 유치원에 등원할 때 기본적으로 챙겨야 하는 준비물 리스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충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가늠은 하고 있었는데, 막상 챙기다 보니 정말 준비물이 많았다.


봄가을용 쉘드레스

겨울용 윈터드레스

우비

여벌의 실내복

여벌의 울 내복 또는 울 스타킹

얇은 울 모자, 장갑

봄가을용 목 높은 신발

겨울 신발

레인부츠

유치원 낮잠 전용 유모차

유모차에서 따뜻하게 잘 수 있는 풋 워머나 담요

유모차 모기장

혹시 아기가 잠잘 때 쓰는 애착 인형, 쪽쪽이 등이 있으면 함께 챙길 것


봄가을에 쓰는 쉘 드레스

이렇게 준비물 리스트를 쓰고 보니 정말 많다.

그런데 정말 각자 나름의 쓸모가 있는 것들이기에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도 없다.

계절 겉옷인 윈터 드레스는 당연히 날씨에 맞춰 가져가면 되는 것들이고, 유모차 같은 것은 한 번 가져다 두면 아이가 낮잠을 끊을 때까지 두고두고 유치원에 놔두고 쓰기 때문에 번거로움이 덜하다.


유치원 낮잠 시간에 유모차에서 느긋하게 오수를 즐기는 아들


야외에서 놀 때 입는 겉옷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가져가 세탁해 올 것을 권하고 있다. 처음에는 애들이 놀면 뭐 얼마나 논다고 겉옷을 매주 빨아야 되나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누가 보면 흙에서 수영을 하고 왔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상태가 되어 돌아오는 우리 아들 겉옷을 보고 말이다.

겨울용 윈터 드레스와 목까지 덮는 모자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모든 아이의 물건들에는 이름표를 부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사소하게 양말에서부터 쪽쪽이까지 붙여 달라고 했는데, 한 반에 약 12명 정도가 생활하고 야외 활동이 무척 많은 노르웨이 유치원에서는 옷을 자주 갈아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름표는 정말 쓸모가 있었다. 다만 양말과 쪽쪽이는 나중에 되면 거의 반 아이들이 다 같이 돌려 쓰는 지경이 되어서 이름표를 붙이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긴 했다.


3. 유치원 생활


유치원 입소 첫 주는 엄마나 아빠가 함께 동반해서 등원한다. 첫날은 그냥 반에서 한두 시간 앉아있다가 오는 정도였고, 매일매일 시간을 조금씩 늘려 머물고 그 주의 마지막 금요일에는 부모 없이 오전 시간을 보내보는 연습을 한다.


노르웨이의 흔한 유치원 등원룩 (울드레스, 울모자, 털이 있는 겨울 신발을 신고 간다.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유치원 생활을 시작한다.

노르웨이 유치원은 부모들의 근무시간을 고려해 오전 7시 30분부터 문을 열고 오후 4시 30분까지 운영한다.


보통 노르웨이에서는 08시-16시, 하루 7시간 30분 정도를 근무하고 있어서 이 앞뒤 시간에 맞춰 유치원을 연다.


우리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07:30-08:00 - 유치원 등원

08:00-08:30 - 아침 식사 (아침 도시락 지참)

08:30-09:00 - 교실 내에서 놀기

09:00-11:30 - 야외 활동 또는 특별 활동(언어, 미술, 음악 등)

11:30-12:00 - 점심 (유치원에서 제공)

12:00-13:30 - 낮잠 시간 (더 자는 아이들은 최대 2시까지 자게 둔다)

13:30-15:00 - 야외 활동 또는 특별 활동(언어, 미술, 음악 등)

15:00-15:30 - 과일 간식

15:30-16:30 - 교실 내에서 놀다가 하원


아침에는 집에서 싸간 도시락을 먹는다.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나가 논다.
다양한 도구와 장난감, 친구들을 만나는 유치원



한국의 유치원을 경험해 본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이런 점이 두드러지게 다르다고 단정 지어서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노르웨이 유치원은 특히 야외 활동을 자주 한다.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 뒷편의 숲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건물 뒤편에 작은 숲골이 있어서 한 살부터는 그 숲에서 흙 파먹고 놀기를 시작했고, 두 살에 접어들어서 말귀를 알아듣고, 좀 더 기동력을 갖추면서부터는 선생님 지도 하에 반 친구들과 손에 손 잡고 시내까지 걸어 다녀오기,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해 보기, 박물관 가기, 근처 공원 다녀오기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연관된 언어활동, 미술 활동, 음악 활동 등을 두루 하고 있어 '밖에서 놀면서 배운다'가 이런 것이구나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노르웨이는 이렇게 만 1세의 아이들부터 대부분 유치원 생활을 시작하고 있어, 부모들이 엄마 육아 휴직, 아빠 육아 휴직을 거치고 나면 대부분 공백 없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유치원을 배정받고 입소하는 시기와 복직 기간 사이에 텀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에는 무급 휴직을 하거나,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으로 시터를 단기간 쓰고는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부모, 양가 조부모의 조력이 가장 크게 들어간다고 한다. 가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한국이 커리어와 양육이 거의 공존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노르웨이에도 분명 조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 집의 경우만 보더라도 부모와 기관(유치원), 정부가 만들어둔 시스템(육아 휴직, 아이 돌봄 휴가(아이가 아픈 경우 연차에 삭감됨 없이 쓸 수 있는 휴가), 근로 시간 주당 최대 37.5시간 등)으로만으로도 충분히 양육과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이 OECD 국가들 중 출생률 증진을 위해 가장 많은 예산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생률은 여전히 OECD 꼴찌라는 기사를 봤다. 


예산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예산들이 올바른 곳에 배정되어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일회성으로 지자체에서 던져주는 지원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없다. 


출생률 증진을 위해 쓰이는 예산들이 시스템과 제도를 갖추는 데 쓰이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면, 부모들이 업무 공백 없이 휴직 후 복직할 수 있게 기관 입소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 인프라가 있는지, 일과 양육 또는 개인적인 삶이 서로 균형을 맞추고 살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정부가 나서서 제도화해주고 있는지, 회사에서 눈치 보지 않고 아이를 위한 휴가를 쓸 수 있는지, 모두가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힘과 에너지가 필요한지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문화적 공감을 갖추는 데에 바로 쓰이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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