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을 고등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중학교에 처음 왔던 날, 한참 동안 오열했다. 정들었던 학교에서 나를 눈물로 보내주었던 학생들의 모습이 뒤늦게 떠오르기도 했지만, 고등학교를 은퇴하는 듯한 느낌에 북받쳤기 때문이다.
중학교 4년 차인 지금 또다시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차가 없어서 지하철 퇴근길에 4년간 쌓였던 학교의 짐을 조금씩 집으로 옮기는 중이다.
한 번에 쏟아지는 이별의 슬픔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조금씩 슬퍼하기로 결심한 것처럼.
감사하게도 학교 선생님들은 곧 유통기한이 지나는 내가 한 해 더 있어주기를 바라셨다. 또 몇몇 학교에서는 내가 그 학교로 와주기를 기대하셨다. 내가 아직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에 가슴 벅찼다.
무엇보다 1년간 환상의 팀워크를 선물하신 3학년 담임선생님들의 구애와도 같은 유예 요청에 마음이 계속 흔들렸지만,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은퇴를 번복하듯 고등학교로 돌아갈 도전을 하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학년 담임쌤들은 내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시면서도, 모순처럼 나의 그 도전을 응원해 주셨다. 도전은 보장되지 않는 모험이지만, 가능성을 품은 희망인 것이니 그 응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지만, 그 이면에 슬픔과 그리움이 어느샌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학년 선생님들은 이대로 내가 떠나면 무조건 내년에 자신들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될 거라고 내 마음을 읽어낸 듯한 말씀을 하셔서 내심 놀랐다.
중학교라는 완전 다른 세상에 중고 신입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낯섦에서, 4년간 포기하지 않고 늘 고등학교로 돌아갈 꿈을 꾸었지만, 그 시간이 내게 불만이 가득한 불행한 시간이 아니었던 것은, 지금 학교를 떠나는 심정이 4년 전 고등학교를 떠날 때의 느낌과 비슷해져 있음으로 확인된 듯하다.
환대와 같은 4년, 그중 마지막 해에 누구라도 중3 부장을 가능하게 해줄 것 같은, 마법 같은 드림팀 구성의 담임쌤들..
부족하고 약점이 많은 나에게는 가장 축복 같은 만남과 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유일한 남자 담임이면서 남학생들에게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선생님들 뒤에 숨어 지내는 것 같은 무력감으로 마음이 늘 힘들었다.
언젠가 담임쌤 한 분이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하자 마침 우리 학교에 홍보 나오신 타 학교 선생님께서, 내게 다른 선생님들을 잘 챙겨드려야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학년 담임쌤들은 학년에서 쓰러지는 쌤이 있다면 그건 아마 나일 거라고. 나는 체력이 아니라 브레인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셔서 모두 유쾌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잘 하는 것 외에는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의 카리스마 부재와 비사교성, 소심함, 성질 급함 등등의 약점을 담임쌤들께서는 비판하지 않고 품어주시며, 무엇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해 주시면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도와주셨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래서 난 학년부장을 하면서 오히려 학생의 입장에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와 성취가 무엇인지를 삶으로 체험했다.
후기고 원서접수와 제출서류 준비를 모든 담임쌤들이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주셔서 교육청에 점검받으며 제출하는 떨리는 과정을 무사히 잘 마치고, 이제는 거의 졸업하는 미션만 남은 것 같은 이 시점에....
아직은 남아 있는 나날들이 여분의 축복처럼 주어져 있지만, 1년 내내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어제 평소처럼 점심시간에 교실을 순회하며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졸업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의식적인 생각으로만, 이 일상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현실 인식에 이르게 되었다.
너무도 당연해서 오늘 같은 내일이 당연히 있을 거라는 안도에 가까운 일상의 반복, 그 일상의 끝자락을 마주하니, 모든 사소한 일상이 너무 그리울 것만 같았다.
내년에 내가 있을 곳이 어디이든, 남아 있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분들을 떠나기로 한 결정을 무조건 후회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적어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떠나온 것은 아니어서 더 절절하고 감사하고 그리울 것 같다.
19년 전 경덕여고에서 역시 4년 유통기한이 지나는 내게, 학교에 계속 남아달라는 교장쌤, 교감쌤, 3학년 부장님, 예비 고3 학생들의 호소에도, 난 도전의 길을 선택해서 사대부고로 학교를 옮겼었다. 승진에 대한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교장교감쌤들은 승진에 더 유리한 나의 앞길을 막지 못하겠다고 하셨고, 진심으로 날 아껴주셨던 3학년 부장님도 결국에는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으며, 떠나는 것이 확정된 겨울방학 마지막 게릴라 무료 수업에 80여 명 이상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2시간 이상의 내 수업에 몰입하며 나를 아쉬움으로 환송해 주었다. 학생들의 그 몰입과 아련한 눈빛과 비장한 분위기,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할 때까지의 매 순간 행복만큼 슬픈 이별의 깊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학교를 떠난 후 한 달 만에 이유 없는 그리움으로 그 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3부장님의 얼굴을 뵙자마자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참았던 눈물이 한 번에 다 쏟아졌다. 순리대로 떠나긴 했지만, 남아 있을 수 있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아쉬움이 그리움의 실체와 다시 만났기 때문이었다.
어떤 종류의 이별도 내겐 너무 어렵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미 끝나버린 이별에 대한 미련을 측정할 수 있다면, 그 놓아버리지 못한 미련의 깊이로 인해 나의 이별은 여전히 진행 중일 것이다.
지난겨울 둘째 딸을 서울의 대학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독립의 순간을 눈물로 마주하며 딸을 남겨두고 떠나는, 시야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발걸음까지도, 뒤돌아보면 영영 발걸음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이게 이별일 리 없다는 태연함을 연기하고 싶어서인지, 차마 뒤돌아볼 수 없었던 나의 후회와 아쉬움을 담아냈던 둘째 딸이 보내준 영상과 그때의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ㅠㅠ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369910486
이 글을 읽으신 학년 담임쌤들의 반응ㅠㅠ
흠... 제목만 봐도 꼼숩니다.
마음 덜 아프게 안 울면서 가시겠다는.
맘대로 안될걸~~
겁나 오열하면서 가시게 더 막 잘해야지
부장님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어떻게 안될까요?
조금씩 집으로 짐을 옮겨놓으셔도 나중에 제 차로 한 번에 학교로 도로 옮겨드릴게요.
인사는 끝까지 모르는 겁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