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아이와 가족에 진심이라 가능한 일
어느새 우리 아들이 곧 만 4세가 된다. (시간의 흐름 무엇!)
만 1세부터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아이가 여름에 태어나 8월 학기가 시작에 딱 맞춰 유치원에 입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출산+육아 휴가를 제외하고는 우리 부부는 커리어 공백 없이 맞벌이를 하면서 애를 키우고 있다.
그럼 벌써 약 2년 반을 우리 부부가 맞벌이를 하며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는 건데, 우리는 맞벌이와 육아를 잘 병행하고 있는가?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해보니 되네?"란 대답을 할 수 있겠다.
우리 가족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1. 가족 구성 : 맞벌이하는 부부와 유치원 가는 곧 만 4세 아들
2. 양가 도움은 받을 수 없음. : 시댁 부모님은 가까이 사시지만 연로하시고 친정은 서울에 있음..
3. 부부 둘 다 8:00-16:00 근무 (유연 근무제로 앞뒤 한두 시간 조정가능), 둘 다 출퇴근함.
한국에 매번 방문할 때마다, 가족과 친구들한테 듣는 질문은 주로 이런 거다.
너네는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냐
한국의 친구들이 대부분 육아와 맞벌이를 병행하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아무래도 공통의 관심사는 육아와 맞벌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육아와 맞벌이를 동시에 병행하게 되는 순간부터 친정이나 시댁과 가까이 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면 아이의 조부모님의 도움이 필수적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의 근무시간보다 아이의 기관 운영 시간이 짧아 아이들을 누군가는 픽업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일하다가 부모가 중간에 나와서 애를 픽업할 수도 없으니 결국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시터 선생님이나 하원 도우미 분들의 도움을 받는 친구도 있었지만, 결국엔 돌고 돌아 친정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부부가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시터 선생님이나 하원 도우미 선생님들께 부탁하는 것보단 아무래도 친정이나 시댁 같이 가족들에게 부탁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결국엔 친정 또는 시댁 부모님들과 부부가 애들을 같이 육아하는 상황이 생겨난다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친구들은 대체 시댁과 친정 도움 없이 우리가 정말 노르웨이에서 애를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는지가 매번 신기하다 한다.
우리도 시댁이나 친정 같이 도움 받을 수 있는 가족이 있으면 수월하겠지만,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잘 해내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짧은 근무시간이다.
점심시간 30분 포함 하루 8시간 근무
08:00 출근 16:00 퇴근
일주일 37.5시간 근무
더구나 출퇴근은 주로 앞뒤로 최대 2시간씩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서 남편 같은 경우에는 7시 30분에 출근해서 15시 30분에 퇴근하고 나는 8시에 출근해서 16시에 퇴근한다.
이렇게 출퇴근 시간을 나누고 나면 아들의 유치원 시간인 07:30-16:30에 맞춰 우리 부부가 맞춰 등하원을 할 수 있다.
주로 나는 아이를 오전 7시 30분에 맞춰 등원시키고 출근을 하고, 남편은 퇴근하고 16시쯤 아들을 픽업해 온다.
그러면 대략 오후 5시를 전후로 온 가족이 집에 다 머물게 되고 함께 저녁을 준비해 식사를 한다.
물론 우리도 때에 따라 초과근무를 하거나 출장을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초과근무를 권하지 않고(초과 근무 수당이 높음), 출장은 시간적 여유를 두고 안배되기 때문에 부부가 적당히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바로 질문이 또 따라온다.
애가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
유치원에 아들이 갓 입소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감기란 것이 이렇게 자주 걸리는 것인지... 감기에는 원래도 이렇게 종류가 많은 것인지....
더구나 노르웨이는 항생제 처방을 극도로 꺼리고, 감기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고열이나 폐렴 증세 같은 것이 아니면 GP 의사를 만나지도 않는다. 이곳에서의 감기는 '타이레놀 등을 먹고 집에서 쉬면 된다'가 처방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아프면 유치원도 못 가고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부모가 둘 중 하나는 집에서 애를 봐야 한다.
아이가 아플 경우 노르웨이에서는 법적으로 최대 10일까지 부모가 애를 돌보기 위해 연차 소모 없이 쉴 수 있다.
(쉬는 게 쉬는 것이겠냐마는...) 어쨌든 제도적으로 이렇게 마련되어 있다.
그러면 부부가 나눠서 쉬었다고 가정할 때 연간 최대 20일까지 아이가 아플 때 출근 하지 않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더 긴 기간 아파 이 기간을 초과했을 경우에는, 아이 담당의와 상의해 회사에 이 기간을 연장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 아이가 없을 때, 일을 하다가 이런 자동 답장을 받곤 할 때,
오늘은 애가 아파서 집에 있습니다. 급한 용건은 OO에게 전달해 주세요.
짜증 날 때가 더러 있었다. 아니 대체 뭐 여기저기 다 애가 아파? 이러면서 말이다.
(그때의 나를 매우 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애를 키우고 보니, 내가 이런 메일을 쓰고 있다.
부모가 되어보니, 이런 제도적 방편이 애를 키우며 일하는 부모들에게 얼마나 큰 바람막이가 되어주는지 모른다. 애는 생각보다 자주 감기에 걸리고, 다양하게 앓을 수 있다. 애가 아픈 것도 속상한데, 출근까지 걱정하고 눈치 봐야 한다면 정말 더 힘들었을 것이다.
노르웨이는 이미 이런 제도가 오래전부터 제도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니어나 고위 관리자들도 이미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일을 병행했기에 이에 대해 위에서 눈치를 주는 것도 전혀 없다. 그리고 그들도 안다. 아픈 애와 함께 집에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예전부터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했었다. 이는 공동체적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도 있겠지만, 공동체 테두리 내에서의 제도화된 인프라도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얼마 전 한국의 출생률이 0.4까지 떨어졌다는 기사와, 아이를 낳으면 "돈"을 얼마나 주는지, 그럼에도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기사를 같이 보았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데, 돈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아이 키우기"와 "가족의 삶"에 진심이어야 가능하다 생각한다. 한국은 여전히 출생률의 숫자 그 자체로만 이 현상을 파악하고 개선하려 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배려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되고 제도적으로 보호되어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정말 '안티-노르웨이' 였던 사람이었다. 뭐든 너무 느린 것 같고, 사람들은 꾀를 피우고 일을 안 하는 것 같고, 융통성이라고는 도통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프로토콜 등등. 말하자면 셀 수 없이 이곳의 모든 것이 내 성에 차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가 경험한 노르웨이는 가족으로서 삶을 꾸리고 살아가기 너무나 최적화된 곳이다. 이러니 요즘은 정말 만나는 사람들마다 애 낳고 노르웨이가 좋아졌다고 말할 정도이다. 나의 이런 변화에 노르웨이인 남편도 놀라지만, 그 누구보다 노르웨이에 불평불만이 많았던 나 스스로가 가장 놀라고는 한다.
그만큼 노르웨이는 '가족의 삶'에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