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나날, 매 순간 진심이길

새해의 다짐

by 청블리쌤


새해가 밝았다.

어제 분당우리교회 온라인 송구영신예배를 드렸다.

분당우리교회는 키워가며 확장해가는 일반적인 교회의 방향과는 다르게 29개 교회로 분립하는 1만성도 파송을 준비하여 새해 4월에 본격적으로 실행한다고 한다.

이찬수 목사님이 처음 개척을 시작한 20년 전, 40대 때 송구영신예배를 드릴 때면 앞으로 열몇 번만 송구영신을 더 드리면 자신은 은퇴하게 된다는 말을 농담처럼 쉽게 하셨다고 한다. 젊을수록 남은 날들이 영원하다는 착각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런데 이번 송구영신예배는 눈물까지 자극하는 비장함이 있었다. 아마 전체 교인들과 함께 드리는 마지막 송구영신예배일 것이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이제 송구영신 예배 몇 번 남았다는 것을 굳이 카운트하려고도, 입 밖에 내려고 하지도 않으신다는 말씀에 나도 깊은 공감을 느꼈다.


교직 초보 시절에 선배교사들의 퇴임을 바라보며 그분들께 미안하게도 나는 아직 교직의 반도 안 지났고, 남은 날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받았고, 젊은 날의 오만함으로 나의 교사 생활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실제로 남은 날이 얼마인지 세보는 것보다 지나온 날들을 세는 것이 더 빠르기도 했다.

그런데 반환점을 지난지 한참 지난 지금은 한 해, 한 해가 느낌이 다르다.

얼마 남지 않은 남은 날들을 포기하면서까지 교인들을 파송하고 떠나보내는 목사님의 심정이 가슴 깊이 사무쳤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심정이 이런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늘 교사로서 이별은 숙명이라고 생각해왔다. 교직 경력이 쌓여가니 그 아픔조차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픔은 사랑의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면 내게 새로운 아픔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니, 난 단 한 건의 만남에도 모든 진심을 다 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되기도 한다.


아직 40대 초반일 무렵 한 여고에서 난 야자시간이나 방학 때 별도로 개설해서 희망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특별보충수업, 점심시간에 인문학 영어독해특강, 게릴라문법특강 등 굳이 정규수업시간 외에도 아이들을 수업으로 자주 초대했다. 수업은 아니지만 매주 아이들과 교감하고 코칭하는 영어멘토링 과정을 한 해도 쉬지 않고 진행했었다. 개설 강좌나 프로그램에 따라서 200명 넘게 아이들이 몰려들기도 했고 한 번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청각실에서 특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런 날들이 내게 영원할 줄로 착각했었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난 지금 중학교에 와 있다. 그런데도 내게는 첫 중학교인 이곳에서 거의 학년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아직 1년 동안 영어멘토링, 학기 중 방과후 수업에 이어 겨울방학 집중수업과정에 참여하는 12명의 학생이 남아 있다. 사교육보다 나를 더 의지하고 따라 준 아이들이어서, 공교육 교사로서 더 사명감을 느끼고 있으며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부어주려 한다.


그러던 중 얼마 전 20년 전 근무했던 여고에서 2주간 겨울방학 영어 특강 요청을 받았다.

다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는 생각에, 20년 전 추억을 마주하러 간다는 생각에 너무 설렌다. 무엇보다 내가 만나게 될 학생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하다. 이제 더 이상 “앞으로도 계속 많이 만날 건데”라는 생각으로 영원히 만남이 보장될 것처럼 내가 가진 것들을 아껴둘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 기간 중 선후배 영어교사와 심화연수(6시간)로, 후배영어교사들과 1정 연수로 만나 나만의 영어콘텐츠와 영어수업방식을 공유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선생님들을 통해서도 학생들을 간접적으로 만나는 거라는 다소 망상과 같은 기대감을 가진다.


그렇게 각기 다른 만남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영원한 것은 없고, 언제까지 만남이 주어질지 모르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낌없이 매 순간 주어진 만남에 진심을 다하고 후회를 남기지 않기로...


2주간 하루 종일 장소를 옮겨가면서 진행되는 스케줄을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을지도 나이가 들면서 새로 얻게 된 걱정이다. 내 defensive pessimism(방어적 비관주의)은 나의 완벽주의와도 관계가 있고, 필요 이상으로 준비를 많이 하고 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너무 마음의 부담이 크긴 하다. 만나게 될 이들의 만족도까지도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애쓰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슬프지만 한계를 인정해야 함을 느낀다. 나의 체력적 한계도, 내 노력으로 모든 이들을 다 만족시킬 수 없다는 능력의 한계도.. 그래서 떠올리는 단어가 겸손함이다.


끝이 느껴질수록 한계를 인정할수록 난 그분을 더 의뢰하게 된다.

지난번 예배 때 아래의 말씀에 울컥했다.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the LORD make his face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the LORD turn his face toward you and give you peace."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6:24-26



젊을 때는 나의 힘을 의지하며 나아갔다면, 이젠 오히려 더 큰 능력과 은혜로 나아간다.

어제 분당우리교회 예배드릴 때 현수막에서 발견한 말씀도 힘이 되었다.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헤미야 8:10


올 한해 나의 계획과 목표?

예수님을 향한 시선과,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주어진 모든 기회와 만남에 진심과 최선을 다하는 것...


어제 목사님이 인용하신 이 구절도 불확실성과 염려하는 마음 위에 눌러 담았다.


인생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다. - 폴 투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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