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멜랑꼴리아>를 보며 떠올리는 행복교육

by 청블리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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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멜랑꼴리아>라는 드라마의 정주행을 시작했다.

수학 천재 학생과 수학선생님과의 만남...

아픔을 가진 수학천재의 이야기인 <굿윌헌팅>이라는 영화의 설정이 문득 떠올랐다.

이 드라마에서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어린 수학 천재 학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픔과 상처를 안고 방황을 하고 있었다. 때 이른 성취는 대개 요요현상처럼 더 크고 빠른 좌절을 가져온다. 이미 높아져버린 기준과 기대로 인해 특히 본인은 너무도 큰 짐을 어깨에 짓눌리듯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성취에 대한 기대에 떠밀리듯 숨을 헉헉거리던 천재가 아닌 노력파 금수저 학생 한 명은 자신의 거짓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내뱉는다.


잘 했다 그런 소리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요. 이 답은 틀렸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걸 표현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만 있을 뿐 어른들은 이런 시선과 기준으로 물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아이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다.




오랜 시간 방황하는 아이... 예전의 영광에 비해 스스로 초라한 바닥으로 가고 있음을 오히려 증명하듯 하는 그 아이에게 수학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너의 현재 아픔과 방황에 대해) 궁금하지만 묻지 않을게.

어른들은 궁금함을 참 많이도 참아내야 한다. 아이의 성적이 궁금해도,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도, 심지어 아이의 눈물의 의미가 궁금해도 아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수학선생님은 그 대신 아이에게 도전처럼 수학문제를 던져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수학자는 증명을 할 때 솔직해지거든. 너의 솔직함을 보고 싶어.

아이에게 맞춰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 결국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해도 괜찮을 거라는 따뜻함을 담은 말이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이렇게 다가오는 교사가 부담스럽다. 납득되지 않는 친절은 늘 부담스럽게 마련이다. 그래서 교사 본인의 스펙이나 다른 꿍꿍이로 인해 자신에게 이러냐고 따진다. 아이는 교사의 진심이 궁금한 것이었다.

그러자 교사의 대답이 가슴을 울렸다.


넌 니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니? 니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너 정도 재능있는 애들은 많아.
네 재능이 특별해서가 아니야.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니 시선이 특별해서, 그게 좋아서...



아이가 어떠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아이에게 올무를 씌우는 일일 수 있다.

"너는 천재니까... 너는 형편없는 아이니까...너는 이런 정체성을 가졌으니까!"

그러면 아이는 그 프레임에 갇혀 괴로워하면서도 버티거나, 아예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 방어벽을 더 높게 치며 사실상 도망을 치기도 한다.

똑똑하다는 기대는 혹 과정 중에 증명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할 때 본인 스스로 받아들이기도 어렵지만, 기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숨어버리고 싶은 괴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좌절할 선택권이나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 칭찬은 형편없다고 아이를 단정짓는 것만큼이나 아이에게 해롭다.



수학교사는 아이의 재능이 아닌 그저 삶의 모습을 끌어냈다. 아이가 좋아하는 평소 모습, 결과와 관계없이 변하지 않을, 그래서 성취에 조급해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있는 모습 그대로 아이의 특별함을 언급해주었다. 아이는 애쓰지 않고도 그저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성취에 대한 욕심은 스스로 낼 수 있게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않겠다는 어른의 의지와 따뜻함까지 담아낸 말이었다.




수학문제에 도전하려는 마음과 행동을 이끌어 낸 후에 교사는 이런 말을 해준다.


이 문제하고 사랑에 빠지지 마.
수학자의 삶은 어떤 문제를 푼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못 푼다고 불행해지는 게 아니야.
문제를 푸는 동안의 떨림, 흥분, 불안, 답이 나오든 안 나오든 몰두했을 때만 만날 수 있는 그런 순간들 때문 아닐까?



문제가 풀렸다는 결과만으로는 과정 중에 늘 행복할 수는 없는 거다. 정답과 성과만 강조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해줘야 할 말이다.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는 말이다.




교사는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할 때 이렇게 말한다.


문제 지우려고 왔는데.
강요하는 것 같아서. 난 니가 자유로왔으면 좋겠어.
설렌다. 근데 두렵다.
어쨌든 백민재가 아니라 백승유, 너를 만나서 기뻐



결국 강요하지 않는 기다림이 아이의 숨통을 틔게 해주었다. 백민재는 수학천재아동으로 세상이 주목할 때의 이름이고, 백승유는 개명한 후 숨어 버린 아이의 이름이다.

이름으로 아이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상징적인 말이었다.

천재라는 규정과 프레임에서 나와도 된다는 따뜻한 위로와 권유의 말이었다. 다른 이들의 기대와 시선에서 자유롭게, 너만의 이야기로 너의 인생을 채워도 된다는...


교사로서 그런 아이의 가능성을 만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물론 위의 대사처럼 두렵기도 한 일이다. 모든 아이들에게서 매 순간 꽃길이 예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변함없이 전달할 수 있는 이유는... 어떤 순간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하고 배우기 때문이다. 오히려 넘어질 자유와 좌절한 선택권이 보장된 상황에서 스스로 더 많이 더 빨리 배운다. 아이들에 대한 과도한 염려가 또 개입이 오히려 아이의 흐름을 방해한다.


공부든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든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게 만드는 자유를 주는 것이 교사나 학부모, 즉 어른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다. 당연히 어른에게는 무한대 같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이의 어깨에 눌린 타이틀과 기대와 인정욕구 등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 아이의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아이가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연 것 같아 8년만의 기다림에 다시 기대를 갖게 된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이 설계하는 성공의 트랙으로 아이를 몰아넣으려 한다. 그때 수학선생님은 이렇게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님이 가두지 않으셔야 승유가 날아요.

어른들은 말한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많이 기다렸다고. 빨리 왜 그런지 말하라고. 정답을 알고 싶다고.

이제는 결과로 말하라고.

다 어른의 입장이다. 서툴러도 아이가 결국 스스로 일어서고, 본인의 행복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게... 그렇게 더불어 행복하고 공존할 방법을 어른들은 끊임없이 고민하며 찾아가야 한다.


드라마를 겨우 3회도 보지 않고 결말도 모르고 글을 썼다. 어차피 알아도 스포할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내게 그 결론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만큼 도입부의 이야기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드라마의 시작이 뭔가 불편하고 불길한 뭔가를 보여주고 있어 염려는 되지만, 어떤 결말이든 아이가 걷는 행복걸음을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새해에도 “문제를 푸는 동안의 떨림, 흥분, 불안, 답이 나오든 안 나오든 몰두했을 때만 만날 수 있는 그런 순간들”로 인해 모두가 다 행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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